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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과 협잡, 공포와 자비의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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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 정치철학자들의 정치 윤리는 민주주의의 근사한 가치와 제도를 정초했지만, 인간의 권력의지와 정치행위는 유혈이 낭자했던 고대 로마 제정시대의 행태와 본질적으로 달리진 게 많지 않다. 오늘날 수많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체제가 겪고 있는 불안한 현실도 궁극적으론 저 간극 즉 당위와 윤리로 지탱되는 대외적 명분과 패덕-협잡조차 수용하는 냉엄한 정치현실에 두 다리를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15세기 저작 ‘군주론’이 지금도 읽히는 까닭도 저 현실적 한계 때문일 것이다.
'군주론'의 모델이 된 15세기 이탈리아 정치인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1475.9.13~1507.3.12)는 명분을 앞세우는 이들에겐 속물정치의 상징이자 교지(狡智)의 상징적 존재지만 ‘현실 정치’를 입에 달고 사는 이라면 영원한 교사로 여길 만한 인물이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사생아로 태어난 보르자는 가문의 영달과 아버지 즉 교황권의 강화를 위해 군사외교에서는 배신과 협잡을, 통치에서는 공포와 자비를 능란하게 구사했고, 그럼으로써 마키아벨리가 보기에 16세기 이탈리아의 지리멸렬한 현실을 타개할 군주의 현실적 모델이 됐다.
보르자는 특히 반교황세력이 포진한 로마냐(Romagna)를 장악하기 위해 먼저 원군(프랑스군)을 끌어들이고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용병을 활용하며 용병마저 위협이 되자 비로소 자신의 군대를 동원해 자신의 로마냐 공국을 구축했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이이제이’는 누군가에겐 전략이지만 당사자에겐 모략이다. 특히 보르자의 용병 입장에서는 토사구팽이었다. 또 그는 잔인한 행정관을 현지에 파견해 지역민을 억누른 뒤 민심을 잃은 그 행정관을 공개처형함으로써 “백성이 자기를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하도록” 했다. 마키아벨리는 둘 중 하나 즉 공포와 사랑 둘 중 하나만 얻어야 한다면, 무릇 군주는 두려운 존재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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