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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악몽 꾸는 삶의 터전… 진도엔 '바다'가 없다

입력
2015.04.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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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목숨줄이나 다름없던 바다, 참사 이후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양식장 투자했다 끝내 파산 / 관광객 끊겨 지역 경제 위태위태

트라우마 치료비도 자비로 충당, 정부 85만원 보조금 준 뒤 '모르쇠'

6일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로부터 남동쪽으로 2km 남짓 떨어진 해역에 세월호 침몰 위치를 나타내는 부표가 떠 있다. 수산물이 풍부해 주민들의 생활 밑천이 됐던 이곳은 주민들이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데다 작업을 하려면 해경의 허락을 받아야 해 어업 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진도=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6일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로부터 남동쪽으로 2km 남짓 떨어진 해역에 세월호 침몰 위치를 나타내는 부표가 떠 있다. 수산물이 풍부해 주민들의 생활 밑천이 됐던 이곳은 주민들이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데다 작업을 하려면 해경의 허락을 받아야 해 어업 작업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진도=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7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 남동쪽 해역. 동거차도 선착장을 나선 지 10여분 만에 도착한 이곳은 1년 전 세월호가 침몰한 지점이다. ‘가만 있으라’는 말에 300여명의 생명이 스러져간 곳에는 ‘병풍도 북방 침선’이라고 쓰인 3~4㎙ 높이의 부표 세 개와 세월호 침몰 위치를 알리는 빨간 부표, 그리고 이제는 이름을 빼앗겨버린 옛 해경 경비선 한 척만 떠 있다. “그 날 날씨가 좋아 다시 작업하러 나왔으면 사고를 빨리 발견해 더 많은 애들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사고 당일 오전 미역을 거둬 들어가는 길에 세월호가 다가오는 모습을 목격한 지역 주민 조광원(60)씨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사고 당시를 떠올리면 아쉬움과 회한이 가득하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이후 진도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생업을 내팽개치고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배를 가진 어민들은 기름 방제작업에 나서거나 구조현장 인근에서 떠오른 시신이나 유류품을 수습했다. 배가 없는 사람들은 섬에 떠밀려온 유실물을 찾았다.

세월호가 수장된 바다는 원래 동ㆍ서거차도와 맹골도 등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었다. 물살이 거칠기로 유명한 맹골수도지만 멸치와 미역, 썰물 때 드러나는 자연산 다시마와 톳 등 청정해역에서 나는 수산물은 이곳 주민들에게 목숨줄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수색ㆍ구조 작업이 길어지면서 생활 터전은 직격탄을 맞았다. 자식 기르듯 길러낸 해초는 배들의 스크류에 걸려 갈갈이 찢겨졌고, 혹시나 싶어 건진 미역은 세월호에서 새어 나온 기름으로 범벅이 됐다. 가을에 멸치 성어를 낚기 위해 미리 설치한 그물도 닻이 끊어져 다 떠내려갔다. 동거차도 주민 김순희(55)씨는 “살 길이 걱정이었지만 희생자 가족들 입장을 생각해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후로도 맹골수도 주변 바다는 1년 가까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됐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곳이라 주민들이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데다 작업을 하려면 해경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참사 후유증은 컸다. 사고 후 가장 먼저 달려가 도운 서거차도 주민 김재석(52)씨는 끝내 파산했다. 양식장을 설치하기 위해 투자한 돈은 가라앉은 세월호마냥 되찾지 못했다. 결국 빚을 내 일꾼 인건비만 정산하고 지금은 목포로 나가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 김씨는 “자녀 학비도 대기 벅차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해초를 채취한 돈으로 생활하던 영세민들은 아예 일거리가 없어졌다.

사고 해역에서 멀리 떨어진 조도나 진도 읍내도 직격탄을 맞았다. 소비자들이 진도 인근의 수산물 구매를 꺼리고 관광객도 발길을 끊으면서 지역 경제에 돈이 돌지 않았다. 진도 포구리의 한 주민은 “수산업에 종사하는 어민이나 관광객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는 주민 모두 피해가 막심하다. 후유증이 1,2년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진도 어민 박모(62)씨는“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 주민 모두가 생계를 뒤로 하고 인명 구조와 유가족 보살핌에 앞장섰는데 정부는 진도의 피해를 나 몰라라 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도 늘었다. 밤마다 수색 작업을 위해 수백발씩 쏘아 올리는 조명탄 탓에 잠을 못 이뤄 심리가 불안정해지거나 희생자 시신 수습과정에서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했다. 사고 해역 부근에서 조명탄 낙하산에 얽힌 안산 단원고 여학생의 시신 한 구를 수습한 동거차도 주민 차모(63)씨는 사체가 훼손된 여학생 모습이 계속 머리에 남아 지금도 힘들어 한다. 차씨 가족은 “어쩌다 잠이 들어도 악몽을 꾸거나 바다에 뛰어들려고 하는 등 이상 행동을 자주했다”고 말했다. 차씨처럼 트라우마 증세로 치료를 받은 동ㆍ서거차도 주민은 8명이나 된다.

총체적 어려움에 진도 전체가 힘겨워 하고 있지만 정부 지원은 미미하기만 하다. 생활안전자금 명목으로 가구당 85만3,400원을 지급하고 수색ㆍ구조 작업에 동원된 주민에 한해 일당 7만여원씩 수고비를 정산해줬을 뿐이다. 어업 피해에 대한 정부 보상은 어민들이 직접 피해를 입증해야 해 난관투성이다. 서거차도 주민 박권삼(65)씨는 “멸치어장을 운영하거나 양식업을 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손해를 증명할 방법이 있지만 해초를 채취해 팔던 서민은 이마저도 쉽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전했다. 정신적 피해를 입어 치료가 시급한 주민들도 세월호특별법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스스로 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형편이다.

진도 주민들은 논란이 분분한 세월호 인양 논의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다. 인양 찬성 여론이 높아지고 있으나 주민 입장에선 막상 작업이 시작되면 배 안에 남아 있는 기름이 다시 유출되고 이제 막 복구한 어장과 양식장이 파괴돼 작년의 악몽이 반복될까 두렵기만 하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아픔을 알기에 속만 끓이는 진도 주민들은 오늘도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진도ㆍ동거차도=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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