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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여자 진술 번복 불인정… '공판 중심' 벗어난 이례적 판결

입력
2015.08.2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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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검찰서 금품제공 진술 후

부합 증거들 나와 신빙성 인정,

9억 수수 공소사실 모두 유죄"

"수사기관 진술 객관적 자료 없어

주요 증거있는 3억원만 유죄"

대법관 5명, 소수의견으로 반박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 확정 판결을 받은 한명숙(오른쪽 첫 번째) 전 총리가 20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떠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 확정 판결을 받은 한명숙(오른쪽 첫 번째) 전 총리가 20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떠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대법원이 한명숙(71)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9억원 수수를 유죄로 인정한 것은 공여자가 검찰에서 한 진술의 신빙성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대신 공여자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것은 인정하지 않았다. 공판중심주의를 표방해 온 법원 흐름상 이례적인 경우인데, 이는 소수의견에서 집중 공격을 받았다.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는 검찰에서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둔 한 의원에게 2007년 3~9월 세 차례에 걸쳐 3억원씩 모두 9억원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1심 법정에서 “9억원의 자금을 조성했지만, 한 전 대표에게 준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사용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1심은 법정 진술을 근거로 무죄로 봤지만, 항소심은 검찰 진술의 신빙성에 손을 들어줬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검찰 진술이 나온 배경과 맥락을 볼 때 신빙성이 인정된다는 원심(2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그 근거로 ▦한 전 대표가 먼저 금품제공 진술을 하고 나서, 자금 조성 내역과 일치하는 금융자료, 정치자금을 담아 운반했다는 여행용 가방의 구입 영수증이 나온 점 ▦한 전 대표의 지시를 받아 자금 조성에 관여한 한신건영 경리부장 정모씨의 진술, 정씨가 작성한 비자금장부가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과 부합하는 점 등을 들었다. 이에 따라 다수의견은 9억원 수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봤다.

그러나 소수의견을 낸 5명의 대법관은 진술 외에 별도 주요 증거가 있는 3억원만 유죄로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 차례 가운데 1차로 건넨 3억원의 경우 한 전 대표가 조성한 비자금에 포함된 1억원짜리 수표가 한 의원 동생의 전세금으로 쓰인 사실, 한 전 대표가 한 의원의 비서를 통해 2억원을 돌려받은 사실 등의 증거가 있다. 나머지 6억원은 한 전 대표가 추후 허위였다고 밝힌 검찰에서의 진술과 그 외 전문, 정황 증거뿐이었다.

이인복 이상훈 김용덕 박보영 김소영 대법관은 “2ㆍ3차 정치자금 수수의 경우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만한 신빙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며 수사과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7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1회의 진술서와 5회의 진술조서 외에는 어떤 조사를 받고 어떤 진술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5명의 대법관들은 특히 “공판중심주의, 직접심리주의 원칙과 전문법칙의 취지에 비춰 동일인의 수사기관 진술과 법정 진술의 내용이 정반대일 경우, 법정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하고 수사기관 진술을 증거로 삼으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어야 한다”며 검찰진술에 기대어 유죄를 인정한 다수의견에 이의를 제기했다. 또 “한 전 대표는 검찰 진술 당시 사용처가 불분명한 비자금의 정당한 사용 내역을 밝히지 못하면 횡령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데다, 수사협조의 대가로 한신건영의 경영권을 되찾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으므로, 허위나 과장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다수의견이 “한 전 대표가 한 의원을 상대로 전혀 있지도 않은 허위의 사실을 꾸며내거나 굳이 과장ㆍ왜곡해 모함한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어떤 이익을 얻거나 곤란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검찰에서 허위 진술을 한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 역시 특별히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힌 것을 반박한 것이다.

이날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상고심 선고에 한 의원은 나오지 않았으나, 오후 2시 선고시작 20여분 전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 10여명이 나와 긴장된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상고 기각 주문이 있자 의원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문재인 대표는 “정말 참담한 심정이며, 대법원 판결에 실망이 아주 크다”며 “요즘 일련의 사건 판결들을 보면 검찰의 정치화에 이어서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소수의견이 어떤 때는 다수 의견을 넘을 때가 있다”며 “다수로 소수 의견을 묻어버린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ankookilbo.com

김관진기자 spirit@ 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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