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랑을 잘 아는 자의 재현, 예소연의 소설들
모든 사랑에는 약간의 결함이 있다. 바꿔 말해 모든 사람은 결함을 안고 살아간다. 소설가 예소연은 그 사실을 잘 아는 듯하다. 예소연의 소설은 사람과 사랑을 잘 아는 자의 재현이다. 사람과 사랑을 잘 안다는 것은 결함과 슬픔마저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결함과 슬픔을 이해한 소설은 그러니까 사람과 사랑을 잘 다루는 소설이다. 예소연 소설집 ‘사랑과 결함’이 바로 그러하다. 먼저 말하고 싶은 작품은 성장소설 3부작이라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시절’, ‘우리는 계절마다’, ‘그 얼굴을 마주하고’이다. 성장소설이라지만 소설의 인물들은 도리어 반(反)성장의 경로를 밟는 듯하다. 주인공 ‘나’에게 안정적인 성장의 시간은 소설 안에서 가장 어릴 적의 시간, 그러니까 동네 모르는 언니에게 아이스크림을 빼앗기기 전까지였다. 어머니의 은근한 폭력과 아버지의 구차한 방관 사이에서 나는 우정에 몸을 내맡긴다. 친구 ‘미정’과 가까워지고 비밀을 공유하며 그의 비극을 목격한다. 나는 미정을 동경하고 사랑하지만 미정의 비밀과 증오를 저도 모르게 발설한다. 나의 행위는 순간적이었고 특별한 동기도 없으며 행위자 자신에게는 사소했을지 모르나 그날의 목격과 발설은 나의 운명을 뒤흔든다. 타인의 침이 묻은 아이스크림처럼, 아이스크림을 버린 연못처럼. 그 일로 나는 학교에서 따돌림의 대상이 되고 미정은 전학을 간다. 나는 마찬가지로 따돌림을 받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지만 임시방편으로 조각한 우정은 쉽게 금 간다. 그렇게 사소한 시절을 지나 몇 계절을 보내고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학교에서 나는 미정과 재회하게 되는데, 미정은 어딘가 변해 있다. 나와 미정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지만 어쩔 수 없는 동질감과 끌림이 있다. 미정은 나를 더한 고통에 빠뜨리면서도 넌지시 손을 내민다. 그러고는 완전히 밀쳐버린다. 나는 가족의 품을 떠났다. 유흥가에서 일하며 못 사는 방식으로 잘 살기를 택한다. 끔찍한 생활로 사랑을 증명하고 서로를 혐오하며 결함을 내비친다. 예소연의 소설은 이마저 그 시절을 통과한 어떤 이들의 분명한 역사임을 역설하는 듯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대를 통과한 어린 화자의 이야기인 앞선 소설들과 달리 ‘우리 철봉 하자’, ‘내가 머물던 자리’, ‘도블’ 등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통과한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다. 부모 세대와 달리 멱살 잡고 싸울 거대한 악은 없지만 도처에 악의는 고여 있고, 거기에 목소리를 내면 내 자리는 위험해진다. 서로에게 위안과 용기가 되지만 어떤 계기이든 결속은 생각보다 쉽게 깨진다. 여성의 우정과 연대로 이 소설을 묶어낼 수도 있겠지만 소설이 보여주는 인물들의 입체적 사고와 감각은 우리에게 더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우리가, 사람을 미워할 수 있겠느냐고. 가장 미운데, 또한 그의 역사를 공유하기에 미워할 수 없는 게 가족이다. ‘사랑과 결함’, ‘팜’, ‘그 개와 혁명’, ‘분재’에서 작가는 가족을 상실하는 과정을 통해 협의할 수 없는 애증의 깊이와 그 깊이만큼 울림이 있는 개인의 역사를 그려낸다. 작가는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한다. “우리는 외따로 태어”났고, “지금은 함께 살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과 결함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말이고, 그 둘은 예소연의 영원한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