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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휘발유 배급제의 여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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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진주만 공습 당일인 1941년 12월 7일, 미연방 물가관리국(OPA)은 휘발유와 철강 알루미늄의 품귀 전망과 함께 주요 생활필수품의 배급제 필요성을 처음 제기했다.
나흘 뒤 연방정부는 첫 배급제 품목으로 자동차 타이어를 선정, 지역별 차량 등록대수에 따라 타이어를 차등 보급했다. 일본이 동남아 여러 나라를 이미 점령해 천연고무 수입이 불가능했고, 합성고무는 아직 상업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듬해 1월 전시생산위원회(WPB)는 민간 자동차 판매를 아예 금지하고 2월부터 용도를 평가해 선별 판매하도록 했다. 3월에는 타자기, 5월부터는 자전거가 배급제 대상에 포함됐다. 앞서 그해 2월부터 미국 자동차회사들의 모든 생산라인은 탱크와 항공기 등 군수물자 부품라인으로 전환됐다.
휘발유는 1942년 5월 15일 동부 17개주를 시작으로 배급 품목에 포함됐다. OPA가 발행한 스티커의 색상과 알파벳 기호에 따라 차량 등급이 나뉘었다. A스티커를 받은 일반 차량 소유주는 주당 11~15리터(L), B스티커의 군수공장 노동자는 최대 30L를 살 수 있었다. 성직자와 경찰관 소방관 민방위대원에겐 휘발유를 무제한 살 수 있는 X스티커가 발급됐다. 의회 의원들에게 X스티커가 발급된 게 밝혀져 서민들의 분노를 산 일도 있었다. 미국 시민들은 OPA를 “Only a Puny A-Card(별 볼 일 없는 것들만 A카드를 받는다)”라 부르며 자조했다. 연료와 타이어를 아끼기 위해 고속도로 속도 상한선도 시속 35마일(약 56km)로 정해졌다. 언론은 그걸 ‘승리의 속도(Victory Velocity)’라 썼다.
그 덕(?)에 자전거와 대중교통 이용률이 증가했고, 고속도로 차량 연료 소비량은 전쟁 전보다 32% 감축됐다. 미국의 전시 휘발유 배급제는 1945년 8월 15일 종료됐지만, 70년대 중동전쟁으로 2차례 더 시행됐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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