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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 대신 카누… 잔잔한 물결에 살며시 노 저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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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만큼 보이는 사람, 마을, 자연. 매주 수요일 여행 감성을 자극하는 풍경을 찾아갑니다.
바다가 없는 충북에도 섬은 있다. 유속이 느려지거나 물 흐름이 바뀌면서 강 중간에 퇴적물이 쌓여 형성되는 섬, 하중도다. 충주댐 하류 물굽이에는 솔섬, 여우섬, 봉황섬, 비내섬 등 제법 덩치가 큰 섬들이 있다. 오랜 세월 강에 기대 살아온 주민들의 애환이 깃든 곳이자, 대규모 습지가 만들어낸 생태의 보고이기도 하다.
충주댐 하류 조정지댐(보조댐) 바로 아래에 솔섬이라는 큰 섬이 있다. 강줄기 따라 4km 넘게 가늘고 길쭉하게 휘어진다. 현재는 대규모 야영시설이 들어서 ‘목계솔밭 캠핑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
강 서쪽 장천리 마을에 붙은 섬인데 ‘목계솔밭’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다. 조선 헌종 때 강 건너 목계마을 촌장이 꿈을 꾸었다고 한다. 용이 목을 늘이고 한강물을 마시는데 앞발은 목계마을 동산에, 꼬리는 강 건너 장미산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용이 장천리 앞 저우내에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솔밭을 만들라’는 노인의 음성에 따라 그대로 실행했더니 그 즉시 비가 내려 해갈이 되었다고 한다. 1982년 충청북도에서 주민들에게 채록해 발간한 ‘전설지’에 실린 이야기다.
솔밭의 관할권을 둘러싸고 두 마을이 갈등을 빚었다. 강 서쪽 주민은 저우내가 장천리 땅이니 자신들 소유라 주장했고, 목계마을에서는 자기들이 소나무를 심었으니 직접 관리하겠다고 맞섰는데 결국 수적으로 우세한 목계 사람들의 위세에 ‘장천솔밭’이 아니라 ‘목계솔밭’이 됐다.
목계는 오래전부터 일대에서 알아주는 큰 나루터였고, 1930년대 충북선 철도가 가설되기 전까지 남한강 수운의 물류 중심지였다. 목계나루가 성황을 누릴 수 있었던 건 조선 세조 11년(1465) 정부의 조세 창고인 가흥창(嘉興倉)이 설치되고부터다. 가흥창은 단양에서 영동에 이르는 충북 전역은 물론 경상도 일부 지역의 세곡까지 거두어 서울로 운송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관의 주도와 민간의 상업활동이 더해지며 목계장터도 덩달아 커졌다. 전국 팔도에서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었으니 장시 번성을 위한 목계별신굿과 씨름, 줄다리기, 윷놀이, 보부상놀이 등이 펼쳐졌고 큰 상인을 상대하는 기녀들의 노랫가락도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사당패나 걸립패는 목계장터를 누비며 흥을 돋우었고, 상인들의 돈주머니를 노린 투전과 골패도 성행했다. 남한강 유역 장시 문화를 보여 주는 축소판이었던 셈이다.
이제 목계에서 시끌벅적하고 흥청거리던 옛 모습을 떠올리기 어렵다. 마을 초입에 ‘목계나루터’라 새긴 커다란 표석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 신경림의 ‘목계장터’ 시비가 옛 시절을 회고하고 있을 뿐이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로 시작하는 시에는 ‘청룡 흑룡’과 함께 ‘뱃길이라 서울 사흘’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강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는 ‘강배체험관’이 들어섰다. 명칭은 체험관이지만 꿈처럼 사라져버린 목계의 옛 추억을 들추는 전시관이다. 지서 우체국 등 관공서와 금융조합, 소금집 등 상업시설이 빛 바랜 사진으로 걸려 있고, 바닥을 평평하게 만든 강배도 재현해 놓았다. 신경림에 앞서 남한강과 목계나루를 노래한 정약용과 이덕무 등 당대 문인들의 글도 전시해 놓았다. 체험관 앞 솔섬 위로는 38번 국도 목계대교와 평택제천고속도로 남한강대교가 나란히 가로지르고 있다. 방식이 바뀌었을 뿐 사통팔달의 물류 중심인 것은 변함이 없다.
솔섬 서쪽은 육지와 늪으로 연결돼 있어 엄밀히 말해 섬은 아니었다. 10여 년 전 4대강 정비사업을 진행하며 늪지대를 정비해 수로를 만들었다. 수로 양쪽에는 버드나무가 가로수처럼 무성하게 자랐다. 충주댐 조정지댐 아래에서 목계솔밭 캠핑장까지 이어진 물길은 요즘 ‘장자늪 카누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캠핑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약 3km 상류로 이동해, 간단하게 조정법을 익힌 후 2인용 카누에 몸을 싣고 출발 장소로 되돌아오는 데 약 2시간이 걸린다. 체험을 마친 강경애(63)씨는 유람선이 단순히 구경이라면 카누는 그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격이어서 느낌이 아주 달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카누 체험은 11월까지 무료로 시범 운영되고, 내년 4월부터 유료로 전환된다. 시범 운영 기간 목·금요일 이틀은 충주 시민을 대상으로, 토·일요일은 네이버 예약을 통해 체험객을 모집한다.
‘장자늪’도 전설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옛날 이곳에 살던 천석꾼 장자가 시주 온 노승을 모욕하고 학대해 그 벌로 집이 물에 잠기고 늪지대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대신 사과한 며느리에게 노승이 미리 탈출할 방법을 일러 주었는데, 돌아보지 말라는 충고를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가 돌로 굳어졌다는 전설은 이곳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 전해오고 있다.
전설과 상관없이 해마다 유기질 토사가 쌓이는 섬은 비옥한 농토다. 캠핑장을 제외한 섬의 나머지 땅은 광활한 무밭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무가 한때 전국 단무지 재료의 70%를 감당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연히 무청도 흔해 충주 전통시장의 순댓국에는 꼭 시래기가 들어간다고 한다.
목계솔밭 아래에는 여우섬이 있다. 남한강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여우 한 마리만 간신히 피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섬이다. 길이 약 1㎞, 폭 400m 정도의 제법 큰 섬이지만 길이 없어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땅이다. 섬으로 갈라진 물줄기 중 마을 쪽으로 흐르는 여울을 지역에서는 ‘막흐래기’라 부른다. 물이 막(거세게) 흘러 희희낙락하다가는 큰일 난다는 의미다. 여우섬을 휘돌아 도는 물살에 배가 뒤집히는 일이 빈번해 삯을 받고 무사히 건네주는 골패가 있었고, 사고 방지를 위해 '도선별장'을 배치할 정도였다.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도 ‘막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여울이다.
여우섬에서 대각선 하류 쪽으로 비슷한 규모의 섬이 있다. 섬을 잇는 징검다리까지는 자전거길을 통해서만 갈 수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덕분에 섬 안에 들어서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무인도에 불시착한 느낌을 받는다. 버드나무와 미루나무가 제멋대로 무성하게 자랐고, 바닥을 덮고 있는 억새와 갈대가 은빛으로 반짝거린다.
마을과 늪지대로 연결된 이 섬은 아직까지 명확한 명칭이 없다. 어떤 자료에는 지명을 따 능내리섬이라 적혀 있고, 주민들은 봉황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로 아래 앙성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낮게 솟은 봉우리가 봉황산이기 때문이다. 산기슭에 설치한 철새 전망대에서 강줄기와 섬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 초입에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데, 봉황에 한참 못 미치는 (닭)벼슬바위다.
봉황섬 아래 비내섬은 가을철 충주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이다. 강변도로에서 바로 섬으로 걸어 들어가는 다리가 놓여 있다. 여러 갈래 산책로가 조성된 섬 안은 온통 억새 물결이다. 봉황섬과 분위기가 비슷하지만 억새 군락의 규모는 더 크다. 높낮이가 거의 없어 실제보다 훨씬 넓어 보인다. 버드나무와 억새 군락 사이로 난 산책로를 걷다 보면 방향감각이 흐려져 길을 잃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될 정도다. 작은 섬이 빚은 막막하고 광활한 풍광은 ‘사랑의 불시착’을 비롯해 여러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해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비내’라는 명칭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마을 쪽에 가까이 있던 물길이 ‘변해’ 그렇게 불렀다고도 하고, 소여물이나 이엉으로 쓰려고 무성하게 자란 억새와 갈대를 아무리 ‘비내(베어 내)’도 그대로여서 ‘비내섬’이 됐다고도 한다. 가을날 비내섬은 비워 내는 섬이다. 일상의 스트레스와 응어리진 마음을 억새에 이는 바람에 날려 보내고, 하늘빛 담은 강물에 그 헛헛함마저 흘려보내기 좋은 곳이다.
비내섬 주변 남한강은 예부터 풍광 좋은 쉼터였다. 인근 조대마을은 17세기 김익창이라는 인물이 당대 실세인 송시열과 허목의 권유에도 정계 진출을 마다하고 낚시를 즐겼다는 데서 이름한 마을이다. 조대마을 맞은편은 소태면 복탄마을이다. 배로 오가던 두 나루터에 지금은 ‘복여울교’가 놓였다. 비내섬으로 물길이 두 개로 갈라지는 지점이라는 명칭이다.
다리 건너 소태면의 청룡사지는 역사와 미술, 건축에 관심 있는 학생과 단체의 단골 탐방 코스다. 텅 빈 절터에 남은 사리탑은 국보로, 비와 석등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조선 전기 승려 보각 국사의 사리를 봉안한 탑은 둥그스름하면서도 각지지 않은 8각 지대석과 정교한 조각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매끄러운 곡선 지붕돌을 힘겹게 떠받치고 있는 듯한 사자 석등은 해학이 넘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주차장에서 석탑까지 이어지는 짧은 산길은 융단을 깔아놓은 듯 푹신한 이끼로 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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