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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차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말은 사주팔자에서 연유됐다. 생활 속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말과 행동, 관습들을 명리학 관점에서 재미있게 풀어본다.
사주불여관상(四柱不如觀相)
'사주가 좋아도 관상 좋은 것만 못 하다'는 말이다.
관상은 말 그대로 용모(相)를 살피는(觀) 것이다. 관상은 얼굴을 비롯해 음색, 머리카락 형태, 걷는 자세 등 상대방의 모든 형태를 보고 그의 성격과 운명 등을 판단하는 모든 행위가 포함된다. 이를 이론으로 정립한 것이 관상학(觀相學)이다.
사람들은 관상을 보는 습관이 있다. 관상학을 따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도 대개는 관상을 볼 줄 안다. 나이가 들수록 그 적중률도 높아 간다. 경험이 쌓이기 때문이다. 이는 생존을 위해 자연스레 발전한 것으로, 진화(進化)의 산물이다. 원시시대부터 처음 본 사람이 적인지 아군인지 빠른 판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타인의 얼굴을 보고 그의 매력이나 호감도, 신뢰도 등에 대해 결정하는 시간은 불과 0.1초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따라서 동서양 구분 없이 관상학이 발달하고 놀랄 정도로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서양에서는 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유적에서도 관상 관련 자료가 나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상학' 책을 집필했다.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 역시 얼굴과 체상(體相)으로 질병을 진단하기도 했다.
인도에서는 석가모니의 탄생 설화가 담겨 있는 '불소행찬(佛所行讚)'에 아시타라는 선인이 석가모니의 범행할 상에 관해 얘기한 것이 전해진다.
중국의 경우, 요(堯) 임금과 그 뒤를 이은 순(舜)도 인재를 등용할 때 상술(相術)을 활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나라 때 '예기(禮記)'에 "옛날 요 임금은 용모로써 사람을 취했고, 순 임금은 기색으로, 우왕은 말씨로써, 탕왕은 음성으로, 문왕은 기량과 도량으로 사람을 취했다"고 나와 있다. 이는 비록 후대의 기록이지만 당시까지 전해지던 전설적인 설화라는 점에서 상학(相學)은 중국 고대사와 더불어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문서상으로 관상학의 기원은 중국의 주나라 때 내사 벼슬을 지낸 숙복(叔服)이 사람의 상(相)을 봤다는 기록을 기원으로 삼고 있다. 이후 남북조시대에는 달마상법(達磨相法)이 불교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는 신라시대 때 불교와 함께 관상학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동양에서 특히 관상을 중시했다는 건 사람을 볼 때 주요 판단 기준이 신언서판(身言書判, 상·말·글·판단력)이라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최근 관상학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관상으로 검증하고 당선을 예측하는 차원에서다.
주로 사람에 동물을 비교하는 '물형법(物形法)'이 사용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상학'에서 "돼지처럼 생긴 사람은 미련하고, 사자처럼 생긴 사람은 자존심이 세고, 당나귀처럼 생긴 사람은 답답하다"고 했다. 물형법의 비유와 설명은 관심을 끌 수 있다. 하지만 사람과 동물 사이의 유사성과 논리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게다가 기계적으로 장단점을 나열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관상은 외면으로부터 내면을 판단하는 것이다. 사실 사람의 외모는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건강 등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생긴 대로 논다', '나이 40이 되면 본인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말처럼 얼굴에는 그 사람의 삶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상은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조화를 담고 있다. 관상이 운명을 바꾸고, 운명은 또 관상을 바꾸며, 이 둘은 상호작용을 한다.
따라서 얼굴로 그 사람을 한 번에 단정 짓는 것은 실수할 확률이 높다. 특히 현대 사회는 외모를 바꾸는 게 쉬운 세상이다.
잘못되고 자의적인 관상법으로 인한 폐해는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이 많다.
나치 정권은 '유대 인종(race)'을 구분할 관상학적 여러 특징을 만들어냈는데 이를 응용해 유대인을 가려내는 데 썼다. 여기서 관상학은 인종이나 계급을 구별하는 표지로 쓰일 때, 차별을 정당화시켜주는 강력한 기제로 작용한다. ('서양의 관상학 그 긴 그림자')
미국 29대 대통령 워런 하딩도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역사가들이 꼽은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메달권에 늘 들어가는 인물이다
1920년 공화당은 상원의원 하딩을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 이유는 단지 남자답고 위엄 있는 외모로 대통령처럼 생겨서였다. 그럼에도 그는 처음부터 대통령감이 아니었다. 그 스스로 "나는 대통령에 맞지 않은 사람이다. 이 직을 맡아선 안 된다"고 할 정도였다.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 심리학에서 사람의 외모만 보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현상을 '하딩 효과'라 한다. 현재도 대인관계나 면접 등에서 자주 실수하는 현상이다. 투표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 사회는 얼굴이 지배한다"고 했다. 외모 지상주의가 된 지 오래고, 뛰어난 용모가 '매력 자본'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관상학에 이런 말도 있다.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 '관상이 좋아도 마음 좋은 것만 못 하다'는 뜻이다.
살면서 최소한 '꼴값 떤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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