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를 상징하는 최근의 장면은 대사 푸대접이다. 외교적 결례임에도 상호주의를 내세워 경쟁하듯 상대국 얼굴인 대사에게 수모를 안기고 있다. 진지한 국면 전환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외교적 신의마저 무너뜨린 것이어서 우려된다.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는 지난달 22일 부임 이후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물론 모테기 도시미쓰 외상도 면담하지 못했다. 외무성 차관은 당초 일정을 나흘 미뤄서야 면담이 가능했다. 이에 한국에선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가 찬밥 신세가 됐다. 한국 도착 뒤 2주 격리를 마친 아이보시 대사에게 26일 외교부는 최종건 1차관 면담까지만 허용했다. 신임 대사의 신임장 사본 제출 뒤 장관 접견은 관례지만, 강 대사의 수모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4일 양국은 국제무대인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도 다시 설전을 벌였다. 최종문 2차관이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귀중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하자, 일본 측은 국제사회에서 비판을 자제키로 한 위안부 합의를 어긴 것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보편적 인권문제로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언급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일본 주장과 달리 위안부 합의에도 이를 막는 내용은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시작된 양국 갈등은 이제 10년째다. 정의용 외교장관 취임 후 으레 해오던 양국 장관 통화마저 하지 않은 채 사사건건 대립하는 지금은 파국 직전에 가깝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우리 정부의 유화 제스처에도 일본은 한국 때리기에 열중한다는 사실이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한미일 3국 협력을 강조하고 미일 관계가 돈독해지자 그 수위가 높아진 점은 주목할 지점이다.
일본 정부가 ‘포스트 문재인’으로 한국 입장이 바뀔 것으로 기대하며 강경 입장을 계속한다면 단견이다. ‘포스트 아베’에도 일본의 입장이 바뀌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은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는 가운데서 해법은 찾아질 수 있다. 상대의 유화적 제스처에 화답해야 대화가 열리고 관계 개선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