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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연금 시위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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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23년 2월, 똑같은 문제를 두고 고민에 빠진 두 나라가 있다. 하지만 분위기는 영 딴판이다. 한 곳은 정부에 뿔이 단단히 났다. 매일 거리로 나서 목청이 떨어져라 소리친다. 다른 한 곳도 정부가 미덥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전혀 다른 두 나라의 반응, 전자는 프랑스고 후자는 우리나라다.
현재 국민연금을 둘러싼 두 나라 정부의 고민은 비슷하다. 이대로 가다간 미래 세대에게 국민연금을 줄 수 있을지 불안하다며, 둘 다 어떻게 하면 곳간을 지킬 수 있을지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단 두 나라가 선택한 방식은 '더 늦게 주자'는 것이다(한국은 아직 검토하는 방안으로 확정하지는 않았다). 프랑스 정부는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자며 국민을 설득 중이다. 프랑스 국민은 "언제까지 일하라는 거냐"며 폭발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은 2033년 65세로 단계적으로 늦어지는 수급 개시 연령에 맞춰 연금 납부가 허용되는 의무가입 상한 연령을 상향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아직 결정된 내용은 아니지만, 정부와 함께 연금 개혁을 작업 중인 많은 전문가가 제시하는 개혁 방안이다.
노후를 위해 착실히 부었는데 정부가 느닷없이 '더 내라', '더 늦게 받아 가라'고 하니 국민 입장에선 '자다가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란 반응이 나올 수 있다. 바닥 민심은 비슷하지만 표현에서 온도 차가 나는 건 문화 차이일 수 있다. 프랑스는 시위가 일상이 된 나라다. 사회 개혁 과제가 화두가 되면 시민들은 반발하며 거리로 뛰쳐나오곤 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슈가 있을 때마다 피켓을 들지는 않는다.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고 느낄 때 촛불을 들고 나오는 나라다.
그런데 두 나라의 차이가 단지 '시위를 하느냐, 안 하느냐'뿐일까. 프랑스 국민들이 분노하는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에서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 현지 분위기를 물었다. 이들의 답은 비슷했다. 프랑스 국민은 연금을 늦게 받는 것 못지않게 '불공정'에 분노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정부안대로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출 경우 유독 불리해지는 계층이 있다. 블루칼라, 육체 노동자들이다. 젊은 시절 지식 노동자나 사무직보다 고된 노동에 시달린 탓에 이들의 은퇴 시기는 비교적 빠를 수밖에 없다. 프랑스 국민들은 임금 격차로 출발선부터 불리한데, 이들을 더 불리한 연금 체계에 빠뜨리는 게 '과연 공정하냐'는 질문을 던진다. 돈의 문제이긴 하나 프랑스 사회의 철학적 가치 또한 놓칠 수 없다는 문제 제기다.
그러나 한국에선 이런 논의를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재정에 부담이 되느냐'에만 초점을 맞출 뿐이다. 보도 경쟁으로 언론이 부추긴 측면도 있지만, 보도로 나온 숫자(보험료율, 가입 상한 연령)에 손사래를 치며 논쟁을 키우고 싶어 하지 않는 정부도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저 수준의 출생률, 매우 빠른 고령화, 저성장 기조까지. 다른 나라보다 암담한 인구·사회구조로 향하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인데, 연금 개혁 주체들은 '남의 얘기'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프랑스처럼 좀 더 큰 담론을 얘기할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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