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콜드케이스

성탄절 트리 찾다가 증발한 일가족… 66년 만에 수면 위로

1958년 12월 7일 일요일, 미국 오리건주(州) 포틀랜드에 살던 케네스 마틴(당시 54세)은 오후 1시쯤 자택 차고에서 포드사의 1954년형 컨트리스퀘어 스테이션왜건을 꺼냈다. 포틀랜드에서 동쪽으로 약 40마일(64㎞) 떨어진 컬럼비아 강변의 작은 마을 '캐스케이드 록스'에 위치한 산골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전날 동네 이웃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했던 케네스과 아내 바버라(당시 48세)는 세 딸 바비(당시 14세), 버지니아(당시 13세), 수전(당시 11세)과 함께 크리스마스 장식용 나뭇가지들을 모을 참이었다. 케네스는 수년 동안 빨간색 산타 할아버지 옷을 입고 이웃들에게 대형 사탕 지팡이를 나눠 주며 크리스마스를 함께해 왔다. 그 덕분에 이들이 살던 포틀랜드 북동부 로즈웨이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사탕 지팡이 마을'이란 별칭으로 불렸다. 그날은 유독 크리스마스 장식용 나뭇가지들을 찾기 좋은 날이었다. 하늘은 흐렸지만 비가 올 기미는 없었다. 기온도 10~15도로 따뜻했다. 이들 가족은 크림색, 빨간색 트리밍이 특징인 차량을 타고 컬럼비아강 협곡을 향해 동쪽으로 이동했다. 오후 4시쯤에는 캐스케이드 록스에 있는 주유소에서 휘발유 5갤런(약 19L)을 구매했다.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캐스케이드 록스에서 동쪽으로 20마일(32㎞) 떨어진 '파라다이스'라는 식당에서 목격됐다. 이것이 마틴 가족의 마지막 흔적이다. 포틀랜드의 한 전기 회사에서 서비스 매니저로 일하던 케네스가 직장으로 출근하지 않자 케네스의 상사가 9일 저녁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같은 날, 경찰은 케네스의 자택 수사에 나섰다. 부엌 건조대에는 전날 가족들이 먹은 접시가 놓여 있었다. 세탁기에는 빨랫감들이 들어 있었다. 케네스가 여행 전날 밤 입은 산타클로스 옷이 펼쳐진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마틴 부부의 은행 계좌에도 상당한 돈이 남아 있었다. 누가 봐도 이들이 고의로 사라졌다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수사 초반부터 단서들이 쏟아졌다. 실종 이튿날인 12월 8일, 하얀색 1951년형 쉐보레가 캐스케이드 록스에서 포착됐다. 쉐보레 근처 덤불에서는 마른 피로 뒤덮인 콜트 38구경 권총도 발견됐다. 같은 날 후드강 카운티 경찰에 로이 라이트라는 한 남성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남성이 쉐보레 절도 혐의로 체포됐다. 마틴 일가가 들렀던 후드강 인근 식당 웨이터는 "마틴 가족이 방문한 같은 시간 이들을 식당 안에서 봤고, 마틴 가족이 자리를 뜨자 두 남자도 동시에 떠났다"고 진술했다. 이들이 유력한 사건 용의자로 꼽힐 만한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훔쳤던 쉐보레는 마틴 일가의 차량과 일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권총도 케네스의 장남 도널드가 2년 전 한 백화점에서 훔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도널드는 사건 당시 미 해군 복무와 컬럼비아대학원 재학으로 뉴욕에 살고 있었다. 쉽게 풀릴 줄 알았던 사건은 금세 미궁에 빠졌다. 가족이 사라진 지 일주일 후, 서부 8개 주에 실종 전단지가 뿌려졌다. 경찰은 실종 6주 후까지 멀트노마 카운티에만 제보 편지 201건, 추가 보고 207건, 전화 제보 수백 건이 접수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신빙성 있는 제보는 많지 않았다. 한 여성은 "가족들이 토템 폴(북미 원주민들이 집 앞에 세우는 기둥 모양의 나무 조각) 근처 물속에 있는 걸 봤다"고 했고, 한 과수원 주민은 포틀랜드 한 협곡에서 남녀가 나뭇가지를 모으는 것을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아무것도 밝히지 못했다. 수사는 결국 해를 넘겼다. 수사당국은 포틀랜드 반경 약 80㎞ 이내 숲, 강, 호수, 산악 지대를 샅샅이 뒤진 끝에 이듬해 2월 컬럼비아강 위 절벽에서 타이어 자국을 발견했다. 마틴의 타이어 무늬와 일치했다. 차량 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페인트 조각 역시 미 연방수사국(FBI) 분석 결과, 마틴의 차량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것으로 판명됐다. 이윽고 그해 5월 일부 시신들이 발견됐다. 3일 오후, 수전의 시신이 더달레스에서 서쪽으로 약 70마일(110㎞)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고, 이튿날 버지니아의 시신이 더달레스에서 약 46마일(74㎞) 떨어진 보너빌댐 근처에서 나타났다. 마틴 가족의 치과의사였던 어니스트 워터맨 박사는 시신을 조사한 뒤 막내딸 수전이 맞다고 확인했다. "제가 한 치아 수복 치료 흔적이 그대로 있습니다. 같은 위치에 같은 치료 흔적이 있는 치아를 가질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수전의 이모부인 허셸 돌시도 발견된 시신의 옷이 수전의 것과 일치한다고 증언했다. 익사가 두 딸의 사인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제, 경찰은 마틴 가족이 포틀랜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첫 번째 가설은 차량 사고로 인한 컬럼비아강 추락이었다. 그러나 △차량의 잔해가 발견되지 않은 점 △시신으로 발견된 두 딸 외에 케네스 부부와 장녀 바비는 발견되지 않은 점에서 여전히 미심쩍었다. 두 번째 가정은 '범죄 연루'다. △장남 도널드의 절도 이력과 △쉐보레 근처에서 발견된 권총이 도널드의 절도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점 등이 근거였다. 하지만 이들의 실종 당시 도널드가 뉴욕에 있었던 사실로 이 가설 또한 배제됐다. 납치·살해 시나리오도 제기됐으나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증거는 없었다. 경찰은 헬리콥터를 이용해 물 위에서 추가 수색을 벌였다. 잠수부도 투입됐다. 하지만 수색 중이던 잠수부가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를 당했다. 조사는 결국 종결됐다. 마틴 일가가 실종된 지 8년이 지난 1966년 12월, 결국 도널드가 가족의 재산을 상속받게 됐다. 또한 1만4,000달러의 생명보험금도 그가 지급받게 됐다. 당시 도널드는 아내, 두 딸과 함께 메릴랜드주 휘튼에 거주하며 해군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후 하와이로 이주한 그는 퇴역한 뒤 제임스 캠벨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2004년 10월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영원히 숨어 있을 것만 같았던 결정적 단서, 즉 마틴 가족이 타고 나선 차량이 사건 발생 66년 만에야 수면 위로 부상했다. 마틴 가족 실종 사건에 호기심을 갖고 2022년부터 캐스케이드 록스 지역을 수색해온 민간 잠수부 아처 메이오(56)가 2024년 마틴 가족 것으로 추측되는 차량을 컬럼비아강에서 발견한 것. 워싱턴주 화이트새먼에서 온 메이오는 시계나 반지 등 강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사업을 운영하며 익사 사고 희생자 수습 작업도 해왔다. 메이오는 올해 2월 후드강 카운티 경찰서에 마틴 차량 발견 사실을 알렸다. 그는 "수면 아래 50피트(15m) 깊이에서 뒤집힌 채 가라앉은 차량을 발견했다. 차량은 진흙, 연어 내장, 홍합 껍데기 등으로 덮여 있었다"고 말했다. 당국도 차량 번호판을 근거로 마틴 가족이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찾기 위해 타고 나섰던 바로 그 차량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크레인을 이용한 차량 인양 작업은 이달 6일 시작됐다. 성탄절 때마다 이웃들에게 '사탕 지팡이'를 선물했던 로즈웨이 마을의 산타클로스가 1958년 크리스마스 파티에 오지 못한 이유가 이제야 밝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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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휙' 한번으로 정리하는 하루 핵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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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태석의 빛으로 쓴 편지

자유 찾은 송골매의 '핑크빛 봄꿈'

기암괴석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부산 태종대 전망대. 지난 주말 그곳에서 하늘을 가르는 날렵한 실루엣을 목격했다. 바로 천연기념물 제323호이자 멸종위기종인 송골매 한 쌍이다. 산란철을 맞은 송골매 부부는 2세 준비를 위해 분주히 먹이를 찾아 나섰고, 때로는 서로에게 애정을 표현하며 번식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시기엔 전국에서 많은 탐조객들이 '험준한 절벽에 둥지를 틀고 하늘을 누비는 송골매'를 관찰하기 위해 태종대를 찾는다. 송골매는 맷과에 속하는 맹금류로 날렵한 몸매와 뛰어난 비행 실력을 자랑한다. 특히 목표물을 향해 시속 300km로 급강하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조류 중 급강하 속도가 가장 빨라 기네스북에 올랐다. 또한 사람의 10배에 달하는 시력으로 먹이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사냥을 한다. 다부진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날개는 송골매의 위엄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용감함'의 상징인 송골매는 예로부터 인간과 가까운 존재였다. 선조들은 '참매', '해동청', '각운각웅'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고 매사냥을 통해 송골매와 교감하며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하지만 이젠 매사냥의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명맥이 끊어지고 있다. 이런 연유일까. 태종대에서 만난 송골매 한 쌍 중 암컷은 다리에 끈이 묶여 있었다. 이는 사람들에 길들어졌다가 버려졌거나 탈출한 흔적으로 추정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발에 묶인 그 끈이 비행과 먹이 활동에 방해가 되어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눈앞에서 펼쳐진 아름다운 비행을 위해 부디 암컷 송골매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길 바란다. 발길을 돌리며 송골매에게 "하늘을 자유롭게 날며 귀여운 2세와 행복하게 지내"라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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