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원장 “사법독립 위협... 법관에 폭력·판결 무시” 트럼프 우회 비판?
미국 사법부의 최고 수장인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이 2024년 마지막 날, 연례 보고서에서 "사법의 독립성이 여러 측면에서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3주 후쯤 '집권 2기'를 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워싱턴포스트·WP) "트럼프가 대법원장의 꾸지람을 들은 듯하다"(폴리티코) 등의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WP 등에 따르면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날 '2024 연말 보고서'를 통해 "전국의 판사들이 폭력과 위협, 허위 정보 등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최근에는 판사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위협이 너무 심해졌다"고 진단했다. 지난 10년간 미국 내 법관을 향한 적대적 위협은 3배나 늘어났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2022년에는 무려 1,300건 이상의 관련 사건이 조사되기도 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극단적인 경우, 판사들이 공개 행사 참석 시 방탄조끼를 착용하기도 한다"며 "법관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협박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NYT는 "이례적으로 절박하고 어두운 내용의 보고서"라고 짚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이런 행태를 선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선출직 공무원들이 연방법원 판결을 공개적으로 무시하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는데, 아무 근거도 없이 '판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판결을 했다'고 주장하는 식"이라며 "공무원들의 과도한 비난은 타인의 위험한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의 이러한 발언은 트럼프 당선자를 겨냥하고 있다는 게 다수 언론의 해석이다. 예컨대 트럼프 당선자는 대통령 첫 집권 시절인 2018년, 자신의 이민 정책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판사를 '오바마 판사'라고 부르며 비난했다. 2016년 대선 후보 시절에는 '트럼프 대학 관련 민사 소송'을 맡았던 법관을 향해 "멕시코계 유산 때문에 편파적"이라는 인종차별 발언까지 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번 보고서에서 "일부는 판사의 인종이나 성별, 민족성을 이유로, 또는 판사를 임명한 대통령의 정당을 근거로 해당 판사가 자신에게 적대감을 품는다는 거짓 주장을 편다"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자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자체가 미국 사법부에 '도전'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WP는 "트럼프는 수많은 이민자 추방, 수입품에 대한 엄청난 관세 부과, 연방정부 공무원 수천 명 해고 등을 약속했다"며 "이런 정책은 결국 이의제기로 법원 판결을 받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CNN방송도 "트럼프의 정책, 특히 이민 문제는 대법원과 충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첫 집권 시절 트럼프 당선자가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을 지명해 연방대법원 이념 지형을 확 바꿨던 전례에 비춰, 향후 그가 사법부를 더 우경화하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로버츠 대법원장은 최근 대법원이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던 정치 편향·윤리 문제에 대해선 침묵했다. 지난해 5월 보수 성향 새뮤얼 얼리토 주니어 대법관은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이 2021년 1월 6일 의사당 폭동 사태 때 사용했던 '뒤집힌 성조기'를 집 앞에 게양한 적이 있다. 또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의 경우, 텍사스 억만장자로부터 호화 요트 여행 등 수백만 달러 상당 향응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사법부에 대한 대중의 평판을 떨어뜨린 스스로의 행위에 대해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실제 법원을 향한 미국인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최근 갤럽조사에 따르면 '사법부를 신뢰한다'고 답한 응답률은 35%에 불과했다. 연방판사 출신인 제러미 포겔 버클리사법연구소 전무이사는 WP에 "대법원이 더 엄격한 윤리강령과 투명한 운영방식을 채택해야만 (추락한) 평판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높은 기준과 적절한 모범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