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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기업에 포획된 정치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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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관료들, 이익집단과의 결탁
이들의 사익 추구는 결국 국민 부담
경제 살릴 골든타임마저 허공으로
정부의 규제정책과 관련해 포획이론(捕獲理論 ㆍcapture theory)이라는 것이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 스티글러가 1971년에 발표한 '규제의 경제이론'이라는 논문에서 제시한 이론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이익집단을 형성, 정치인과 관료들을 설득해 자기네들에 유익한 각종 규제정책을 이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뒤집어 말하면 정치가와 관료들이 자신들의 집단이익을 위해, 혹은 기업에 포획되면 국민의 이익을 저버린 채 기업의 이익에 봉사하게 된다는 뜻이다.
경제학자 이정전은 저서 왜 우리는 정부에게 배신당할까?에서“국민이 정치에 관심이 없고 무지할 때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대기업을 비롯한 각종 힘있는 이익단체가 발호해 국회의원이나 관료와 결탁하여 ‘누이 좋고 매부 좋고’식의 거래를 자행하게 된다”고 했다. 기업은 정치인과 관료에게 선거자금과 각종 향응을 제공한다. 대신 기업은 정부로부터 조세감면, 보조금 등 각종 특혜를 받는 공생관계라는 것이다. 이런 정경유착이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의 온상이 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죽음으로 드러난 우리 정치권의 비리는‘포획이론’이 적용되는 전형적인 사례로 보인다. 전ㆍ현직 비서실장과 현직 총리, 지방자치단체장, 국회의원 등 박근혜 대통령을 에워싼 현 정권의 실세들이 성완종이라는 마당발 건설사 회장에게 완전 ‘포획’된 것이다. 이들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씩 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정권의 핵심부에서 발생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더욱이 망자가 밝힌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물속에 숨겨진 빙산의 규모는 어떨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성 전 회장이 대아건설을 통해 경남기업을 인수한 2003년에는 매출이 5,000억 원이 채 안되었으나 이후 급성장하면서 2008년에는 1조7,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5년 만에 3배 이상 몸집을 키운 것으로 납득이 쉽지 않다. 건설업계는 이 부분에 주목을 하고 있다. 지역건설업체였던 대아건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중앙무대의 경남기업을 인수했을 때도 의혹이 일었지만, 이후 급성장한 데 대해서도 정경유착의 결과물이라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성 전 회장에 대한 두 번의 특별사면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래서 노무현 정권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성 전 회장과 돈으로 얽힌 정치권 인물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론되는 것이다.
사실 정경유착과 불법정치자금의 문제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다만 최근에는 뇌물 액수가 줄어들고, 뇌물을 준 기업들이 재벌에서 중견기업으로 점차 넘어오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각기 수천억 원대의 뇌물을 기업들로부터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의 돈 가치로 환산하면 수조원대에 이를 것이다. 이후에는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 때 수백억 원대로 떨어졌다가, 이번에는 수억원 대로 점차 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정치인들에 대해‘자신들의 명예와 권력욕만 채우는 사람’이거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분쟁만 일삼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다. 이번‘성완종 리스트’를 보면 그런 이미지가 확실해 진다. 지금 정치권은 벌집 쑤신듯하다. 정부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상태다. 야당입장에서는 좋은 공세거리가 생겼다. 향후 정치권의 싸움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그래서 떠나야 할 사람들은 빨리 떠났으면 좋겠다. 스스로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하루라도 빨리 결정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정치인들이 사익을 추구한 대가가 결국 국민들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오는 것이다.‘성완종 블랙홀’때문에 공무원연금개혁, 노사정 대타협 등 산적한 현안들의 해결이 요원해졌다. 공무원연금개혁이 불발되면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보전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노사정 대타협이 안되면 청년실업문제 해결은 물 건너간다. 각종 경제활성화 법안도 파묻힐 공산이 커졌다. 이번 사건이 또 다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볼모로 잡을 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경제를 살릴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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