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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재'도 스토킹?... 검사들이 활용할 '스토킹처벌법 안내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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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신동준 기자
지난해 9월, 의료계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은 의사 등 1,100여 명의 신상 정보를 퍼뜨린 사직 전공의가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자 의료계 일각에선 '잘못된 죄목'이라며 반발했다. "온라인에 개인정보를 올린 게 왜 스토킹이냐. 정보 게시만으론 공포심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검찰은 개인정보를 온라인에 배포해 집단 조롱의 대상이 되도록 한 "온라인 스토킹의 전형적 모습"이라며 사직 전공의를 구속기소했다.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흘렀다. 과거 경범죄 등으로 가볍게 여겨지던 스토킹범죄는 연간 1만 건 이상(2023년 기준) 검찰에 송치될 만큼 생활 속 주요 범죄로 떠올랐다. 가해자 엄벌과 피해자 보호의 중요성이 각인되는 효과가 있었지만, 법 적용 범위와 해석을 둘러싼 논쟁도 치열해졌다.
14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2부의 '스토킹처벌법 벌칙해설'에는 검찰의 사건 처리 경험과 판례를 바탕으로 법 해석과 적용 방향이 담겼다. 검사 7명이 4개월간 머리를 맞대 만든 수사기관의 첫 안내서다. 책 집필을 진두지휘한 박윤희 여성아동범죄조사2부 부장검사는 "스토킹처벌법을 적용할 때 적극적 피해자 보호와 과잉형사화 방지를 동시에 고려하기 위해 지침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안내서는 전국 검찰청에 배포됐다.
검찰 송치 스토킹처벌법 위반 사건 수. 그래픽=신동준 기자
안내서에는 주거지 방문이나 전화 통화 등 일상적인 행동이 스토킹 행위인지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 담겨 있다. 최근엔 층간소음 항의나 1인 시위, 채권 추심 등 기존엔 스토킹으로 인식되지 않던 행위도 스토킹으로 신고되는 일이 늘면서 요건을 엄격히 따질 필요가 커졌다. 7가지 스토킹 유형에 해당하는 행동을 △상대방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면 '스토킹 행위', 이를 지속·반복하면 '스토킹 범죄'가 된다.
다만 '정당한 이유', '불안감 유발' 등의 요건이 주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다양한 판례를 통해 유무죄 판단 근거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예컨대 A씨는 2022년 7~9월 윗집에서 소음이 들리자 관리사무소 직원이나 경찰과 함께 찾아가 소음 발생 여부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거부당했다. A씨는 이에 윗집을 12회 찾아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등의 행동을 했지만 무죄 선고를 받았다.
반면 2021년 윗집에서 소음이 들리자 경찰이나 이웃의 중재 노력을 무시하고 한 달간 30여 회 천장을 두드리고 스피커로 음악을 튼 B씨는 유죄 판단을 받았다. 판결을 가른 건 '정당한 이유'의 유무였다. 검찰은 A씨 사례의 경우 소음 원인 확인을 위해 접촉을 시도한 것일 뿐 괴롭히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지만, B씨 사례는 소음 원인 확인이나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한 합리적 범위 내의 행위는 아니라고 봤다.
삭제된 의료계 블랙리스트. 홈페이지 캡처
해설서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2023년 법 개정으로 신설된 '사이버스토킹'의 특이성에 대한 분석이다. 검찰은 온라인 공간의 전파성, 확산성으로 한 번 게시된 피해자 정보는 영구 삭제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정보가 삭제되지 않고 온라인에 계속 남아있다면 스토킹범죄 요건인 '지속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책에선 사이버스토킹 처벌 관련 예상 쟁점도 미리 분석했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유튜버의 신상 공개 등 사적 제재가 대표적이다. 검찰은 유튜버가 방송에서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공개했을 경우, 그 행위가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인지' 판단하기 위해 '공인 이론'을 참고할 것을 제안했다. 피해자가 공인인지, 내용이 공공성을 갖춘 사안에 관한 것인지 따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비판을 자초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공적 사안을 방송했다면, 스토킹처벌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민감 정보를 게시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대상을 괴롭히라고 선동했다면 불법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실제 지난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라며 여러 사람의 신상을 공개하고,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 '사과 영상을 보내지 않으면 당신 가족의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위협한 30대 유튜버는 협박 및 스토킹처벌법 등 혐의로 구속됐다.
저자들은 응급조치·긴급응급조치·잠정조치 등 피해자 보호제도에 대한 설명에도 공을 들였다. 스토킹처벌법은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려고 마련됐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다만 형이 확정되지 않은 가해자를 대상으로 신체·자유를 억압하는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및 유치 등의 잠정조치는 법원이 그 필요성을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검사들은 사이버스토킹에 적합한 새로운 잠정조치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현행 보호조치는 100m 이내 접근금지 등 물리적 차단 중심이라서, 가해자 특정조차 어려운 사이버스토킹의 경우엔 실효성이 떨어진다. 박 부장검사는 "기존 조치만으로는 스토킹 범죄를 예방하기에 빈틈이 있다"며 "새로운 스토킹 유형에 적합한 피해자 보호조치를 지속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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