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재 아나운서, SBS 김다영 아나운서와 5월 결혼…“가족 식사로 예식 대신”

배성재 아나운서(47)가 SBS 김다영(33) 아나운서와 5월 결혼한다. 배 아나운서 소속사 SM C&C는 "두 사람이 2년간의 교제 끝에 최근 서로의 동반자가 될 것을 약속했다"며 "오는 5월 부부의 연을 맺기로 했다"고 7일 밝혔다. 이어 "두 사람은 모든 형식을 생략하고 조용히 출발하기를 원해 가족들의 식사 자리를 가지는 것으로 예식을 대신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2005년 KBS광주방송총국에서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한 배 아나운서는 2006년 SBS에 입사했다. 2021년 SBS를 퇴사한 후에도 SBS에서 월드컵, 아시안게임, 월드컵 등 굵직한 스포츠 경기 중계를 도맡아왔다. 배우 배성우가 형이다. 김 아나운서는 목포MBC와 부산MBC를 거쳐 2021년 SBS 경력직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SBS '8시 뉴스' 스포츠뉴스 평일 앵커 등을 맡았고,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에 출연했다.

'해뜰날' 부른 가수 송대관 별세...향년 79세

히트곡 '해뜰날' 등으로 큰 인기를 누린 트로트 가수 송대관이 7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79세. 고인의 유족 등에 따르면 송대관은 전날 컨디션 난조를 호소해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치료 도중 이날 오전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평소 지병이 있어 수술도 세 차례 받았으나 호전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송대관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해 1975년 '해뜰날'의 히트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네박자' '유행가' '차표 한 장' 등 많은 히트곡을 내며 태진아, 현철,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100년 된 경복궁 현판'은 일본 시골 창고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어떤 이야기는 야사(野史)가 정사(正史)를 압도한다. 최근 국가유산청이 100여 년 만에 일본에서 환수한 경복궁 선원전(璿源殿)의 현판에도 야사가 숨어 있다.(관련 기사: [단독] "조선 왕조의 넋, 100년 만에 돌아오다"... '경복궁 선원전' 현판 일본서 환수) 2016년 일본의 한 시골집 창고에서 현판을 마주한 재일 한국인인 김성연(47) 구루시마 다케히코 기념관장이 현판의 사연을 담은 책 '아니다 거기에 있었다'를 최근 냈다. 유선으로 만난 그는 "선원전 현판이 귀향했을 때 국민들이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게 하려면 이 기록이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책을 낸 취지를 설명했다. 책은 100여 년 전 일본으로 건너가 귀향하기 전까지 일본 땅에서 겪은 현판의 '비사(祕事)'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문학 전공자인 김 관장은 2016년 2월 연구차 찾은 일본 야마구치현의 도서관에서 '조선총독부' 자료를 무더기로 발견했다. "다른 도서관에서 검색할 때 나오던 양보다 월등하게 많았어요. 반복해서 나오는 이름 중 하나가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였고요. 뭔가가 있구나 싶었죠." 야마구치 출신인 데라우치와 관련된 자료를 살피다 집어든 책의 뒷표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조선관 앞에서 미야노 지역 사람들과 찍은 집합 사진'이라는 제목의 사진 속 표지판에는 '경복궁의 일부를 철거해서 이건했다'는 문구가 선명했다. 건물은 1951년 폭풍우에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 "조선관의 역사를 유추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 몇 달을 헤매다가 포기하려던 찰나 당시 현장을 수습한 건설업체를 찾아보자는 생각이 스쳤어요. 전화번호 100개를 들고 수소문해서 어렵게 찾아낸 지역의 한 업체 창고에서 마주한 건 뜻밖에도 '선원전'이라는 금색 한자가 쓰인 거대한 현판이었죠. 그때 충격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책은 경복궁의 가장 상징적인 전각의 현판이 일본 시골집의 어두컴컴한 창고 천장에 매달리게 된 사연을 상세히 다룬다. 그에 따르면 당시 조선관의 잔해에서 소장자의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현판을 수거했고 대를 이어 보관해왔다. 폭풍이나 홍수로부터 현판을 보존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창고의 대들보에 매달아 놓은 덕분에 현판이 반세기 동안 훼손 없이 보존될 수 있었다. "조선 왕의 어진을 보관하고 제사를 지내던 진전(眞殿)의 현판이 이렇게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 슬프고 감격스러웠어요. 두 달 뒤 한번 더 볼 기회가 있었는데 온전한 모습에 마냥 좋아서 웃음이 나더군요." 김 관장은 현판을 옮겨온 데라우치에 대해 파고들다 태생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놀랍게도 데라우치는 백제에서 야마구치로 망명한 임성태자를 섬기는 절에 같이 살던 부하의 후손이었다"며 "조선 왕실의 근원을 상징하는 선원전의 현판을 몰래 고향으로 옮겨온 이유도 데라우치 본인의 뿌리를 조선에서 찾았던 데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고 추측했다. 김 관장은 다시 소장자를 찾았지만 만날 수 없었다. 건물이 철거돼 현판의 행방을 더 이상 알 수 없게 됐다. 200일간 뭔가에 홀린 듯 현판을 추적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일제강점기 조국의 아픈 역사가 눈앞에서 역사의 톱니바퀴와 맞물리는 모습을 본 여운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기 때문. "선원전이 어디서 어떻게 뜯기고 숨겨지고 사라졌는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언젠가 선원전 현판이 세상에 나오면 100년 동안 잊혀 있던 자취를 고증하는 사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가 자비를 털어 책을 낸 이유다. 선원전 현판은 그로부터 7년 뒤인 2023년 12월 일본 후쿠오카 경매에 나왔다. 김 관장이 경매 전 미리 배포하는 인쇄물에 경복궁 현판이 실려 있다는 연락을 받고 경매장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한국 정부가 환수해간 후였다. "그 소식을 듣고 무릎에 힘이 풀렸어요. 지난 몇 년간 갈증과 애달픔이 가라앉는 느낌이었죠. 이렇게 신속하게 문화재를 찾아 환수해간 국력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여기까지가 그가 전한 '옥의 뿌리(璿源)' 선원전 현판의 과거이자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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