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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정’의 추억

입력
2022.02.25 18:00
22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검사들이 대선 국면에서 굿판을 벌이는 영화 '더 킹'의 한 장면.

정치검사들이 대선 국면에서 굿판을 벌이는 영화 '더 킹'의 한 장면.

영화 ‘더 킹’은 권력과 유착한 정치검찰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두 번의 대선에서 유력 후보에게 줄을 선 검찰은 상대 후보의 비리 자료를 넘기는 선거 개입 공작도 서슴지 않는다. 영화에는 정치인 비리를 포함한 각종 수사 정보가 산더미처럼 쌓인 검찰 창고가 등장하는데 과거 대검의 ‘범죄정보기획관실’을 연상케 한다. 범죄 정보뿐 아니라 사회 각계 동향까지 수집해 검찰총장에게 직보하는 조직으로 통상 ‘범정’이라 불렸다. 차장검사 자리인 범정기획관은 검사장으로 승진하는 요직이었다.

□ 한때 검찰의 국정원으로 불리며 검찰총장의 눈과 귀 역할을 하던 범정은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개혁의 직격탄을 맞았다. 정ㆍ재계와 정부기관 등에 대한 광범위한 동향 파악과 첩보 수집으로 사실상 사찰활동을 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2018년 1월 범죄 정보만 수집하는 기구로 역할이 축소됐다. 명칭도 수사정보정책관실로 바뀌었다. 법무부ㆍ검찰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2020년 9월엔 차장검사급이던 수사정보정책관마저 폐지됐고 부장검사급인 수사정보담당관으로 격하됐다.

□ 지난해에는 수사정보담당관실(수정관실)의 폐지까지 거론됐다. 이른바 ‘판사 성향 문건’과 ‘고발 사주’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둘 다 손준성 검사가 수사정보정책관으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보좌하던 시절 벌어진 사건이다. 검찰이 여당 정치인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해 야당에 넘겼다는 고발 사주 의혹이나 정치 사건을 재판 중인 판사들 동향을 파악한 행위 모두를 과거 범정의 잔재로 인식한 여권에서 수정관실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한 것이다.

□ 법무부는 수정관실의 폐지와 기능 축소를 고민하다 정보관리담당관실로 축소 개편하는 쪽으로 최근 결론을 냈다. 신설 조직은 수사정보의 수집ㆍ관리ㆍ분석 기능만 수행하고 검증 및 평가 기능은 별도 조직으로 분리한다는 방침이다. 정보 수집 범위 또한 검찰 직접 수사 범죄로 제한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세 번의 기능 축소 끝에 범정은 검찰의 추억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재명 윤석열 두 대선 후보가 검찰개혁에 상반된 공약을 제시하면서 범정의 부활과 소멸은 다시 갈림길에 서게 됐다.

김정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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