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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메기=겨울 술안주? 이 공식 죽어야 구룡포 과메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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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혼밥, 혼술이 유행이라지만, 밥과 술자리는 뭉쳐야 제맛이다. 풀리는가 싶던 빗장이 다시 걸리면서 각종 모임은 취소되고, 전국의 식당과 술집은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요릿집 주방으로 산물을 밀어 올리는 산지엔 그보다 일찍 한파가 찾아왔다. ‘겨울 별미’ 과메기의 최대 산지 경북 포항 구룡포도 그 중 하나다. 국내 과메기 80% 이상을 생산하는 곳이다.
14일 찾은 구룡포 바닷가는 썰렁했다. 어느 계절보다 겨울에 활기가 넘치는 동해안 항구지만, 인근 전통시장은 텅 비었고, 과메기 덕장으로 가득해야 할 해안가 언덕은 휑했다. 간간이 만나는 덕장의 인부 표정은 어두웠다. 우리수산 하상보(64) 대표는 “납품하던 서울 가락시장, 노량진시장 상인들이 확진 판정을 받더니 작년 동기 대비 40%가량 주문이 줄었다”며 “여기에 더해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도 없던 일로 한다니 올해 장사는 끝났다고 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 대표는 지난해 1톤가량의 과메기를 전국의 도매시장에 넘겼다.
사실, 구룡포 과메기 생산업자들에게 올해는 운이 없기도 했다. 11월 초 단계적 일상 회복으로 각종 회식이 재개됐던 만큼 작년 수준은 할 것으로 봤지만, 북태평양에서 꽁치 배가 들어오지 않았다. 9~10월 잡은 꽁치들이 11월 중순엔 들어와야 했다. 하지만, 올해는 어창을 채운 배들이 이달 초 지각 입항했다. 좌동근 구룡포과메기조합장은 “한창 공급해야 할 11월엔 재료가 부족해 제대로 못 했고, 재료가 들어와 일 좀 하려 했더니 이젠 주문이 급감했다”며 “이런 이중고가 또 없다”고 토로했다. 구룡포에선 과메기를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2월까지 말려내고, 그중에서도 연말 각종 자리가 많은 12월이 가장 바쁠 때다. 아직까진 ‘과메기=술안주’로 인식되는 탓이다.
올해 가을 꽁치 어획량이 적었던 배경에는 '대륙의 입맛'이 거론된다. 한류성 어종인 꽁치는 가을쯤 오호츠크해 쪽으로 이동하는데, 그 길목인 공해상에서 중국 어선들이 대형그물을 쳐놓고 싹쓸이한 여파라는 것이다. ‘1일 1꽁치’ 한다는 일본도 몇 년 전부터 어획량 급감 피해를 보고 있다. 북양의 수온이 올라가면서 꽁치 먹이인 크릴새우가 줄었다는 이야기도 구룡포에서 간간이 들렸다.
포항시에 따르면 구룡포를 포함 호미곶면, 동해면 등 포항에서 생산된 과메기는 2016년 3,680톤에서 3,210톤(2017년), 2,540톤(2018년), 2,100톤(2019년)으로 매년 줄었다. 지난해엔 1,970톤으로 약 710억 원의 판매액을 올리는 데 그쳤다. 코로나19로 현장 판매 판로가 막히고 꽁치 어획량 감소라는 악재가 겹친 탓으로 분석됐다.
악재료는 또 있다. 지역 먹거리에서 전국구 별미로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과메기 관련 틀린 정보들이다. 비위생적인 제조 과정이라든가 청어가 아닌 꽁치를 이용한 ‘유사 과메기’ 같은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과메기의 이름은 청어 눈에 꼬챙이를 꽂아 말렸다는 뜻인 ‘관목(貫目)’에서 비롯됐다. 관메기로 불리다 과메기로 굳었다는 게 정설이다.
청어가 아닌 ‘꽁치’로 만들어지는 과메기에 대한 평가절하 목소리가 있지만, 두 생선으로 만든 과메기의 맛을 비교 분석하지 못한 데서 오는 오해에 가깝다. 유래(관목)를 따르자면 ‘청어 과메기’가 정품이나, 맛으로 따지면 꽁치 과메기가 한 수 위라는 게 구룡포 사람들의 이야기다. 구룡포 주민 곽정록씨는 “가시가 많은 청어 손질이 힘들어 꽁치를 쓴다거나, 청어가 잡히지 않아 과메기를 쓴다는 말이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며 “청어에서는 꽁치만큼 고소한 맛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메기조합에 따르면 청어로 만든 과메기 비중은 현재 3% 미만이다.
위생 문제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좌동근 조합장은 “177개 조합원이 99% 이상 수작업으로 일일이 손질하고 있고, 뼈와 내장을 발라낸 꽁치는 해수와 수돗물 등 다섯 번의 세척작업을 거친 뒤 동해에서 불어오는 청정 해풍에 이틀 동안 말린다”며 “높아진 소비자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조합원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위생”이라고 강조했다.
과메기는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하면서 말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구룡포 삼정리에서 50년가량 과메기 일을 하는 고순남(78)씨는 “과메기는 얼면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지고 하얘진다”며 “밤에는 천막이나 창고 안으로 옮겨야 꾸덕꾸덕하고 반질반질한 갈색의 과메기가 된다”고 말했다.
구룡포에선 겨우내 이렇게 말린 과메기를 김치냉장고에 두고 김장김치 먹듯 먹는다. 겨울철 음식이 아닌 사철 음식이라는 이야기다. 멸치처럼 고추장이나 와사비에 찍어 먹기도 한다. 꽁치를 그냥 먹는 것보다 과메기는 불포화지방산인 DHA와 오메가3 등이 발효 농축돼 영양가가 더 높다.
포항의 명물, 과메기 산업을 키우기 위해 분투 중인 포항시가 주목하고 있는 것도 이 대목이다. 술안주로만, 또 겨울 한 철 별미로만 인식되고 있는 과메기를 ‘사계절 상품’으로 만드는 일이다. 김종범 포항시 수산물유통팀장은 “찜, 구이, 장조림, 고추장 무침, 피자 등 과메기를 활용한 30여 가지 요리를 개발했다”며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대대적인 시식회를 열어 과메기의 새로운 맛을 전 세계에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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