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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이 총리,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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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공방' 국민 판정 이미 내려져
어차피 정치는 상식과 여론 따라야
버티기는 '평평한 지형' 기울게 해
어제 비가 내렸다. 남은 벚꽃이 마저 졌다. 풀과 나뭇잎은 더 자랐다. 떠나는 것과 오는 것이 엇갈리면서 비 그치고도 한참 동안 하늘이 흐렸다. 딥 퍼플(Deep Purple)의 노래 ‘4월(April)’이 ‘푸르러야 할 하늘이 회색으로 찌푸려져 있다’고 외친 그 하늘빛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수선하고 불안하다. 천기가 불순하고, 황사도 짙다. 올해는 유독 더하다. 나라가 온통 우울증에 갇힌 듯하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은 유가족의 비통과 국민적 침울이 깊고 넓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죽음이 몰고 온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정치권에 휘몰아치고 있다.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터지는 불법 정치자금 사건이다.
지금은 살아있는 권력 가까이의 ‘8인’에 비리 의혹이 집중돼 있다. 검찰 수사망이 좁혀 들자 사방으로 줄을 대어 선처를 부탁하려던 성 전 회장의 마지막 행동에 비추어 당연하다. 스스로 검찰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리라고 여긴 사람들만 간추렸을 터이다. 그런데 그가 중앙정치 무대와의 접촉을 본격화한 신호탄이 2000년 충청포럼 창립이라면, 그 이후 역대 정권 실세 정치인 상당수가 그가 내민 손을 뿌리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거명된 8인의 한결 같은 부인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의혹은 확정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굳이 거짓말까지 해가며 남에게 해코지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상식이다. 마찬가지로 2007년 대선후보 경선과정부터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 돈줄을 댔다는 그가 당시 훨씬 유력했던 후보이자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전 대통령 주변에 무심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 또한 상식이다. 노무현 정부와 그 여당, ‘DJP연합’인 김대중 정부와 그 여당에 대해서도 그리 다를 바 없다. 검찰 수사야 공소시효를 지난 사건에까지 미칠 수 없겠지만, 국민의 의혹과 상식에는 공소시효도 없다.
따라서 이번 파문이 당장은 야당의 정치공세에 힘을 실어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야당에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여당이 성 전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 절차를 걸어 야당, 특히 문재인 대표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것을 단순히 눈앞의 불에 대한 대응이라고만 보아 넘기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 ‘과거부터 현재까지’와 ‘정치개혁 차원’을 강조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번 파문과 관련, 논자의 정치성향과 무관하게 ‘정치자금 의 수급 구조’언급이 늘어난 데서도 그런 성격이 읽힌다. 파문이 어떻게 잦아들든, 여야에 정치적 상처를 남길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국민의 정치불신만 깊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비슷하다.
다만 파문의 이런 ‘평평한 정치지형’도 대응에 따라 언제든 한쪽으로 기울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완구 총리의 처신이다. 최대한 멀찌감치서 중립적으로 파문을 지켜봐도 이 총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 나흘 내내 야당이 워낙 강하게 몰아붙여서인지, 같은 물음에 대한 답변이 그날그날 다르다. 다른 7인에 대한 의혹과 달리 이 총리에게 3,000만원을 주었다는 성 전 회장의 주장은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 총리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진실공방을 계속할 태세이고, 검찰 수사는 아직 실체적 진실을 가릴 만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지만, 국민판정은 이미 내려진 셈이다. 구체적인 돈 전달 정황이 폭로됐고, 목격자 증언까지 나왔다.
하급직 공무원이라면 그래도 최종 수사 결과를 기다릴 수 있지만, 총리는 다르다. 국민의 신임과 지지를 잃어 국정을 총괄할 권위를 잃었다면 더 이상 수사 결과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실질적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형식적으로 하루하루 총리직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딱해 보일 지경이다. 그런 상태가 이어지는 한 이번 파문이 기본구조와 달리 권력 주변 비리 사건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그런 화근을 내버려 두는 청와대의 현실정치 감각과 방략이 의심스럽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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