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세월호 비극 덮으면 더 큰 재앙 찾아온다

입력
2015.04.17 15:17
구독

사고 원인 꼬리 문 의혹 풀리지 않고

조사 진척 없는 우리 현실 부끄러워

희생자 참담한 최후 거듭 상기해야

“세월호는 출항해서는 안 될 배였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지낸 제주 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16일 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성이시돌목장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미사 강론에서 이렇게 말하며 정부의 세월호 진실규명 무력화 시도 등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강 주교는 이날 강론에서 “참사가 일어난 전후 과정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너무나 풀리지 않는 여러 가지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1년 전 그날 인천항은 악천후였고 가시거리는 800m밖에 안 됐다”며 “그리고 출항 당시 세월호는 규정된 물량의 약 두 배를 과적했고 엄청난 화물들을 고정하지 않고 적재했다”고 말했다. 이어 “화물을 더 싣기 위해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배 밑바닥의 평형수를 절반 이상” 빼버렸고 “출항 전에 인천항 운항관리자는 배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않고 안전점검 보고서에 ‘양호’라고 기재하고 출항허가를 내주었다”며 그날 상황을 환기시켰다.

강 주교는 또 “왜 갑자기 세월호가 침몰했는지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며 “급변침은 사고의 결과이지 원인”은 아니라고 하는데 “세월호가 왜 급하게 방향을 틀었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고 문제 제기했다. 이어 “세월호에서 자기 발로 나온 사람 말고는 해경이 들어가서 구조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며 해경의 구조 소홀과 국정원 관련 의혹 등도 거론했다.

강 주교는 이어 지난 3월 한국 주교단이 로마를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 만났던 일을 소개했다. 당시 교황이 한국 주교단을 향해 던진 첫 질문인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에 대해 강 주교는 “정부가 세월호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조사위원회 조직은 구성했는데 실제로 조사는 전혀 한 발자국도 진척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고 답했다며 “이렇게밖에 답할 수 없는 우리 현실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털어놨다.

강 주교는 참사 한 달 뒤 “대통령은 (세월호)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분명히 ‘특별법은 만들어야 하고 검경 수사 외에 특검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낱낱이 조사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씀까지 했다”며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위원회는 한 발자국도 못 내딛고 있고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특위의 독립적 진실 규명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시행령을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강우일 주교가 지난 1월 제주시 금악리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열린 사제서품식에서 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 제공
강우일 주교가 지난 1월 제주시 금악리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열린 사제서품식에서 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 제공

이어 “해수부는 세월호 사고를 유발한 원인 제공 기관들인 한국해운조합, 지방항만청, 한국선급, 선박안전기술공단과 직접 연결된 상부기관”이어서 “직접 사건의 피고가 되거나 피고와 아주 가까운 부서”라며 “피고 신분의 공무원이 세월호 진상 규명의 실무 전체를 책임 조정하는 역할을 맡도록 하는 시행령은 진실 규명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정부는 희생자 가족에게 보상비는 몇 억원씩 줄 것”이라며 “돈다발을 자꾸 펄럭이며 마치 유가족들이 돈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처럼 국민 여론을 오도”해 “인격모독”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 주교는 “이제 그만하면 되지 않았나”고 하는 일부 여론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는 “마치 강도 만나서 얻어맞아 초죽음이 되어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웃을 보고도 내 갈 길 바쁘다며 길 건너편으로 돌아서 지나가버리는 레위인이나 사제와 다를 바 없다”며 “이웃 형제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어질 수 없는 오늘의 메마른 우리 영혼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또 “304명이나 되는 이웃 형제와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버린 사건의 충격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오늘의 개인주의적 문화가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지적했다.

강 주교는 “국민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기관이 외면하고 밝히려 하지 않는 의혹 가득한 사건을 그냥 잊고 덮어버리자는 것은 우리 몸에 돋아난 종기의 뿌리를 도려내지 않고 겉에 붕대만 감고 말자는 것”이라며 “이러면 종기는 속에서 더 곪아서 뼈 속까지 썩어 들어가고 나중에는 세월호 보다 더 큰 재앙이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세월호의 비극을 잊으려 하기 보다는 도리어 거듭 상기해야 한다. 희생자들의 고통과 참담한 최후를 기억해야 다시는 그런 참극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와 회심을 열매 맺을 수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