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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못하는 그때 그사람들

입력
2015.04.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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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팀장ㆍ약사ㆍ해경관계자 등

끝까지 함께 하려… 죄책감에…

애타는 심정에 팽목항 다시 찾아

장길환씨
장길환씨
최기영씨
최기영씨

세월호 참사 후 1년이 되어가는데도 팽목항을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팽목항 앞 간이 컨테이너를 숙소로 삼아 동생 재근씨와 조카 혁규군을 애타게 기다리는 권오복(60)씨가 실종자 가족으론 유일하게 현장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희생자 유가족 못지않게 애타는 심정으로 이곳을 다시 찾는 사람들은 당시의 자원봉사자와 해경 관계자들이다.

진도체육관 철수 때까지 유가족들과 동거동락하며 함께 울었던 자원봉사팀장 장길환(51)씨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팽목항을 찾는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유가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지난 1년간 과로로 건강이 악화돼 병원신세를 졌고, 본업인 농원 농사를 일절 돌보지 못해 경제적 피해도 컸다. 체육관에서 새로운 유가족을 만날수록 아픔도 눈덩이처럼 쌓였다. 그래도 그는 “아프거나 배가 고파도 말조차 할 수 없는 유가족들에게 보탬이 된다면 보람”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꿋꿋이 세월호 희생자를 돌보던 그에게도 ‘그날의 악몽’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장씨는 “참사 당일 눈물과 오열이 메아리 쳤던 체육관 풍경이 자꾸 생각나 잠이 오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그는 “희생자 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러 서울로 가 있더라도 누군가 한 사람은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팽목항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참사 이후 24시간 불을 환하게 밝히며 ‘팽목항 약국’을 운영했던 약사 최기영(57)씨도 팽목항을 정기적으로 찾는 이중 한 명이다. 눈물을 많이 흘려 안구마저 메마른 유가족을 위해 인공눈물을 나눠주고 청심환을 처방해주며 누구보다 가족들을 지근거리에서 보살폈던 최씨는 “죄책감에 항구를 찾고 있다”고 했다. 선체 수색중단 이후 썰물 빠지듯 사라진 자원봉사자들을 향해 “다 도망가느냐”고 절규했던 유가족들 모습이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최씨는 “모든 실종자가 가족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울먹였다.

사고 이후 자원봉사자들은 닷새마다 정신과 진료를 받고 트라우마 소견이 있으면 곧바로 귀가 조치됐다. 그렇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곳에서 최씨는 반년 넘게 버텼다. 복잡한 심경이 조금이나마 정리되는 대로 그는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경험을 책으로 펴낼 생각이다. “‘정사(正史)’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모아 ‘유사(遺事)’ 수준의 세월호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잔인한 바다를 매일 지켜봐야 하는 사람도 있다. 목포해양경비안전서 소속 김성식 진도해양경비안전센터장(당시 진도파출소장)은 참사 당일 신고를 받고 곧바로 어선을 타고 현장으로 출동했지만 배는 이미 45도로 기울어 손도 쓰지 못했다. “눈 앞에서 바다가 아이들을 삼키는 걸 지켜봐야 했다”는 김 센터장은 그 후 1년째 퇴근을 못하고 있다. 그는 “해양경찰로 배에서 20년 넘게 지내 잘 안다고 생각했던 바다가 지금은 공포의 대상”이라고 했다. 그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진도 앞바다를 하루 종일 감시 중이다. 사고 뒤 인근 섬 주민 30~40명과 힘을 합쳐 해양사고 발생 즉시 출동 가능한 ‘자율 구조대’도 만들었다.

“세월호는 주민들 인식을 180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할 겁니다. 그게 희생된 아이들을 위한 어른들의 몫이겠지요.”

진도=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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