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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A는 무사히 학교 정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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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으로 된 나시(민소매) 속옷 착용 금지, 반드시 라운드형 러닝 속옷을 착용해 브래지어를 가려야 한다.” (서울 종로구 S 여중)
“발등이 보이는 양말은 절대 금지, 반드시 발목을 덮는 무채색의 양말만 착용 가능하다” (서울 관악구 M 여고)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신체는 여전히 ‘통제의 대상’이다. ‘건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꼼꼼히 가려야 한다는데, 막상 들이미는 규칙을 뜯어보면 모순의 연속이다. 반드시 긴 양말을 신어 복숭아뼈를 사수하랄 땐 언제고, 정작 발목을 꼼꼼히 감싸주는 방한용 부츠는 금지된다. 치마 수선을 금지하면서, 치마 길이를 늘이기 위한 수선만은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염색이나 파마는 흡사 범죄 취급을 당하지만, 밝은 머리색과 곱슬기를 ‘정상적인 흑색 생머리’로 만들기 위한 미용시술은 강요된다.
경기도에서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 올해로 딱 10년째, 여전히 학교현장의 두발, 복장 규정 수준은 3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목선이 드러나면 야하다’는 이유로 묶음머리를 금지한 울산의 한 여중 사례가 크게 논란이 된 이후,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가 진행한 실태조사에 한 달간 전국에서 무려 260여 건 이상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접수된 제보들을 토대로, 터무니없는 두발, 복장 관련 학칙 조항들을 조합해 ‘금지 아이템’만으로 한 여학생의 교복 착장을 연출했다. 십대 청소년들이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의류, 잡화지만 학교에선 ‘비상식적’인 이유로 금지되고 있는 것들만 모았다. 과연 이 여중생 A양은 학교 정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여학생은 귀밑 3cm 이하의 ‘칼단발’, 남학생은 1cm 이하 ‘밤송이 머리’ 를 강요하던 시대는 지났다 하더라도, 두발 규정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다. 머리색이 선천적으로 연하거나 곱슬거리는 경우 보호자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확인증서를 항상 소지해야 하며, 긴 머리는 예외 없이 ‘귀높이’로 묶어야만 한다(서울 관악구 M여중). 인천 G여중 재학생의 제보에 따르면, 한 다문화가정 출신 혼혈 학생은 학교 측의 요구에 따라 선천적으로 붉은 머리색을 검은색으로 염색해야만 했다.
짧은 머리를 권장하면서, 막상 ‘숏컷(쇼트커트)’은 “동성애를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한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머리를 묶을 때 쓰는 머리끈은 반드시 방울 등의 장식이 붙어 있지 않은 검은색이어야만 한다(서울 동작구 S여중). 참다 못한 학생들이 직접 개선을 요구하고 나선 경우도 있다. 지난해 8월, 대구의 한 사립 남고 학생 4명이 ‘투블록’ 헤어스타일을 원천 금지한 학교를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고, 이에 인권위는 “남학생들의 머리 스타일을 특정 형태로 제한하는 것은 자기결정권 침해”라며 학교 측에 시정을 권고했다.
최근 몇 년 사이 학생들의 강력한 요구로 일부 여학교에 ‘교복 바지’가 도입됐지만, ‘햇빛 알레르기’ 같은 치명적인 건강상 이유가 없는 한 착용이 금지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인천의 G여중은 공식 학교 행사나 졸업식 등에서 교복 바지 착용을 금하며, 키가 자라 바지 끝단에서 발목이 드러날 경우 더 큰 사이즈로 재구매 해야 한다.
무릎 위를 반드시 덮어야 하는 ‘치마 길이’ 규정은 빗발친 제보 내용 중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서울 동작구 S여중에 다니는 한 재학생은 “엄격한 치마길이 교칙을 적용하는 학교에 다니다보니, 친구들끼리도 서로의 신체를 과하게 단속하는 것이 생활화되었다”며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학생들에게 잘못된 여성상을 심어줄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여학교에서는 속옷과 스타킹 등의 색깔까지도 통제의 대상이 된다. 지난달 8일 문장길 서울시의회 의원이 서울시 관내 여중 여고 학생생활 규정을 조사한 결과, 중학교 44개교 중 9개교, 고등학교 85개교 중 22개교에서 여학생의 속옷 착용여부와 색상, 무늬, 비침 정도를 규정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 S여중에선 ‘반드시 살구색이나 흰색 나시(민소매) 속옷’을 입어야 하며, 검은색 속옷 착용은 원천 금지한다. 이 학교의 한 졸업생은 “색 있는 속옷을 착용했을 때, 한 교사가 ‘보여주려고 입고 왔냐’며 핀잔을 줬던 것이 큰 상처가 됐다”며 “교칙이 엄격한 학교일수록 교사들이 '복장 통제'를 구실로 학생들에게 성적으로 불쾌한 시선을 투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하물며 추울 때 입는 외투나 매일 드는 책가방에도 일일이 ‘조건’이 붙는다. 가방은 패턴이나 장식이 없는 무채색 제품(서울 강서구 D여고)만이 허용되고, 키링이나 열쇠고리가 보이면 즉시 압수된다. 묵주나 염주와 같이 종교적 목적을 위해 착용하는 장신구도 금지된다. 영하 14도의 추위에 교복 재킷을 받쳐 입지 않고 롱패딩을 입었다고 벌점을 받는가 하면(대전 S남고), 교내에서 방한용 담요를 덮는 것이 금지되기도 한다(서울 관악구 M여고). 경량 패딩 조끼 등을 교복 재킷 안에 겹쳐 입는 것을 금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의 설문에 접수된 제보 중 다수는 실제 명문화되어 있는 교칙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공식적인 학칙은 ‘학생인권조례’에 어긋나지 않게 조율하면서 실제로는 더 엄격한 통제 규칙을 들이대는 식이다. 복장, 두발 규정을 어길 시 일일이 벌점을 등록하고, 이를 학교생활기록부에 반영해 입시 등에 불이익을 주기도 한다.
지금까지 언급된 제보 내용들 속 학칙들 대부분이 조례를 근거로 따져본다면 ‘위반 사례’에 해당한다. 2010년 경기 지역을 시작으로 서울, 광주, 전북, 충남, 제주 등 전국 6개 시도 교육청에서 제정한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은 복장, 두발 등의 용모에 대해 자기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조례를 따르지 않아도 처벌 규정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사실상 ‘강제력’이 없다.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의 청소년들도 ‘무엇이 조례에 어긋나는 과한 조치인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설령 잘 안다 하더라도 상황은 별반 달라질 게 없다. 자신의 머리 길이, 속옷 색, 양말 무늬가 곧 대입과 취업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오직 순응만이 ‘살길’이 된다. 학생들에게 ‘정상성’의 기준을 과하게 강요하는 과정에서, 소수자성과 다양성이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아수나로의 치이즈 활동가는 “학생이기 때문에 ‘참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당해선 안 되는 일’”이라며 “복장, 두발 규제는 그 자체로서 모욕이자, 존엄을 해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로선 처벌 규정 등의 강제력이 없는 만큼, 교육청 차원의 더 적극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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