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설 더보기

생명과 공존

동물 싸움을 없애는 새로운 전통

내년부터 다섯 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소싸움 대회 지원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다. 소싸움 경기장을 운영하는 청도도 축제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으니 큰 변화다. 소싸움에 이용되는 소를 훈련시키고 억지로 싸움에 이르게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비인도적 행위와 소싸움에서 소가 겪는 심각한 부상은 오랫동안 비판받아왔다. 최근 발표된 정읍녹색당의 설문조사에서 드러났듯, 10여 년간 지속된 시민단체의 노력과 대중의 인식 변화는 소싸움의 폐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물론 다수의 의견은 아니지만 소싸움을 전통문화로 보전해야 한다는 반론이 남아 있기는 하다. 민속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향토축제의 소싸움은 우리 전통의 소싸움과는 다르다. 소싸움은 원래 마을에서 소를 먹이는 초동들이 산이나 들에서 몰고 간 소끼리 싸움을 시켜 소 먹일 풀을 빼앗는 놀잇거리였다. 20세기 초반에는 마을 대항의 소싸움도 존재했다. 인접한 마을에서 대표 소를 앞세워 응원전을 펼치며 벌인 싸움의 형태다. 마을 강가 백사장 소싸움이 있는 날은 풍물패도 오고 음식도 사고팔아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코뚜레와 고삐를 푼 소들은 서로를 탐색하다가 공격을 시작하고 한쪽이 싸움을 포기하고 달아나면 승자가 결정되었다. 소싸움에 참여하는 소는 마을에서 힘이 세다고 명성이 있는 소였을 뿐 별도로 싸움을 위해 키워지거나 훈련을 받지는 않았다. 농업 공동체에서 힘센 소는 마을의 명예나 위신을 대리하고 농업생산성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싸움에서 소가 다치는 것은 큰 손실이었으니, 바람직하지도 않았다. 현재의 소싸움은 이와는 다르다. 더 이상 소는 농업생산성의 상징이 아니다. 마을 전승의 소싸움은 이제 없다. 전문 소싸움꾼이 싸움을 위해 소를 구입하고,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쳐 소를 경기에 내보낸다. 소싸움을 구경하는 주체들도 순박한 마을 사람들이 아니다. 소싸움은 마을의 명예가 아니라 물질적인 보상으로 마무리되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내기와 투기가 벌어진다. 이 싸움에서 소는 철저히 오락용으로 도구화되며 전통적인 인간-소 관계에서도 벗어나 있다. 전통문화는 지역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변화하는 문화가 현재의 가치와 상징을 담는 것은 당연하다. 기존의 전통이 동물에게 비인도적인 행위를 포함했다면 그만둘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결정은 생명을 소중히 다루는 문화를 담는 좋은 전통이 될 것이다.

뉴스룸에서

재벌언론과 족벌언론의 대결, 승자는 빅테크?

대통령 선거는 정치권뿐 아니라 미디어의 각축장이기도 하다. 언론사들은 경쟁적으로 후보들의 의혹을 단독 취재해 명성을 높이고, 정세 전망과 분석을 실어 독자들의 관심을 모은다. 그런 와중에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달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 사설을 싣지 못한 사건은 세계 언론계에 충격을 줬다. 이 신문에선 3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게재를 막은 사주 제프 베이조스는 "언론 신뢰도 회복을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번 결정은 베이조스의 과거 행보와 사뭇 배치된다. 아마존 창업자인 그는 2013년 사재 2억5,000만 달러를 들여 WP를 인수한 후 디지털 혁신을 주도했다. 탐사보도의 대가 마틴 배런을 편집국장으로 영입해 저널리즘 품질 향상에도 힘썼다. 2016년 대선 당시 WP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 검증 취재팀을 꾸려 각종 의혹을 보도했고,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강도 높은 비판 보도를 이어갔다. 이는 아마존에 대한 보복으로 이어졌다. 아마존웹서비스는 1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국방부 사업 수주에서 탈락했고, 아마존은 배후에 트럼프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베이조스가 WP의 오랜 전통을 뒤흔드는 결정을 한 것은 그가 '언론사주' 대신 '기업가'란 정체성을 택했음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WP의 저널리즘은 치명상을 입었다. 불과 며칠 만에 유료 구독자의 5%인 20만 명이 이탈했다. 반면 설즈버거 가문이 1895년부터 지금까지 대를 이어가며 저널리즘 수호자 역할을 해 온 뉴욕타임스(NYT)는 선거 직전까지 '트럼프를 막기 위한 해리스 투표'를 촉구하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트럼프 2기 때도 이 신문은 강력한 정부 비판 보도를 이어갈 것이 분명하다. 이는 매출 증대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족벌언론' NYT가 '재벌언론'의 한계를 드러낸 WP를 이긴 셈이다. 그러나 이는 '낡은 게임'에서의 승리에 불과하다. 트럼프의 압승은 NYT의 영향력이 해안가 대도시에 거주하는 고학력·고소득 엘리트층에 국한됐음을 보여줬다. 이들과 민주당의 주요 지지세력인 할리우드 배우, 팝스타, 테크업계 갑부 등은 미국 서민에겐 '기득권자'로 보일 뿐이었다. 심각한 인플레이션이나 치솟는 집세보다 가자지구나 우크라이나 등 '먼 나라 전쟁'을 톱기사로 다루는 NYT의 편집 방향도 우파 팟캐스트를 들으며 '엘리트'에 대한 반감을 키운 이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여론은 주류 언론이 아닌 빅테크 플랫폼에서 형성되고 있다. 젊은 층은 소셜미디어나 틱톡, 유튜브, 팟캐스트 등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의견을 형성한다. '트루스 소셜'을 만든 트럼프나, 트위터를 인수해 엑스(X)로 만든 일론 머스크는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활용한다. 반면 해리스는 경합주 방송 광고에 막대한 돈을 썼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은 저서 '좁은 회랑'에서 국가 권력에 대한 시민 사회의 감시와 견제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저널리즘은 '권력 감시'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빈 곳을 음모론으로 채우지 않고 발로 뛴 취재로 알아낸 사실을 보도하는 전통 언론의 가치는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이제 대중은 다른 곳에서 뉴스를 만나고 판단의 기준을 세운다. 전통 언론은 '사회지도층'만이 아닌 더 넓은 오디언스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전면적 혁신이 절실하다.

오늘의 연재 칼럼 더보기

한국일보 칼럼니스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