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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챗GPT에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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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초선 야당 의원이던 노무현이 1988년 ‘5공 청문회 스타’가 된 건 용기 있고 집요한 질문의 힘이었다. “나는 시류에 따라 산다”며 일해재단 자금 지원을 정당화하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향한 정곡을 찌르는 질문 공세는 정경유착의 실체를 알렸다. “힘 있는 사람 따라간다는 거냐” “부정한 것이라도 따라가냐”고 몰아친 끝에 “바른말하는 용기를 못 가졌던 것을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정 회장의 사과를 받아냈다.
□사이토 다카시는 ‘질문의 힘’에서 “공부 부족이 질문 능력 부족의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언론인 손석희가 ‘인터뷰 저널리즘’을 만들어낸 것도 타고난 자질에 치밀한 공부가 보태진 결과다. 2001년 자칭 동물애호가인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와 생방송 전화 인터뷰에서 벌인 ‘개고기 논쟁’이 대표적이다. ‘개고기를 먹으니 한국인은 모두 야만스럽다’는 발언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질문에 답이 막힌 바르도는 “당신 같은 야만인들과 할 말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손석희는 말미에 바르도가 동물애호가라기보다 인종차별주의자라고 결론지었다.
□국민을 대신해 질문할 권리를 부여받는 기자에게 질문 능력은 필수 역량이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방한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줬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긴 침묵 끝에 질문권은 중국 기자에게 넘어갔고, ‘질문도 못 하는’ 기자들에게 비판이 쏟아졌다. 굳이 변호를 하자면,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을 것이다.
□챗GPT가 무서운 속도로 침투하고 있다. 어떻게 생성 AI에게서 원하는 답을 끌어내느냐가 그 사람의 경쟁력인 시대가 머지않았다. 결국 질문이 좋아야 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가 챗GPT를 장착한 ‘빙’과의 대화에서 “핵무기 버튼 비밀번호를 얻겠다”는 끔찍한 답을 끌어낸 건, 칼 융의 심리학에 등장하는 ‘그림자 자아’, 즉 내면 깊은 곳의 어둡고 부정적인 욕망을 질문에 담은 결과였다. 파괴적인 답이 아니라 생산적인 답을 끌어내는 것 역시 질문의 힘일 것이다. 노무현, 손석희가 챗GPT를 남들보다 잘 쓸 수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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