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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과 윤석열, 분홍 마스크를 쓸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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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범이 도쿄올림픽에 출전했다. 미국 펜싱 선수 앨런 하지치 얘기다. 그는 올해 5월 국가대표가 됐다. 여성 3명이 몇 년 전 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올림픽에서 성조기를 달고 뛰려면 무결해야 했기에 하지치는 선수 자격을 잃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이겼다. 이의 제기가 받아들여져 일본 도쿄에 입성했다.
넌더리 나게 익숙한 전개다. 가해는 덮고 피해는 후벼파는 한국식 K-성폭력을 닮았다. 뜨거운 반전이 일어났다. 지난달 30일 에페 단체전이 열린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하지치는 무혈의 처단을 당했다. 미국팀 남성 선수 3명은 분홍 마스크를 맞춰 쓰고 피스트에 올랐다. 하지치의 마스크만 검은색이었다. 경기 직전 그는 애타게 물었다. "분홍색 하나 더 없어?" "없어."
한 뼘 크기의 분홍 마스크로 선수들은 많은 것을 말했다. 같은 팀, 같은 성별이라는 이유로 성범죄자와 한 편이 될 순 없다고 저항했다. 이름 모르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헤아리며 그들의 편에 서겠다고 약속했다. 하지치로부터 다른 선수들을 보호했고, 모든 성폭력에 반대한다고 외쳤다.
미국팀은 첫 경기에서 지고 탈락했지만, 박수 받았다. '분홍 마스크의 용기'는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됐다. 피해자들이 숨어서 우는 대신 가해자의 이름이 치욕으로 박제됐다. 동화 같은 결말이었다. "사내가 욕정에 휘둘려 실수 좀 할 수 있지." "메달 따면 다 용서되니까 힘 내." "젊은 친구 창창한 앞길 막으면 되나." "그 여자들 어쩐지 수상해." K-결말과 많이 달랐다.
한국이냐, 미국이냐는 곁가지다. 결국 '힘'의 문제다. 힘있는 사람들은 성대에 확성기를 달고 태어난다.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좀처럼 의심받지도 않는다. 최근 어느 재벌 회장님이 노숙인 급식소 위생을 걱정했듯, 힘없는 사람의 권리는 힘있는 사람이 제일 잘 들리게 호소할 수 있다.
야속하지만, 힘있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남성이다. 남성이 성폭력에 대해 말할 때 세상은 한결 열심히 듣는다. "나도 겪었다"는 '미투'보다 "남성인 나도 지지한다"는 '미투'가 성공할 공산이 크다. 여성 선수들이 분홍 마스크를 썼다면, 하지치의 명예는 무사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성폭력 전력을 미국 펜싱협회는 이미 알고 있었다.
미래의 권력일수록 막강한 것이 정치권력의 속성이라고 할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센 사람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롯한 대선주자들이다. 페미니즘이 오독돼 린치당하는 초매의 시대인 탓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한다. 검정 마스크의 검은 카르텔을 용인할 건지, 분홍 마스크로 바꿔 쓰고 다 같이 평등하고 안전한 세상을 만들 건지.
분홍 마스크는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은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려 하지 않는다. 부당하게 차별당하지 않는 상태,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상태에 겨우 이르려 할 뿐이다.
분홍 마스크를 쓰라는 여성들의 요구는 페미니즘 투쟁을 대신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갖고 태어난 힘을 보태 달라는 것이다. 남성의 페미니즘은 변절이 아니다. 정의요, 연대요, 개혁이다. 목숨과 생계를 걸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남성들이 분홍 마스크를 쓰지 못할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2022년 3월 9일 전국의 대선 투표장에서 분홍 마스크는 무수한 '표'로 바뀔 것이다. 어느 영리한 대선주자가 분홍 마스크를 가장 먼저 쓸 것인가. 인구 절반, 아니 그 이상에 달하는 분홍의 표심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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