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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보완수사 요구 많아져"...수사권 조정 두 달 검경 신경전 치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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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구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심도 있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1 “시계추처럼 이리로 가라고 했다 저리로 가라고 하니 맥이 탁 풀리네요.” 서울의 수은주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졌던 지난 17일 오후 서울 OO지검. 종종걸음으로 민원실을 빠져나오는 김우자(가명ㆍ65)씨는 이렇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김씨는 2억4,000만원의 회사자금을 멋대로 쓴 전 동업자를 사기혐의로 고소하기 위해 검찰을 찾았으나 “경찰서로 가세요”라는 답변을 듣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청사 입구 안내 직원이 “5,000만원 넘는 사건이면 접수가 된다”고 설명해 창구로 갔지만 정작 접수 창구에선 고소장을 받지 않았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6대 중요 범죄’를 제외한 일반 사건은 경찰이 수사를 전담하는 새 형사소송법이 지난 1월 1일부터 시행되면서 빚어진 혼란이다. 이 법 시행으로 검찰은 배임ㆍ횡령ㆍ사기 범죄는 5억원 이상 사건만 수사할 수 있다. 김씨는 “변호사 조언을 듣고 검찰에 고소장을 접수하러 왔는데 다시 경찰서로 보냈다”면서 “검찰 직원이나 변호사들까지도 바뀐 제도를 숙지하지 못하는 등 분위기가 어수선하다”고 말했다.
#2 경기 양평 경찰서의 한정수(50) 수사팀장(경위)은 최근 1주일에 1시간씩 팀원 6명과 함께 사건 스터디를 한다. 검찰에 송치한 사건 중 보완수사 요청이 들어오거나 불송치로 결정한 사건 중 재수사 요청이 들어오는 사건 위주로 유사 사건의 판례를 찾아보고 어떻게 의율(擬律)할지 등 법률적 문제를 중심으로 토론을 한다. 수사팀은 유형이 비교적 단순한 일반 형사 사건이 아닌 내용이 복잡한 사기ㆍ횡령ㆍ배임 등 경제 사건을 주로 취급하기 때문에 부담이 더 크다. 그 전까지는 부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었으나 지난달부터 이를 정례화했다. 수사팀 내부 회의뿐 아니라 경찰서장이 주재하고 전 수사부서의 과장과 팀장, 수사심사관 등이 참여하는 경찰서 차원의 사건 회의도 정기적으로 열린다. 한 팀장은 “그동안은 만족스럽지 못한 수사 보고가 올라와도 사기를 고려해 질책을 자제했지만 요즘은 이런 보고가 올라오면 해당 수사관을 공개적으로 꾸짖는다”며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넘겨받은 만큼 책임 있게 수사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 직원들도 수긍한다”고 말했다.
수사권ㆍ기소권ㆍ영장청구권을 독점해 온 검찰의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50여일 사이 법조계 안팎에선 사건 진행의 지체를 실감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찰은 모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던 이전과 달리 새로운 형사소송법 시행으로 불송치 결정 권한을 갖게 됐다. 대신 검찰은 90일 안에 불송치 결정 사건에 대해 경찰에 재수사를 요구할 수 있고, 사건 관계인이 불송치 종결사건에 이의를 제기하면 자동으로 검찰로 사건이 송치된다.
경찰은 특히 사건무마 의혹 등을 받을 수 있는 불송치 종결 사건에 대해 검찰로부터 흠을 잡히지 않기 위해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분위기다. 경찰청에 따르면 수사권 조정 첫 달인 지난 1월 1~31일 경찰이 처리한 사건 6만7,508건 중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송치 사건)하거나 재수사를 요구(불송치 사건)하는 등 추가 조치 요청 사건은 1,671건으로 전체 2.5%였다. 수사권 조정 이전인 지난해 같은 기간 송치 사건에 대한 검사의 재지휘율(3.5%)보다는 낮다. 경찰청은 검찰의 추가 조치가 이전보다 감소했으며 추가 조치 내용도 첨부 서류 누락, 법령 착오 등 단순 보완 조치에 가깝다며 새로운 체계가 연착륙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선에서 느끼는 압박은 경찰 수뇌부의 판단과는 사뭇 다르다. 사건 수사의 부담이 줄어든 만큼 검찰이 과거보다 엄격하게 경찰의 수사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도 이행기에 수사의 주도권을 둘러싼 검경 간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가 6대 중요 범죄로 제한되면서 검찰 고소ㆍ고발 사건은 크게 줄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9년 4만7,173건, 지난해 4만1,986건(1월 기준)이었던 검찰 고소ㆍ고발 사건은 지난 1월 2만470건으로 절반으로 줄었다.
이승헌(38) 경기 남양주남부경찰서 수사지원팀 수사관(경위)은 “과거 같으면 검찰이 경찰의 판단을 존중해 약식 기소하는 사건도 요즘은 적용되는 법이 맞는지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등 디테일을 챙기는 검사들이 많아졌다”며 “수사권 조정 초기인 만큼 검찰이 ‘총력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 한 경찰서 수사과에 근무하는 A경위는 “검찰로 보내는 사건마다 모두 다시 내려 보내는 느낌”이라며 “어느 정도 수사를 하면 검사의 보완수사 요청이 안 들어올지 기준을 알 수 없어 요즘 수사관들끼리 서로 ‘먼저 송치 해보라’고 눈치를 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검찰 측도 “구체적 수치를 제공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송치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요구율은 상당히 높은 수치”라고 밝혔다. 수사권 조정 이후 각급 검찰청에는 수사지휘 검사가 사라진 대신 불송치결정 사건 전담 검사를 두고 있다.
경찰과 검찰 모두 사건을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부실 수사 가능성이 낮아진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만큼 사건 진행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을 지낸 양홍석(43) 변호사는 “수사권 조정을 앞둔 지난해 말부터 경찰이 문제가 될만한 사건은 한번 더 다지고 간다는 느낌”이라며 “수사권 조정 초기에 ‘부실수사 1호’로 적발되지 않기 위해서인지 경찰의 사건 처리가 지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인 최승환(41) 변호사는 “검사들의 수사 부담이 줄어들면서 과거 간단히 처리하던 사건도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분위기”라며 “법률적 판단이 어려운 사건의 경우 경찰이 오랫동안 붙잡고 있어 사건이 늦어지는데 다소 불만을 표시하는 의뢰인들이 있다”고 말했다.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변화이고 법이 개정(2020년 1월)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제도 이행을 위한 실무 준비가 부족해 수사력이 낭비되는 경우도 있다. 검경 간 수사정보가 유통되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이 새 시스템에 맞춰 구축되지 않아 일부 지역에서 수작업을 해야하는 일이 대표적. A경위는 “검찰에서 이송되는 사건이 전산상으로 뜨지 않아 서류를 받은 뒤 다시 전산에 접수 여부를 입력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검 측은 “임시 KICS가 운영되면서 검경 간 대부분의 정보유통이 오프라인으로 이뤄지면서 업무부담이 증가하고 있다”며 “법 개정에 맞춘 시스템 개선 사업을 통해 업무부담을 최소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준영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구조개혁 1팀장(총경)은 “수사권 구조조정 초창기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결과물을 내는 게 중요하다 보니 신중한 경찰수사가 이뤄지는 것 같다”면서 “KICS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측이 서로 시스템을 조정해 가는 단계”라고 밝혔다.
수사권 조정은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60여년 만에 흔드는 대변화이지만 일반인들은 아직 구체적인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OO지검 인근 한 변호사 사무실 관계자는 “의뢰받은 사건 중 처음 검찰에 고소했으나 법이 바뀌면서 경찰로 사건이 이송된 게 몇 건 있지만 해당 의뢰인들은 ‘왜 그렇냐’는 문의를 하는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민생사건 수사 대부분이 경찰로 넘어간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부 시민들은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전문성에 대한 불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OO지검 앞에서 만난 손윤정(40ㆍ경기 부천시)씨는 “검찰이 너무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기에 수사권을 분산하는 검찰개혁은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예전 폭행사건으로 경찰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을 때 부실 수사를 받은 경험도 있고, 최근 정인양 사건 수사를 봐도 그렇고 경찰의 수사 전문성은 반드시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로서도 시민들의 이런 불신을 불식시키는 일에 조직의 사활이 걸려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현장 인력에 대한 충원 없이 보고와 결재라인만 늘린다는 현장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부터 각 경찰서에 수사심사관(692명)을 배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수사심사관들은 사건종결 전 기록을 심사하고 영장신청서 등을 검토한다. 경찰이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지금까지 연 20명씩 채용하던 변호사를 올해 40명으로 늘리는 것도 그런 이유다. 박희수(36) 서울 서부경찰서 수사심사관(경감ㆍ변호사)은 “수사를 빨리 종결하고 싶어하는 담당 수사관들 입장에서는 수사심사관이 생기면서 절차가 지연돼 불만을 표시할 수는 있다”면서도 “진통은 있겠지만 경찰의 책임수사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변호사 업계는 수사권 조정으로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을 기대하는 눈치다. 경찰 조직의 변호사 수요도 늘었고, 사건 관계자들은 경찰단계에서부터 변호사를 선임하는 사례가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부실수사의 가능성은 낮아진 반면 소송 비용의 증가라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서울변호사협회장 출신 김한규(51) 변호사는 “민생범죄를 주로 수사하던 경찰의 수사 권한이 확대된 것은 바람직했지만, 그렇다고 검찰의 지휘권이 완전히 폐지된 점은 우려되는게 사실”이라면서 “경찰이 앞으로 1년 정도 얼마나 비상한 각오로 수사를 하느냐에 따라 수사권 조정의 공과가 평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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