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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뒤흔든 음모론의 실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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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현안과 외교안보 이슈를 조명합니다. 옮겨 적기 보다는 관점을 가지고 바라본 세계를 전합니다.
음모론은 세계, 지금 미국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음모론은 사회 한 구석에서 세상을 향해 분노하는 작은 소리에 불과했다. 이제는 인터넷으로 모집된 추종자들을 이끌고 현실 정치를 움직이는 운동이자 세력으로 부상해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극단적 음모론 집단을 정치에 활용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 지난 6일 연방의회 난입 폭동은 그 결과였다. 한편으로 극단적인 음모론을 방치하면 어떤 사태에 직면할지 보여 준 경고이기도 했다.
구글에서 음모론(conspiracy theories)을 치면 무려 1억2,000여만건이 검색된다. 5년 전 트럼프의 대선출마 선언 이전만 해도 검색 숫자는 2,000만건을 넘지 못했다. 음모론의 유행은 사회가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 주는 징후인 경우가 많다. 위기와 혼란이 음모론을 키우고, 반대로 음모론이 저항의 불쏘시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음모론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계기는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이다. 풀리지 않는 의문은 음모론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도록 바꾸었다. 일찍부터 음모론에 의존한 것은 종교적 신념이 강한 극우 진영이었다. 이들은 스스로 인정하기 싫은 세계에 포위된 희생자로 설정하고, 주류 엘리트를 악마화한 뒤 그들에게 비난과 책임을 돌리며 분노를 정당화했다. 무시당하는 자신들의 저항은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반란이었다.
프라우드 보이스, 백인우월주의자 등 극우단체들과 함께 의회 난입을 주도한 세력은 음모론 집단인 큐어넌(QAnon)이다. 큐어넌은 Q를 추종하는 익명의 지지자들(anonymous)을 가리킨다. Q가 누구인지 신원이 드러난 적은 없다. 2017년 10월 처음 Q는 극우성향 온라인 게이판 포챈(4chan)에 딥스테이트(그림자 정부)와 피자게이트를 연결시킨 글로 민주당과 할리우드 인사들을 공격했다. Q드롭으로 불리는 그의 메시지는 지금까지 약 5,000개에 달하는데, 근거 없고 허무맹랑하지만 단순한 내용이 흡입력을 키웠다. 딥스테이트 음모론은 세계가 진짜 권력자의 대리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며 민주당 인사들을 지목한다. 외계인 음모론이나 사탄 음모론의 변형이다.
큐어넌은 여기에 사람들을 분노케 하는 피자게이트를 연결시켰다. 민주당과 할리우드의 인사들이 소아성애자들로 사탄 제의를 하고 인신매매와 식인, 수혈 행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2016년 12월 워싱턴 코멧 피자가게에서 발생한 피자게이트를 소환한 것이다. 당시 남부 한 청년은 코멧가게 지하에서 민주당 소아성애자들이 인신매매를 한다는 인터넷 글에 분노해 워싱턴까지 달려와 총기를 난사했다. 힐러리 클린턴을 비롯 조 바이든, 버락 오바마, 빌 게이츠, 조지 소로스, 오프라 윈프리, 톰 행크스도 큐어넌의 공격 대상이다.
큐어넌 추종자들이 극단화하면서 뉴욕에선 범죄집단 보스를 딥스테이트 끄나풀이라며 살해하고, 후버댐에 장갑차를 몰고가 경찰과 대치하는 일도 벌어졌다. 연방수사국(FBI)은 큐어넌이 국내 테러를 자행한 잠재 위협이란 문서를 공개했지만, 트럼프는 쿠어넌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서 그들의 글은 퍼날랐다.
그 사이 큐어넌은 필요하면 새로운 음모론을 수용해 기존 주장에 살을 붙여 갔다. 트럼프 재선 기간에는 딥스테이트와 소아성애자 소탕을 위한 구세주로 트럼프가 선택되었다는, 트럼프 지지 논리를 전개했다. 큐어넌은 코로나19와 백신 음모론도 만들어냈다. 딥스테이트가 만든 생물병기가 코로나19이고, 추적기능이 있는 백신을 접종하면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지원, 코로나 유행과 인터넷 이용시간 증가란 3박자가 겹치면서 큐어넌 세력은 최근 폐쇄됐지만 페이스북 회원만 300만이 넘고, 지난 해 지지자가 6배 가량 늘어났다.
기성 언론과 워싱턴 정치를 부패한 엘리트 집단으로 규정한 트럼프가 극우 음모론에서 불쏘시개를 찾아낸 것은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오바마게이트 등 트럼프 스스로 제기하거나 공개 언급한 음모론만 해도 거의 30건에 달했다. 특히 트럼프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비주류 음모론 집단인 큐어넌은 자신을 지켜주는 템플 기사단 격이었다. 클릭 한 번으로 음모론과 그 지지자들을 동원하고, 그 반대자들을 비난하는 음모론의 황금기가 열린 것이다.
의회 난입과 같은 극단적 행위는 시작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나도 음모론과 그 추종자들은 워싱턴에 남아 내전까지 외치는 극우 세력들과 정치를 비틀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선거에서 큐어넌을 지지하는 공화당 후보 11명 가운데 마저리 그린, 로렌 보버트 등 2명은 연방의원 진출에 성공했다. 음모론과 추종자들이 정치 권력과 연결되고, 주변부에서 주류 무대로 진출해 세상을 한 쪽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트럼프도 버리고, 공화당에 상처만 낼 것이란 우파들의 비판도 나온다.
보수 재미동포들과 일부 종교인들에 의해 큐어넌의 음모론과 지지자들의 활동은 국내에 중계되고 있다. 이들은 큐어넌 논리를 국내 상황을 적용해 유통시킨다. 문재인 정부도 세계 단일정부 수립을 위한 딥스테이트의 일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코리아Q가 나타났다는 얘기는 있으나 실체나 주장은 알려지지 않았다. 인터콥 선교회의 최바울 선교사는 유튜브에 공개된 영상에서 백신을 맞으면 노예가 된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탄의 대리인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음모이며, 백신을 맞으면 생체 추적이 가능해져 조종을 받는다는 것이다. 문 정부의 코로나 방역과 백신 접종도 그 일환이라고 한다. 이런 논리는 종말을 예고한 신약 요한계시록과 연결되면서 종교적 믿음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추종자들은 정부 방역 지침에 따르면 사탄의 일에 협조하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최근 경북 상주 BTJ열방센터 방문자들의 코로나 진단 집단 거부도 이런 논리와 관련돼 있다고 개신교 인사들은 해석한다. 그러나 백신 노예론은 과거 바코드가 짐승 인식표로서 종말의 징조라는 음모론, 생체칩과 정보통신기술로 감시한다는 베리칩 음모론의 변형에 불과하다. 종교계가 이단적 종말론으로 규정하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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