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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젊은 시인에게도 미래는 있다...차도하는 그래서 살아 있다

입력
2024.11.15 14:00
11면

고(故) 차도하 시집 '미래의 손'

편집자주

결혼은 안 했습니다만, '시집'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시인.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검은 머리 짐승 사전'과 에세이 '이듬해 봄' 등을 낸 시인 신이인이 사랑하는 시집을 소개합니다.


시인 차도하. 차도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시인 차도하. 차도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가을이 왔으니 슬슬 여름옷을 정리해야겠다고는 생각했지만 연락을 들은 후 여름옷을 정리하자니 유품을 정리하는 것 같아서 손이 느리게 움직여졌다. 그나저나 여름옷과 여름옷이 아닌 건 어떻게 구분하나?”(시 ‘부고’·차도하)

11월이다. 이제는 정말 얇은 옷을 떠나보내야 할 때다. 이맘때쯤이면 몸뿐만 아니라 마음 한편에도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스미는 듯하다. 지난해에는 잊을 수 없이 애통한 소식도 있었다. 2020년에 만 20세의 나이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을 달구었던 젊은 시인, 차도하의 부고였다.

업계의 동료로서 ‘이 사람, 보통이 아니잖아’ 감탄하며 지켜보게 되는 유망주가 누구에게나 있을 테다. 그렇게 느껴지던 시인은 지금까지 딱 셋 있었는데 차도하는 그중에서도 첫 번째였다. 범상하지 않은 이력이나 톡톡 튀는 캐릭터로 강하게 주목을 받은 것이 못내 아쉬웠을 정도로 차도하는 시를 잘 썼다. 그는 본질에 충실한 시인이었다. 창작자로서의 자기 확신이 있었으므로 눈치를 보지 않았고, 장식적인 수사 없이도 마음을 꿰뚫는 문장을 썼다.

미래의 손·차도하 지음·봄날의책 발행·160쪽·1만3,000원

미래의 손·차도하 지음·봄날의책 발행·160쪽·1만3,000원

올해 5월 출판사 봄날의책에서 출간된 차도하의 첫 시집 ‘미래의 손’을 받아들었을 때는 반가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차도하의 ‘시’를 기억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등단 지면과 부고 기사에 실린 한두 편의 시가 아닌 시들의 총체, 작품 세계가 활발히 알려지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이것이 유고 시집이라는 사실이 먼저 조명되어야 했음은 안타까운 필연이었다.

시집 ‘미래의 손’을 논하는 일에는 어쩔 수 없이 부담과 용기가 따랐다. 그럼에도 기회가 된다면 조심스럽게 시인 차도하를 권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그의 독자와 동료와 친구였음이 구분되지 않듯이, 인간 차도하와 시인 차도하가 구분되지 않을 때 그는 우리의 곁에 여전히 자리하는 명사가 될 테다.

실로 내가 바라본 인간 차도하는 곧 시인 차도하였다. 차도하는 단순히 개인적인 불행에 매몰된 사연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눈을 거두고픈 삶의 고통을 직면하도록 점지된, 용감한 스펀지 같은 시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온몸으로 받아들인 것을 시로 승화시켜 고통받는 이들의 편을 든다. 사랑 안에서도 외로운 사람과, 나쁜 기억을 잊지 못하는 사람과, 스스로를 해치는 규범에 속아넘어가지 않는 사람과,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싶은 사람을 대신해 말한다. 그러한 작업은 지금도 매 순간 계속되고 있다. 언젠가 당신이 차도하를 필요로 할 미래에도, 차도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붉게 타오르는 책 속에서 눈을 뜬 채로.

“나는 절반쯤은 개다. 나는 절반쯤은 풀꽃이고. 나는 절반쯤은 비 올 때 타는 택시. 나는 절반쯤은 소음을 못 막는 창문이다. 나는 절반쯤은 커튼이며. 나는 절반쯤은 아무도 불지 않은 은빛 호각. 나는 절반쯤은 벽. 나는 절반쯤은 휴지다. 절반쯤 쓴 휴지다. 네 눈물을 닦느라 절반을 써버렸다.”(시 ‘나의 사물됨’·차도하)

신이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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