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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천고사설] 세월호 희생자가 다시 살아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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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주자(朱子)로 떠받들여졌던 주희(朱熹)가 여백공(呂伯恭)에게 보낸 ‘여백공에게 답합니다(答呂伯恭)’라는 편지가 있다. 그 중 한 어휘가 조선 후기 주자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된 적이 있었다. 주희는 편지에서 북방 민족에게 시달리던 남송(南宋)의 상황에 대해서 “우리와 백성들의 생명은 모두 이 물 새는 배 위에 있소. 만약 부수(副手) 초공(梢工ㆍ뱃사공)을 불러서 그가 술에 취해 있지 않다면, 위태롭고 급할 때(緩急)는 그래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부수(副手)가 무슨 뜻인가를 놓고 견해가 갈렸다. 평소 주희를 떠받들던 송시열(宋時烈ㆍ1607~1689)은 ‘적당한 재주를 지닌(的當之手)’ 뱃사공이라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김매순(金邁淳ㆍ1776~1840)은 ‘부수(副手)’의 ‘부’는 그 다음이라는 뜻의 ‘부이(副貳)’라고 주장했다. 배에 물이 새는데 가장 뛰어난 사공은 얻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 다음인 부사공이라도 술에 취하지 않았으면 살아날 가망이 있다는 뜻이다. 세월호 사건 때 도주하기에 바쁜 선장 대신 술 취하지 않은 부선장이나 항해사 한 명만 있었어도 수많은 비극을 덜 수 있었던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인생에서 오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특수한 경우이고 먼저 온 사람이 먼저 가는 것이 순리다. 어버이가 먼저 세상에 왔으니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어버이를 먼저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 자식의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 상례(喪禮)에 나타나는 것이 대렴(大斂)이다. 조선 후기 학자 류장원(柳長源ㆍ1724~1796)은 ‘상변통고(常變通攷)’ 상례(喪禮) ‘대렴(大斂)’조에서 누가 “죽은 지 사흘 이후에 염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효자는 어버이가 죽으면 슬프고 애통해 본심이 괴롭다. 그래서 엎드려 곡을 하면서 다시 살아날 것처럼 여기니 어찌 그 뜻을 빼앗고 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다시 살아나기를 기다려 사흘 지난 뒤에 염하는 것이다. 사흘이 되어도 살아나지 못하면 살아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사흘이면 염을 할 수 있지만 먼저 떠난 자식은 사흘 만에 염할 수 없다. 그래서 자식이 먼저 죽는 것을 참혹한 슬픔이란 뜻의 ‘참척(慘慽)’ 또는 ‘상명지통(喪明之痛)’이라고 하는데,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자식을 먼저 잃고 너무 슬퍼서 시력을 잃었던 데서 나온 성어(成語)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희공(僖公) 10년’조에 ‘죽은 자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 해도’라는 말이 나온다. 춘추시대 진 헌공(晉獻公)이 병이 들자 세자 신생(申生) 대신 총애하는 미인 여희(麗姬) 소생인 해제(奚齊)나 탁자(卓子)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다. 그래서 대신 순식(荀息)에게 이 일을 맡기면서 “선비는 어떻게 해야 신의가 있다고 이를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순식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 돌아와도 산 자가 그 말에 부끄럽지 않으면 신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순식은 세자를 폐하고 후궁의 아들을 세우려는 헌공의 의도가 그르다는 것은 알았지만 헌공이 다시 살아나도 자신의 말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해제와 탁자를 거듭 세웠다.
그러다 결국 신생의 스승인 이극(里克)에게 죽임을 당했다. 순식의 행위는 옳지 못했지만 ‘춘추공양전’은 그가 ‘식언(食言)’하지 않은 것을 높이 사서 ‘어질다(賢)’고 표현했다. ‘후한서(後漢書)’ ‘오행지(五行志)’에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복생(死復生)’조가 있다. 한(漢)나라 말기에 곽광의 사위 범명우(范明友)의 종 무덤을 발굴했는데 그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가 곽광 집안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한서(漢書)’에 실린 것과 상응했다고 한다.
세상을 떠난 지 1년 되는 날에 지내는 제사는 연상(練祥) 또는 소상(小祥)이다. 사물을 선악으로 나누어 보는 것은 자제해야 하지만 세월호 1주기를 겪는 동안 우리 사회에 잠재해 있던 여러 악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생각이 든다. 식언(食言)은 기본이고, 아무런 죄 없이 수장 당한 어린 영령들에 대한 조롱까지. 그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편 가르기에 나서고 유족에 대한 모독까지 서슴지 않았던 사람들. 어린 영령들이 다시 살아와서 ‘부끄럽지 않으세요’라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답하겠는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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