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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게서 듣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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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미국 시에나(Siena)대는 미국 역대 대통령 순위를 발표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정치학자, 역사학자 등 전문가들의 평가를 모아 대통령 치적에 대한 순위를 매긴다. 최근 미 언론이 공개한, 도널드 트럼프까지 포함된 순위 평가에서 조지 워싱턴, 프랭클린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이 각각 1, 2, 3위를 차지했다.
1960년대 이후 취임한 11명 대통령 중에서는 존 F. 케네디(전체 10위)가 1위다. 케네디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귀감이다. 우선 헛된 약속 대신 국민들에게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공헌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1961년 취임사에서 “국민 여러분, 국가에 나를 위해 뭘 해 달라고 요구하지 말고 국가를 위해 뭘 할 수 있는지를 찾아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정책 실패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려다가 실패했을 때다. “승리는 100명의 아버지를 갖지만 패배는 고아가 된다”는 속담을 인용한 뒤 “내가 실패의 책임자”라고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미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피에트루사는 “대통령 사과의 ‘골드 스탠더드’이며, 미국 대통령이 정책 실패를 ‘내 탓’으로 인정한 첫 사례였다”고 평가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소폭 올랐다지만, 여전히 불만을 가진 사람 비중이 더 크다. 최근 국가 안보와 정권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사건과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정책 실패, 고용악화, 경기부진 등은 ‘잘해 보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해부대 장병의 코로나19 집단감염,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연루된 여론조작 사건은 대통령의 진솔한 입장 표명이 필요한 중대 사안이다.
열렬 지지층을 제외하면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참모 탓, 야당 탓, 국민 탓만 한다’ ‘임기 4년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적 있나’, ‘잘된 건 전부 자기 덕이라고 자화자찬만 한다’는 비판 여론이 코로나19 4차 대유행 속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물론 정치인, 특히 국정 총책임자인 대통령이 ‘내가 잘못했다’고 나서는 건 힘든 일이다. 보통 사람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건 쉽지 않다. 내가 한 행동은 옳다는 ‘확신 편견’ 때문이다. 지방 덩어리 고칼로리 음식을 먹으면서도 건강식을 먹고 있다고 착각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다. 더구나 한국에서 정치인의 사과는 나약함의 신호가 된 지 오래고, 퇴임 후 법적 책임의 빌미가 된다는 우려도 있다.
명백한 실패와 과오에 대한 대통령 사과는 사인(私人) 간의 진정한 사과가 그렇듯이 피해자들의 상처와 국민들의 충격을 치료하는 힘을 갖는다. ‘같은 잘못이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으며, (가능하다면) 잘못된 점을 되돌리겠다’는 약속은 국민 신뢰를 회복시키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케네디에 대한 미국 역사가들의 평가가 잘못을 대충 얼버무린 닉슨, 카터, 레이건보다 높은 건 대통령 사과의 힘을 보여준다.
문 대통령은 23일 오후 청해부대 사태에는 '송구하다'고 밝혔지만, 여론조작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만약 사과를 한다면 구체적이고 진솔해야 한다. 모호한 사과는 법적 책임에선 자유롭게 할 수 있어도, 국민들의 이해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게 미국 심리학자 조너선 앨버트(Jonathan Albert)의 지적이다.
시에나대 순위에서 트럼프는 최하위권(42위)이다. 임기를 채 1년도 남기지 않은 문 대통령의 재임 5년을 후세는 어떻게 평가할까. 미국 역사가들의 잣대가 맞다면, 지금 사과했는지 여부가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지금 국민이 듣고 싶은 말, 그건 “내 잘못입니다”라는 대통령의 한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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