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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맞이하는 '외치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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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혹서기는 바람이 선득해지는 처서를 넘기고도 끝날 기미가 잘 안 보인다. 여론에 밀려 헐레벌떡 대통령실 인사와 편제를 갈아엎느라 비지땀을 흘렸고, 여당 동지들과의 갈등이 장마철 먹구름인 양 무겁기만 하다. 가을 태풍의 씨앗을 품은 요즘 기상도가 딱 윤 대통령의 심정 아닐까. 취임 후 100일 넘게 보냈지만, 잘했다고 박수 치는 국민은 10명 중 3명이 될까 말까다. 정책은 '설익은 밥', 인사는 '그 밥에 그 나물'이란 비난은 식을 줄 모른다. 불덩이처럼 뜨거웠던 여름이라도 묘하게 처서만 지나면 선선해진다는, 이른바 '처서 매직'은 대통령실에 닿지 않을 것인가.
취임 후 모진 계절을 겪고 있는 윤 대통령에게 그동안의 골칫거리는 대부분 내치(內治)의 문제였다. 섣불리 슬림화한 대통령실이 인사와 홍보 전반에 구멍을 드러냈으며 정부와 정책조정 과정이 원활하지 못하면서 '과학방역'은 불분명해졌고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은 동력이 꺼졌다. 이해관계가 복잡한 집단 간 조율, 명확한 소통을 통한 수고로운 숙의야말로 정치의 요체임을 정치경력 1년 2개월의 윤 대통령이 벌써 체득할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그래도 대통령제의 위기마저 거론되는 지금은 누구라도 개탄스럽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나마 윤 대통령이 1기 신도시 마스터플랜과 관련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라며 고개 숙이고, 문재인 전 대통령 자택 경호 지역 확대로 협치 메시지를 전한 건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어쩌면 대통령실에도 풍요로운 민심이 실린 가을바람이 불어올 수 있다는, 기대감을 완전히 내려놓기엔 아직 이를 수 있겠다. 거듭된 낙마로 윤석열 정부의 추진력에 찬물을 끼얹었던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 인선이 마무리되고 여당의 내홍이 가라앉는다면, 대통령은 일단 내치의 가장 큰 고민을 내려놓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만 윤 대통령이 풀어내야 할 최대 난제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나라 밖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바야흐로 '외치(外治)의 시간'이 대통령실의 혹서기를 이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의 외치 능력에 대한 평가는 공교롭게도 이웃 3국과의 줄다리기를 통해 이뤄지게 된다. 더구나 이들 모두 우리의 막대한 경제적 이익 혹은 손실을 거래 대가로 쥔 채 흔들고 있다. 그래서 결과에 따라 내치의 실패보다 훨씬 끔찍한 파장을 남길 수 있다.
먼저 윤 대통령은 한국, 일본, 대만과 배타적인 반도체 이너서클을 구성해 중국과 맞서려는 미국의 '칩4 동맹' 참여 여부를 조만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당장 이달 말이나 9월 초 칩4 동맹 예비회의가 예정된 터라 시간이 없다. 최악의 경우 우리 반도체 최대 수입국인 중국과의 무역선이 실낱처럼 가늘어질 수 있다. 인플레 감축법으로 우리 기업들의 목줄을 조인 바이든 대통령의 다음 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일을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보낸 중국이 던져놓은 '사드 3불 1한'의 수수께끼도 시한이 코앞이다. 대법원의 미쓰비시중공업 국내 자산 강제 매각 여부 결정을 앞두고 수출규제 해제 뉘앙스를 풍겨대는 일본에도 우리의 카드를 내밀어야 한다. 3각 파도로 몰려온 이들 난제를 윤 대통령이 슬기롭게 풀어내지 못한다면 미국은 또 다른 인플레 감축법, 중국은 한한령 강화, 일본은 제2의 수출규제로 우리를 옥좨올 수 있다.
대통령실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겨눠온 칼날과 어수선한 안방 살림을 서둘러 정리하고 주변국들의 질문에 균형 잡힌 답을 내놔야 한다. 이관섭 정책기획수석의 다짐처럼 '작은 생선 굽듯이' 신중하게 문제지를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야 대통령의 계절도 한여름을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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