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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3주기... 퇴역경주마 '마리아주'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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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7일은 퇴역 경주마 '마리아주'(예명 까미)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되는 날이었다. 2021년 마리아주는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장면 촬영에 동원됐다. 다리에 와이어가 묶인 채 달리던 도중 극 중 장면을 위해 강제로 고꾸라졌고 나흘 만에 숨졌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경주마로 활동하다 은퇴한 지 고작 3개월 만이었고, 불과 다섯 살의 나이에 불과했다. 당시 마리아주가 넘어지는 영상이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많은 이의 공분을 샀다.
사람들은 이 같은 촬영 방식이 관행적으로 이뤄져왔다는 촬영 관계자들의 '변명'에 할 말을 잃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무심코 봐왔던 수많은 사극 속 말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위험하게 촬영됐을 거란 생각에 놀랍고 소름이 끼쳤다.
승마라고 하면 왠지 일반인에게는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고급 스포츠로 인식된다. 또 이른바 '말값'도 비쌀 텐데 왜 이 같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지 의아한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말이 돈벌이 수단으로만 이용되는 데 원인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한 해 평균 경주마 1,300여 마리가 은퇴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또 끊임없이 그만큼의 경주용 말들이 '생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안락사되거나 도축된다. 살아남은 말들도 체험용, 번식용, 승마용으로 팔려나간다.
말 산업 관계자들의 목적은 비정하다. 많은 경주마 가운데 오직 1등 할 경주마들을 길러내는 데 있다. 말이 경주마로 뛰는 동안 몇억 원의 상금을 받았어도 부상이든 기량 저하든 더 이상 우승을 하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포기하는 게 현실이다. 치료는 물론이고 이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마방도 있어야 하고 운동도 시켜줘야 하고 건초도 먹여야 하니 뛰지 못하는 말을 버리고, 대신 새로운 말을 도입하는 것이다.
말산업종합포털 사이트 호스피아를 보면 경주용으로 뛸 때는 그나마 마사회의 관리하에 놓여 있다. 태어난 곳부터 이동한 장소, 경주 출전 횟수, 치료 내용과 횟수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하지만 돈을 벌어들이던 존재인 경주마에서 은퇴하는 순간부터 이들의 이력은 깜깜이다. 마주들에게 말들의 이력을 기록할 의무가 없어서다.
최근 충남 공주시 폐마목장에서 발견된 말 가운데 마이크로칩 조회가 가능했던 16마리 중 15마리가 사이트상 소유주와 실소재지가 달랐고 살아 있는 3마리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나왔다. 올해 7월까지 경주에 뛰며 3억 원의 상금을 받았던 '장산클리어', 수차례 우승했지만 경주 중 사고를 당해 은퇴한 '함양은산삼', 심지어 한국마사회의 재활프로그램까지 지원받았던 '천지의빛'까지, 이들에게 주어진 운명은 굶주림과 방치였다.
지난 3년 동안 많은 시민과 단체들이 퇴역 경주마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부와 한국마사회가 약속했던 말 이력제, 출연동물 보호 가이드라인은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마사회는 말 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말 산업구조 내 근본적 변화가 없다면 이 같은 구조적 말 학대는 계속될 것이다. 마리아주의 죽음이, 사라져간 수많은 퇴역 경주마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번에는 실효성 있는 말 복지 체계가 마련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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