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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제국' 부활 꿈꿨지만 몰락만 가속화... 팻 겔싱어 CEO 씁쓸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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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부활'을 꿈꾸며 미국 대표 반도체 기업 인텔을 이끌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1일(현지시간)부로 사임했다. 2021년 2월 흔들리던 인텔에 구원투수로 등판한 지 약 4년 만이다.
그러나 인텔이 2일 겔싱어의 사임 소식을 발표한 지 몇 시간 만에 블룸버그통신은 겔싱어가 지난 주말 이사회로부터 '사임 혹은 해임' 중 택일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전했다. 사퇴의 형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해임됐다는 것이다. 1979년 엔지니어로 인텔에 입사해 최고기술책임자까지 지낸 뒤 퇴사하고, 2021년 CEO로 화려하게 복귀한 '전설'의 씁쓸한 퇴장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갑작스러운 리더십의 교체는 56년 역사의 인텔이 겪고 있는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짚었다. 같은 날 뉴욕증시에서 인텔 주가는 한때 4.6%까지 올랐고, 결국 2.6% 상승으로 마감했다. 시장 역시 인텔의 변화 시도를 일단 환영했다는 의미다.
중앙처리장치(CPU)로 PC시대를 호령하며 '반도체 제국'으로 불렸던 인텔은 2000년대 들어 사세가 크게 꺾였다. 모바일 시대로 전환하는 흐름을 제대로 타지 못한 사이, AMD 같은 업체들과 경쟁이 심해지고 애플과 같은 장기 고객을 잃은 탓이다.
CEO로 돌아온 겔싱어의 임무는 인텔의 전성기를 되찾는 것이었다. 인텔이 2018년 사실상 접었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 재진출로 그는 반전을 꾀했다. 3년여 공백기가 있었지만 "2030년 대만 TSMC를 잇는 업계 2위로 올라서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사실상 삼성전자를 밀어내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NYT는 "TSMC는 2나노(㎚·1nm은 10억 분의 1m) 공정에서 30%대의 수율(생산품 중 정상품 비율)을 달성한 반면, 인텔의 최신 공정인 1.8나노 공정은 10% 미만에 그쳤다"며 "이 같은 차이는 고객사들이 동일한 수의 칩을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며, TSMC를 더 선호하게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기대했던 파운드리 사업이 부진을 거듭하면서 인텔은 더 깊이 가라앉았다. 겔싱어의 임기 동안 인텔의 매출은 2021년 대비 30% 이상 감소했고, 지난해에는 분기당 평균 166억 달러(약 23조2,860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인텔 역사상 최대 손실이었다. 주가는 올 들어서만 약 50% 하락했다. 이로 인해 인텔은 올해 1만5,000여 명을 정리해고하고, 독일 등의 공장 투자 계획도 연기하거나 취소했다.
NYT는 "겔싱어의 인텔 회복 계획은 미국 정부의 재정 지원에 크게 의존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조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과학법'(칩스법)에 근거해 당초 지급하기로 했던 85억 달러에서 7억 달러를 깎은 78억 달러를 인텔의 최종 보조금으로 확정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겔싱어 입장에서는 본인이 추진하던 역점 사업도, 흔들리는 회사를 지지해 줄 정부 보조금 확보도 모두 실패한 셈이었다.
겔싱어가 떠난 인텔은 사업 구조를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인텔은 데이비드 진스너 인텔 최고재무책임자와 미셸 존스턴 홀트하우스 사장이 임시 CEO로 회사를 이끄는 동안, 파운드리보다는 제품 사업에 더 중점을 두겠다고 밝힌 상태다. 블룸버그는 "차기 CEO는 (TSMC 같은) 경쟁사들과의 경쟁, 인공지능(AI) 컴퓨팅 기술의 격차 해소 등 겔싱어가 직면했던 동일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누가 되든 빠른 기술 변화 속에서 인텔의 입지를 강화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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