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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등 찍은 司正… 李총리 취임 두달 만에 '식물 총리'

입력
2015.04.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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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지사 사퇴 후 국회 복귀

원내대표 당선ㆍ총리 지명 승승장구

취임 후 반부패 대국민담화 고삐

자신감ㆍ조급함… 자기 덫에 걸려

이완구 국무총리가 1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질문 도중 얼굴을 닦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이완구 국무총리가 1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질문 도중 얼굴을 닦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이완구 국무총리가 20년 정치인생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르고 3,000만원 수수설이 터진 데 이어 14일 여당에서도 총리 거취가 거론되는 등 취임 두 달여 만에 사실상 ‘식물총리’로 전락하게 생겼다. 충남 도지사 사퇴 후 국회 컴백, 여당 원내대표 당선 및 총리 지명으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자신 있게 내세웠던 ‘부패와의 전쟁’ 덫에 걸려 제 발등을 찍었다는 얘기까지 회자되는 형국이다.

● 총리 지명까지 탄탄대로

이 총리는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내무부와 경제기획원 사무관, 충남경찰청장을 거쳐 15ㆍ16대 국회의원, 민선 충남지사까지 쉼 없이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론에 맞서 2009년 12월 도지사 직을 던지면서 충청 정치권 대표 주자로 거듭나기도 했다. 혈액암 투병, 해외 체류 등 답답한 시절도 있었지만 2013년 4월 재ㆍ보선을 통해 국회에 복귀하고 1년 뒤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여야를 쥐락펴락 했다.

특히 야당과의 예산 협상 등을 매끄럽게 처리하고 여당 내부를 다독이면서 지난 1월 23일엔 ‘일인지하 만인지상’ 총리 자리에 지명됐다. 이 총리는 30년 이상 된 본인의 X-레이 검진 사진을 보관해왔을 정도로 도덕적 검증을 자신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 총리 인준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였다. 당시 이 총리 후보자는 “모든 판단의 근거는 국민 눈높이에 맞추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2인자의 자리로 올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야당의 검증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 차남과 본인의 병역기피, 황제특강 논란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 총리는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2월 6일 언론 관련 발언 등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자 나흘 뒤 시작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난타를 당했다. 그는 “의원님들과 국민 여러분과 언론인 여러분들에게 정말로 잘못했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사과 드리겠다”고 연신 고개를 숙여야 했다.

2월 16일 국회 본회의에선 여당 내 이탈표 때문에 천신만고 끝에 임명동의안이 가결됐다. 이 총리의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었다.

● 파국 직전 이 총리…부메랑이 된 司正

2월 17일 총리 취임 직후 그는 돌변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건 사태로 표류하던 박근혜 정부의 국정동력을 되살리겠다는 의지가 높았다. 특히 그가 답답해했던 것은 공직사회의 복지부동 분위기였다.

그는 취임 후 첫 국무회의(2월 24일)에서 장관 평가제 시행 의지를 밝히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의 회의 불출석을 계기로 장관 군기잡기에 나서기도 했다. 급기야 지난달 12일 검찰 경찰을 관장하는 법무부, 행정자치부 장관을 옆에 두고 부정부패 발본색원을 선포하는 대국민 담화도 발표했다. 공직사회에 이어 일부 대기업 비리, 해외자원개발 문제 등을 척결 대상으로 꼽으며 사정(司正) 드라이브를 건 것이다. 이 총리는 지난 7일 취임 5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국정동력을 얻기 위해선) 공무원들이 해야 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데 국회 있을 때부터 이 점이 불만스러웠다”며 “박근혜 정부를 성공시켜야 할 책무가 있다”고 밝혔다. 만기친람 형 국정 챙기기도 그의 특징이었다.

결국 자신감과 조급함이 그의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사정 드라이브는 부메랑이 돼 이 총리를 내리치는 모양새다. 이 총리 담화 직후 검찰이 포스코건설에 이어 경남기업 압수수색에 나섰고 성완종 전 회장 일가에 대한 압박이 시작됐다. 성 전 회장은 이 총리를 비롯해 여권 실세들에게 구명운동을 펼쳤지만 여의치 않자 지난 9일 자살했다. 그가 남긴 로비 리스트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정국이 발칵 뒤집혔고, 급기야 2013년 재ㆍ보선 때 이 총리에게 3,000만원을 줬다는 성 전 회장 발언까지 공개됐다.

14일 여권에선 총리 자진 사퇴, 직무 정지 같은 수습책이 논의되기에 이르렀다. 검찰 수사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총리 직을 내려놓으라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떠안고 가기도 부담스럽다’는 게 여권 분위기다. 안대희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 이어 삼수 끝에 취임했던 이완구 총리지만 취임 두 달도 안 돼 사실상 낙마 직전 상태로 내몰린 것이다. 정치권에선 “이렇게 하면 우리나라에 총리라는 직책이 왜 필요하냐”는 ‘총리무용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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