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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바이든, 시선 떨군 한민구… 한일 '군사정보공유' 격세지감[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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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2016년 11월 23일. 나가미네 야스마사 당시 주한일본대사가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곧장 2층 집무실로 올라가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만났는데요. 두 사람은 이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에 서명했습니다. 지소미아는 1급을 제외한 군사 2ㆍ3급 기밀과 대외비를 양국이 필요한 경우 상호 요청해 주고받기 위한 것입니다. 2012년 6월 신각수 주일대사가 일본 측과 서명하기 불과 2시간 전에 ‘밀실 추진’ 논란에 휘말려 무산된 바로 그 협정입니다.
행사 후 국방부가 언론에 배포한 사진이 기묘했습니다. 한 장관과 나가미네 대사가 악수하거나 나란히 서서 정면을 바라보고 찍은 모습을 공개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날 사진에는 두 사람 모두 고개를 숙여 시선을 떨군 채 협정문에 서명하는 장면만 담겼습니다. 당연히 등장인물의 표정을 알 수가 없었죠. 협정을 체결하면서도 가급적 숨기며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 정부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일본과의 군사정보 공유는 민감한 이슈입니다. 정치권에서 친일, 매국 프레임으로 덧씌워 비난하기 딱 좋은 소재입니다. 최근 일본 관함식에 참가한 우리 함정을 놓고 ‘욱일기’ 논란이 고조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한미일 3국 정상은 13일 캄보디아에서 만나 “미사일 위협에 대한 탐지·평가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북한 미사일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진 속 조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모두 밝은 표정입니다. 마치 ‘해야 할 것을 이제서야 처리했다’며 후련해하는 속마음이 묻어날 정도입니다.
‘실시간’으로 미사일 정보를 공유하는 건 지소미아보다 훨씬 진일보한 방식입니다. 현재 한미, 미일 간에는 북한 미사일 궤적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시스템을 갖췄지만 한일은 연결고리가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통하거나, 아니면 지소미아를 통해 한일 양국이 정보를 요청하고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히 시간 차가 발생합니다. 이로 인해 미사일 발사를 놓고 한국과 일본은 북한이 실제 몇 발을 쐈는지, 얼마나 높게 멀리 날아갔는지에 대한 분석 결과를 가끔 다르게 발표하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합니다. 북한이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는 실전 상황이라면 미사일 대응 요격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사실 한미일 실시간 미사일 정보 공유는 박근혜 정부에서 지소미아에 이어 추진하던 사안입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중단거리 미사일을 무차별로 쏘고, 일부 미사일은 일본 열도를 넘어가며 위협수위를 높인 데 따른 것입니다. 올해 북한의 도발 양상과도 유사합니다. 한일 간 직접 채널을 열어 북한과 중국에 맞선 한미일 안보공조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입김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탄핵 사태로 인해 3국 간 협의가 중단되면서 결실을 맺지 못하고 물거품이 됩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꺼진 듯 보였던 불씨가 다시 살아납니다. 윤 대통령은 대일정책 기조로 ‘그랜드 바겐(일괄타결)’을 꺼내 들며 일본과의 협력에 적극적인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강제동원 배상을 포함한 과거사 문제 △일본의 일방적인 수출 규제 △유명무실해진 지소미아 정상화 △일본 초계기 레이더 사건 등 난마처럼 얽힌 양국의 굵직한 현안들을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단번에 해결하자는 구상입니다.
이 중 일본과의 군사협력은 가장 껄끄럽고, 언제 국내 여론의 역풍을 맞을지 모르는 고난도의 분야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어려운 문제부터 풀어나가면 다른 문제들은 좀 더 수월하게 풀릴 수도 있습니다. 실시간 미사일 정보공유로 그보다 수준이 낮은 지소미아 정상화는 이미 자연스럽게 해결된 셈입니다. 우리가 주로 일본과 주고받는 군사정보가 미사일과 관련된 것이니까요.
이에 박진 외교부 장관은 내부 회의에서 “일본과의 군사협력부터 물꼬를 터서 관계를 개선해나가자”는 취지로 발언하며 적극적인 대일 접근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로 한일 군사협력이 이전에 비해 훨씬 강력한 명분을 확보한 점도 작용했습니다. 일본 또한 여차하면 상공 위로 날아오는 북한 미사일을 바라보며 영토를 공격당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돼 한국과의 협력 필요성이 커졌다고 합니다.
그 결과 한미일 실시간 미사일 정보 공유라는 중차대한 결정에도 불구하고 예상외로 큰 반발 없이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지소미아 파문으로 떠들썩했던 2012년부터 치면 10년을 돌고 돌아 탄핵 사태를 거치고 북한의 온갖 도발을 코앞에서 지켜보면서 비로소 모양새를 갖춘 셈입니다. 북한은 18일 이전보다 진일보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습니다. 이번 한미일 3국의 전향적인 조치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맞서는 데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할지 지켜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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