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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회 반칙패 자초한 中 커제 ‘뒤끝’, 시상식도 불참…구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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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3번기·3판2선승제) 결승 3국에서 커제(맨 왼쪽) 9단이 한국기원 관계자들에게 대국 규정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바둑TV 유튜브 캡처
현재 진행 중인 세계 메이저 기전 가운데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우승상금 3억 원) 결과엔 언제나 스포트라이트가 쏠린다. 기전 규모도 적지 않은 데다 매년 이맘때인 연초에 우승자가 결정, 그해 세계 바둑계 분위기까지 가늠할 수 있어서다. 그랬던 ‘LG배 기왕전’이 올해엔 예상 밖의 돌발 변수에 반상(盤上)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전망이다.
화제의 중심엔 중국 바둑계 간판스타인 커제(28) 9단이 자리했다. 지난 2020년 당시 또 다른 세계 메이저 기전인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우승상금 3억 원)에서 우승한 이후, 내림세에 들어섰던 커제 9단의 이번 ‘제29회 LG배 기왕전’ 결승 진출은 ‘중국 바둑 황제의 부활’ 여부로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지난 2008년 입단한 이후 지금까지 수집된 커제 9단의 우승컵은 모두 23개. 이 중엔 8개의 세계 메이저 기전 타이틀이 포함됐다. 만약 이번 ‘LG배 기왕전’에서 우승할 경우, 커제 9단의 역대 세계 메이저 기전의 자국 내 우승 순위는 공동 1위였던 구리(42) 9단을 제치고 단독 1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커제 9단이 올해 ‘LG배 기왕전’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심기일전에 올인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유이기도 하다. 더구나 상대는 이 대회 직전까지 6전 6승으로, 천적 관계였던 한국의 동갑내기 변상일 9단이었기에 커제 9단의 자신감도 충만했다. 당대 반상 권력 서열의 바로미터로 각인된 세계 메이저 기전 우승에선 이창호(50) 9단이 17회로 압도적인 1위에 박제된 가운데 이세돌(42, 14회·2019년 은퇴) 9단과 조훈현(72, 9회) 9단 등으로 자리한 상태다.
지난 23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3번기·3판2선승제) 결승 3국에서 커제 9단에 의해 따내진 변상일 9단의 2점의 백돌이 규정에 따라 지정된 (바둑)돌통 뚜껑이 아닌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바둑TV 유튜브 캡처
이런 분위기에 시작된 커제 9단의 이번 ‘LG배 기왕전’ 결승전 출발은 괜찮았다. 결승 1국에서 접전 끝에 승리한 커제 9단은 2국 초반도 자신의 기풍대로 이끌었다. 사고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터졌다. 2국 개시 10분이 채 지나지 않은 국면 도중, 커제 9단이 착수 이후 따낸 돌(사석)을 정해진 사석 통에 넣지 않으면서 경고 1회와 벌점 2집을 받은 것. 커제 9단은 이어진 대국에서 또다시 80수에 동일한 실수 반복으로, 대국 규정에 따른 (2차례 경고 누적 시 주어지는) 반칙패를 당했다. 한국 바둑 경기 규정 제4장 벌칙 제18조 경고 조항 중엔 ‘사석을 (바둑) 통의 뚜껑에 보관하지 않는 경우’와 제19조 반칙 조항 중 ‘경고가 2회 누적된 경우’에 해당됐다. 이 규정은 대국 종료 이후, 사석으로 계가를 진행하는 한국 바둑의 경기 특성에서 도입됐다. 대국 도중에도 선수들에겐 필수인 정확한 수시 계가를 위해 상대방의 사석도 서로 잘 보이는 위치에 놓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지난해 11월부터 채용된 이 대국 규정은 한국기원에서 주관하는 모든 대회에서 적용되고 있다. 이번 ‘LG배 기왕전’에 참가한 선수들에게도 사전 공지를 마쳤다.
이에 반해 중국 바둑에선 이런 규정이 없다. 계가 시에도 바둑판 위의 생존한 돌로 승패를 가리는 경기 방식이어서다. 사석을 손에 쥐고 있거나 정해진 위치가 아닌 곳에 던져 놓아도 무방하단 얘기다. 결국 이번 ‘LG배 기왕전’ 2국에서 나온 커제 9단의 반칙패는 자국 내 경기 규정에 익숙한 습관에서 불거진 해프닝으로 보였다.
중국의 커제 9단이 지난 23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3번기·3판2선승제) 결승 3국에서 한국의 변상일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문제는 2국서 이렇게 패했던 커제 9단이 3국에서 역시 똑같은 실수로 패배를 자초했다는 데 있다. 대국 도중, 우변 155수에 이어 따낸 변 9단의 돌을 오른편에 자리한 통 뚜껑이 아닌 왼편의 대국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면서다. 뒤늦게 눈치챈 커제 9단이 사석을 놓여져야 할 위치에 옮겼지만 용인될 리는 만무했다. 더구나 논란 직전까지 3국 판세는 대국 초반 좌변 전투 가운데 나온 커제 9단의 치명적인 실수로 일찌감치 변 9단에게 기울었던 터였다. 이때 인공지능(AI) 승률 그래프는 100% 가까이 변 9단에게 향했다.
더 큰 문제는 이후 보여준 커제 9단의 행태다. 커제 9단은 “심판이 직접 사석 관리 위반을 통보하기 직전에 사석을 통 뚜껑에 놓았으니 문제가 없지 않느냐”라며 거친 손가락질과 함께 고성으로 심판진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커제 9단은 특히 현장에서 한국의 사석 관리 위반 규정이 중국 선수들을 표적으로 겨냥해서 도입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3국은 2시간 이상 지연됐고 커제 9단은 이번 ‘LG배 기왕전’ 우승컵을 변 9단에게 내줬다. 평정심을 상실한 커제 9단은 이어 24일 열렸던 이번 ‘LG배 기왕전’ 시상식에도 불참했다.
지난해 11월, 중국 쓰촨성에서 신생 세계 메이저 기전으로 열렸던 ‘제1회 난양배 월드바둑마스터스’(우승상금 25만 싱가포르달러, 약 2억5,500만 원) 대회의 32강전에서 만난 커제(27·오른쪽) 9단과 박정환(31) 9단이 박 9단의 마지막 초읽기 이후, 두어진 착점에 대해 초시계를 보면서 확인하고 있다. 박 9단은 사상 초유의 '무음 초읽기' 규정을 적용한 이 대국에서 다 잡았던 승리를 놓쳤지만 별도의 항의를 제기하진 않았다. 바둑 TV 유튜브 캡처
이에 대해 바둑계 안팎에선 부정적인 목소리가 팽배하다. 해당 규정은 이미 대회 직전, 중국 측에 통보됐고 공유까지 됐던 데다 2국에 이어 3국에서도 똑같은 실수를 범한 커제 9단의 돌출 행동에 대해선 공감할 순 없단 시각에서다. 물론, 판이하게 다른 한·중 양국의 계가 문화를 충분하게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지만 한국의 사석 관리 규정을 인지할 만한 물리적인 시간은 충분했단 시선이다.
아울러 중국 내에서 열린 기전에 참석하는 한국 선수들도 해당 기전의 규정을 사전에 숙지하고 대국에 임해왔던 기류도 감안해야 한단 지적이다. 지난해 11월 신생 세계 메이저 기전으로 개최됐던 ‘제1회 난양배 월드바둑마스터스’(우승상금 25만 싱가포르달러, 약 2억5,500만 원)에서 도입된 사상 초유의 ‘무음 초읽기’ 규정 탓에 한국의 박정환(32) 9단이 당시 다 잡았던 커제 9단과의 대국을 패했지만 별다른 항의 없이 결과를 받아들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제29회 LG배 기왕전’에서 중국의 커제 9단을 꺾고 우승한 변상일 9단은 24일 열린 시상식 직후 “승부가 찝찝하게 끝나서 마음이 불편하고, 커제 선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된다"라며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전했다. 한국기원 제공
중국바둑협회의 입장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중국바둑협회는 커제 9단의 이번 ‘LG배 기왕전’ 3국 패배에 대해 별도 성명을 통해 “심판의 중단 시기가 부당하고, 경기의 정상적 진행에 영향을 줬다”라며 “심판의 과도한 방해를 받아 계속 경기를 마칠 수 없었다고 본다”라고 직격했다. 이어 "경기 주최 측인 한국기원에 이의를 제기했고, 재경기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며 "이번 LG배 3국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중국바둑협회 측의 이런 공식 반응은 더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LG배 기왕전 3국에서 커제가 사석 관리 규정을 위반한 심판의 뒤늦은 지적 시점에 대한 불만인데, 이는 사실관계가 호도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기원 측에서 커제의 사석 관리 위반 시점에 바로 지적하고 싶었지만 “본국 바둑협회와 논의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중국 대표팀 의견을 반영하면서 심판의 개입 시점도 지체됐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 중견 프로 바둑 기사는 “전 세계로 생중계된 메이저 기전에서 초일류 기사인 커제 9단의 감정적인 행동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라며 “이번 ‘LG배 기왕전’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옛 속담이 떠올랐던 대회였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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