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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공연 뒤풀이, 비판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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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단체를 결성하는 것은 꽤 흥미로운 작업이다. 우선 철학이 담긴 이름을 만들어야 한다. 이왕이면 순 우리말이 좋겠다는 생각에 기역부터 히읗까지 정리된 목록을 훑어보기도 했다. 반면, 기획자는 ‘보편성과 혁신성’이 동시에 담긴 이름으로 이 단체의 철학을 확연히 드러내보자 제안해 왔다. ‘더겐발스’라는 낯선 이름을 그때 처음 들었다. 더는 번데기 발음의 정관사, 겐은 제네럴의 보편, 발스는 ‘발레 뤼스’라는 단체이름에서 따왔다고 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초연하며 20세기 예술사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발레 뤼스’의 정신을 본받자는 것이었다. 연주단체의 이름은 더겐발스 뮤직 소사이어티로 확정되었다. 너무 복잡하고 긴 이름이 아니냐는 엄살도 들렸다.
작명 신공은 계속 이어졌다. ‘사회적 콘서트’를 지향하는 음악회 연작을 ‘앵프라맹스’라 이름 붙였으니 말이다. 앵프라(infra)는 무엇의 이면, 아래를 뜻한다. 맹스(mince)는 얇다는 의미를 가진 프랑스어이다. 두 단어를 조합해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미세한 차이, 그래서 더 결정적인 차이’를 처음으로 일컫기 시작한 사람은 혁신에 있어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마르셀 뒤샹이었다. 그리하여 앵프라맹스 콘서트, 기존 공연과는 조금 다르고 좀 더 열린 콘서트를 지향한다는 기획의도를 담은 이름이 완성되었다. 여전히 발음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일관적인 것도 재주다 싶었다.
작명부터 번번이 강조한 ‘보편과 혁신’을 어떻게 동시에 아우를 것이냐. 까다로운 과제였다. 목소리만 큰 야심으로 끝나지 않을까 불안했는데, 몇 가지 원칙을 세우며 의욕을 구체화 시켰다. 우선 예술성을 갖췄으되 청중이 외면하지 않을만한 작품을 연주하기로 했다. 아카데믹한 선구적 실험은 우리의 사명에는 벅찬 것으로 겸허히 의견을 모았다. 단, 보편은 튼튼한 연주력으로 숙련성을 보장해야 한다. 난해하지 않다고 설렁설렁 연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적 콘서트의 매 주제에 걸맞은 창작곡을 새로이 의뢰하고, 다른 예술분야와의 본격적 협업을 무대에서 구현하면서 혁신의 가치를 구체화시키기로 했다.
협업을 위해 음악가 외에도 사진가, 큐레이터, 무용수들이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이번 공연은 큐레이터가 공연의 중요한 골격을 담당하면서 ‘마그리트의 꿈과 상상’이라는 다소 개인적 주제를 다루었는데, 다음 순서는 무용수와 함께 카프카와 뭉크의 사회적 소외를 풀어볼 예정이다. 이렇듯 머릿속 떠돌던 상념을 발화하고 공감을 나눈 이들과 작당하여 실제 사고치는 과정이 무엇보다 신명났다. 독주회에 비하면 외롭지 않아 숨통도 틔었다. 공연을 마친 후 맥주를 거나하게 걸친 구성원들은 우리가 의도했던 ‘혁신과 보편’에 관하여 비판적 성찰을 나누었다. 아래 몇 가지 문답.
‘미술과의 협업을 통해 의도했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 되었나?’ 마그리트의 작품을 통해 청중에게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잃어버린 꿈에 대한 각성이었다. ‘순수의 시대-혼돈의 시대-정화의 시대’라는 맥락으로 작품세계를 소개한 방식은 참신했다는 평을 들었지만, 상징적이고도 은유적인 전달을 기대했던 청중에게 구체적 서사가 과도하게 느껴졌다는 반성도 있었다. ‘음악적 실험은 어떠했는가?’ 애초에 난해하고도 파격적 실험보다는 꿈과 상상이라는 주제에 걸맞은 창작을 지향했었다. 이번 공연을 위해 새롭게 작곡되었던 피아노 트리오 ‘Dear Rene Magritte’와 현악 4중주 ‘Imagine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음악회의 성격을 뚜렷이 각인할만한 역할을 해주었다. 앞으로도 편곡보다는 창작에 과감히 매진해보자는 의견이 개진되었다. 맥주기운으로 용기를 내어 떠들었다. 무언가 동을 띄워 시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영속성과 숙련을 갖추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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