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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토끼에게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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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의 가사를 잘 곱씹어보면 생각할 게 꽤 많다. ‘옹달샘’(윤석중 작사, 외국 곡)의 가사도 그 중 하나다. 토끼는 세수하려고 ‘깊은 산속 옹달샘’으로 새벽 일찍 일어나 달려갔다. 그런데 엉뚱하게 물만 마시고 왔단다. 노래를 흥얼거리지만 왜 토끼가 그랬을까 묻는 이들은 별로 없다. 선착순으로 따져 가장 먼저 도착한 토끼는 분명 권리가 있다. 세수뿐 아니라 샤워해도 뭐랄 거 없다. 그런데 세수도 하지 않았단다. 세수하기 귀찮았을까? 샘에 도착한 토끼는 처음엔 세수하려 했을 거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자기가 세수하거나 목욕해서 샘이 더러워지면 숲 속의 다른 동물들은 어찌 물을 마실까 생각하고는 자기도 물만 먹고 세수는 아래 개울에서 했을 것이다. 그게 배려고 상생이며 공존의 예절이다.
지금 우리는 그 토끼만도 못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올라간 사다리는 다른 사람 못 올라오게 걷어차고 남의 불행을 디딤돌로 삼은 천박한 행복을 자신의 능력으로 여긴다. 지금 기성세대의 가장 큰 허물은 다음 세대의 삶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허물이라기보다는 죄악에 가깝다. 지금도 매일 청년 7명이 자살한다. 수백 통의 이력서를 내도 아무런 답이 없는 청년들은 세상에 절망하고 미래의 희망을 접으며 삶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지금의 기성세대는 겪지 못했던 일이다. 그래서 온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고, 자신들도 힘들어서 제 앞가림에 급급해서 그럴 수 있겠다. 그러나 그건 정당한 변명이 아니다. 역사는 다음 세대가 내 세대보다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게 할 때 그 의미가 있다. 후배와 자식에게 나보다 못한 삶을 넘겨준다면 그건 뻔뻔한 일이다.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라도 비정규직이 600만명이 넘는다. 그들의 삶은 하루하루 고단하고 절망스럽다. 20대 80의 사회는 깨진 지 오래고 1대 99의 냉혹하고 뻔뻔한 세상으로 변했다. 노동조합은 상대적으로 약자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법이 마련한 기본적인 제도적 장치다. 그런데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혹은 파견 노동자들이 노조 가입하는 것을 거부한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돈은 적게 받고 고용상태도 불안한 약자들임을 뻔히 알면서도 혹시라도 자신들의 몫이 줄어들까 싶어 거부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사측에 무엇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겠는가. 모두 저만 살겠단다.
최규석의 ‘송곳’을 읽다 보면 사람들이 노동조합에 대해 얼마나 그릇된 시각으로 학습되었는지 알 수 있다. 노동자 권익을 보호해야 하는 고용노동부가 외려 고용주인 기업을 대변하는 정부 행태를 보면 분노가 치민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모두 서로 제 몫만 챙기려 든다. ‘을’의 고통을 겪은 이들이 ‘갑’의 입장이 되면 더 심하게 ‘갑질’하는 사회는 야만적 사회고, 거기에 속해 사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공기업은 이익을 얻기 위한 기업이 아니라 사회적 공익을 위해 많은 초기 투자와 부채를 감내하는 준정부기관이다. 그 적자를 시민의 세금으로 보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몇 해 전 LH공사는 적자 운운하며 4년 동안 신규채용은커녕 800명 가까이 감축한 상태에서 뜬금없이 ‘단 1명’을 채용했다. 10여 명쯤 뽑으면서 그 한 사람 끼워 넣기라도 할 염치조차 없이 뻔뻔하고 태연하게도 달랑 단 한 사람만 뽑았다. 그 단 한 사람이 바로 당시 여당 대표였고 지금은 어떤 도의 도지사인(최근 스캔들로 시끄러운데 불구속기소되는 저력을 보인) 사람의 처조카였단다. 1%에 속한 사람들은 자손대대 아무 걱정 없이 살 것이고 따라서 이들이 비정규직이나 열정 페이로 착취되는 청년들, 그리고 빚만 잔뜩 짊어진 채 희망 없는 미래를 망연자실 바라보고만 있는 이들의 처지를 조금도 공감하지 못한다. 이러면 미래는 없다.
토끼만도 못하게 살아서야 되겠는가. 토끼에게 배울 일이다. 이렇게 방치하다 언젠가 둑 전체가 무너질 수 있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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