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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5세 어린 자식 경쟁 내몰 수 없다" 학부모·교사 대통령실 앞 성토

입력
2022.08.01 17:58
수정
2022.08.01 18:2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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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교육·학부모 단체 모인 '범국민연대'
500명 모여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 맹비난

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교사와 학부모들이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만 5세로 하향 조정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항의하며 정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교사와 학부모들이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만 5세로 하향 조정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항의하며 정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이렇게 빨리 경쟁 사회에 뛰어들게 하려고 아이를 낳은 게 아닌데…”

1일 오후 2시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인도가 후끈 달아올랐다. 안 그래도 체감온도 40도를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인데, 500여 명이 운집해 함성을 쏟아내다 보니 말 그대로 한증막을 방불케 했다. 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에서 5세로 낮추겠다는 교육부 계획에 반발해 거리로 나선 유치원ㆍ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이었다. 참석자들은 햇볕을 피하기 위해 한 손에는 양산, 다른 손에는 ‘학제개편 철회하라’는 피켓을 꼭 쥔 채 정부를 성토했다.

취학연령 하향 조정 방침을 반기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보수ㆍ진보 이념을 떠나서, 또 학부모와 교사, 학생 등 교육주체를 막론하고 반대 일색이었다. 정부는 국가가 영유아 교육을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지만 인지발달 저해, 돌봄 공백 등 조기입학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훨씬 컸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도한 ‘만 5세 초등 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엔 교원ㆍ학부모 단체 40여 곳이 총망라돼 이름을 올렸다. 교육현안마다 각을 세우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함께였다. 정치적 이념과 무관하게 취학연령에 손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범국민연대는 “영유아 발달권을 침해하고 경쟁 교육을 부추기는 학제개편안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입시 경쟁과 사교육 시기를 앞당긴다” “여론 수렴을 하지 않았다” 등 취학 나이를 낮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수없이 열거됐다. 국공립유치원 교사 원미연(28)씨는 “만 5세 유아의 발달 수준에 맞게 할 수 있는 교육이 뻔히 있는데, 그저 경제 논리로 학교에 보내겠다는 건 아동학대에 버금가는 처사”라고 꼬집었다.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인도에서 '만 5세 초등 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최주연 기자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인도에서 '만 5세 초등 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최주연 기자

집회에 참석한 학부모들도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위기감이 컸다. 만 4세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박모(40)씨는 “당장 정책이 바뀌면 어린 자식을 바로 학교 경쟁으로 내몰아야 한다”면서 “1년을 버는 줄 알았는데 1년을 버리게 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만 5세 아이 학부모 최비아(38)씨 역시 “돌봄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맞벌이 부부는 학교가 끝나면 아이를 학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며 “결국 사교육만 더 번성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주최 측은 집회를 마친 뒤 관련 학제개편 방침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공개 서한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지난달 30일부터 진행하고 있는 온라인 반대 서명에 참여한 인원은 이틀도 안 된 이날 오후 2시 기준 13만 명을 넘어섰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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