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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ㆍ野ㆍ친이ㆍ친박 망라 거미줄 인맥… 성 前 회장 마지막 SOS엔 '묵묵부답'

입력
2015.04.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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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ㆍ한나라ㆍMBㆍ박근혜 캠프, 정계입지 확대 위해 직간접 관여

참여정부서는 친노와 교류 관측 / "배신감에 극단적 선택" 추측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충청권 정당인 옛 선진통일당 의원으로 당선돼 처음 금배지를 달 때까지 10여 년 동안 줄기차게 정치권의 문을 두드렸다. 초등학교 중퇴 학력의 성 전 회장은 연매출 2조원대의 기업을 일군 뒤 정계진출의 꿈을 품고 정치권의 다양한 인사들과 거미줄 인맥을 만들었다. 그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동안 구축해 놓은 정치권 인맥을 향해 구명의 ‘SOS’를 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치권을 향한 그의 열망은 비극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정치인형 기업인으로 불린 성 전 회장은 충청권 집권을 내세운 지역친목단체인 재경 ‘충청포럼’을 만들어 정계 입지 확대를 위해 물심 양면으로 투자했다는 게 정치권 인사들의 전언이다. 충남 서산 출신인 그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특보단장을 지냈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자민련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낙천했다. 17대 총선 때는 자민련 비례대표 2번 후보로 공천을 받았으나 정당득표율 미달로 다시 고배를 마셨다. 2004년 성 전 회장은 자민련에 불법 정치자금 16억 원을 건넨 혐의로 구속됐다가 다음 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특별사면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성 전 회장이 참여정부에서 친노 그룹과도 교류했다는 관측이 돌았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을 적극 지원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권 후보들 두고 경합할 당시 그는 박근혜 캠프 지원을 자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김기춘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그의 유언 진술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하지만 그는 대선이 끝난 뒤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에 이름을 올렸다.

성 전 회장에게 배지의 꿈은 쉽게 실현되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에서 활동했음에도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선진통일당으로 눈을 돌린 그는 심대평 당시 당 대표가 주도한 공천에서 충남 서산ㆍ태안 지역구 의원 공천을 따내 당선됐다. 당시 공천을 지켜 본 관계자는 10일 “무소속 출마를 재던 성 전 회장이 공천심사 막판에 지역 현역의원이었던 변웅전 전 의원을 제치고 공천을 받고 변 전 의원은 큰 반발 없이 비례대표 후보로 옮겼다”며 “당시 여러 말들이 나왔다”고 전했다.

2012년 대선 직전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이 합당하면서 성 전 회장은 집권여당 당적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여권 주류인 친박계 핵심 인사들과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선거법 위반 확정판결로 10여년 만에 어렵게 얻은 의원직을 잃었다.

성 전 의원은 여야는 물론 친이와 친박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교류했지만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는 누구에게도 조력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리스크를 폭로하고 극단적 선택을 것에는 친박 핵심을 포함한 정치권에 대한 서운함과 배신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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