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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포격전 발발…긴박했던 평양에서의 일주일

입력
2015.08.25 15:56

北안내원, 국제유소년축구대회 南취재진에 "현재는 준전시상태"

평양시내 평온속 긴장감 팽팽…평양역 광장에선 쉴새없이 군가 흘러나와

24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2015 제2회 국제 유소년 U-15(15세 이하) 축구대회 결승전 4.25체육단(붉은유니폼)과 평양국제축구학교의 결승전에서 4.25 체육단 선수가 골을 넣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열린 2015 제2회 국제 유소년 U-15(15세 이하) 축구대회 결승전 4.25체육단(붉은유니폼)과 평양국제축구학교의 결승전에서 4.25 체육단 선수가 골을 넣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는 준전시상태다. (남측이) 한 발만 도발해도 공격에 들어가라는 김정은 제1위원장님의 지시가 있었다."

국제유소년 U-15(15세 이하) 축구대회 취재를 위해 북한을 방문한 지 닷새째인 21일 오전 취재진 버스가 첫 일정을 위해 출발하기 직전 안내원이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기도 인근 군사분계선에서 포격전이 벌어진 바로 다음날이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남한 대회관계자와 선수, 취재진은 한국과 통화가 인터넷 이용도 제한돼 20일 저녁쯤에야 호텔에 비치된 TV에서 나온 중국 CCTV방송의 자막 등을 통해 교전 사실을 알았다.

긴장 속에서 보낸 평양에서의 일주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연합뉴스와 KBS 등 2개 한국 언론사는 25일까지 열흘간 열린 유소년 축구대회 취재를 위해 평양을 찾았다.

북한 측이 2010년 5.24 대북제재조치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언론에 평양 취재를 허용한 것이다.

그러나 취재진 5명에 배정된 북한 안내원 4명은 철저히 축구대회와 관련된 취재만 허용했다.

숙소인 양각도 국제호텔과 대회장소인 능라도 5.1 경기장 사이를 차량으로 이동할 때 사진과 영상촬영을 전면 불허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안내원과 기자들 사이에 친분이 형성되자 안내원들의 태도가 누그러졌다. 평양 시내 등에 대한 취재 허용의 폭이 더 넓어질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까지 들었다.

北 노동신문은 25일자 2면에 선군혁명려도의 첫 자욱을 새긴 55돌경축 중앙보고대회가 수도 평양에서 진행됐다며 사진과 함께 보도하고 있다. 노동신문
北 노동신문은 25일자 2면에 선군혁명려도의 첫 자욱을 새긴 55돌경축 중앙보고대회가 수도 평양에서 진행됐다며 사진과 함께 보도하고 있다. 노동신문

그러나 20일 포격 사태가 발발하면서 안내원들의 태도는 다시 엄해졌다.

"전선에서 단 한 발만 도발해도 전시상태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현재는 준전시상태이며, (남측이) 한 발만 도발해도 그 지역 뿐 아니라 전 지역에서 공격에 들어가라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가 있었다. 엄중한 시기인 만큼 안내에 잘 따라주기 바란다."

취재진이 보내는 모든 기사를 검열했던 안내원들은 이후 검열에 더욱 깐깐한 태도를 보였다. 검열에 걸리는 시간은 20분 정도로 두 배가 됐다.

평양시내 분위기는 여전히 평온했으나 곳곳에서 긴장감과 분노감이 감지됐다.

오는 10월 10일은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이다. 김일성 광장에서는 매일 오후 수천명의 학생이 운집해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기념행사 연습에 한창이었다.

평소 학생들의 모자를 삐뚤게 쓰거나 몇몇은 구석진 데 숨어 군것질하는 등 학교 행사에 동원된 한국 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포격전 다음날은 달라 보였다. 그들도 분위기를 아는 듯 표정이 다소 굳어있었고 동작은 군인처럼 절도가 있었다.

대회는 포격전 다음날 개막됐다. 남북 교전소식을 전해듣고 다소 굳은 표정을 하던 경기도 선수들은 첫 경기에서 쿤밍(중국)을 3-0으로 꺾고 나서야 웃음을 되찾았다.

이런 가운데 북한 측은 포격 이튿날 전격적으로 남한 기자들에게 평양역 취재를 허용했다.

하지만 일반 시민과의 접촉은 허용하지 않은 채 미리 준비된 '평범한 평양시민'을 내세워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이 시민은 "제 집안에서 불상사가 일어나면 우리와 억지로 연결하게 하는 것이 남측의 군 당국자들과 군부 호전광들이다. 그들은 바다에서 함선이 침몰해도 북 어뢰 때문이고, 정체불명의 무인기가 날아들어도 북의 소행이라고 본다"고 비난했다.

그는 "(교전이 일어난 날) 우리는 그 어떤 훈련도 한 것이 없으며 포탄도 발사한 것이 없다"면서 "철저한 날조극이고 기만극"이라고 주장했다.

광장 한쪽에 세워진 대형 전광판에는 전쟁과 관련된 노래 영상이 쉴 틈 없이 흘러나왔다.

'육중한 강철 대포 우리는 길들였다네', '조국을 지키는 방패 우리가 되리' 등 가사 자막이 화면에 나왔다.

공교롭게도 한국 방문단이 북한을 떠나는 날이 돼어야 남북간 판문점 협상이 타결됐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취재진도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다만 취재진을 제외한 대회 관계자들과 선수들은 하나같이 방북 기간 별다른 긴장감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안내원들이 대회 관계자보다 기자들을 더 엄격하게 대했기 때문일 수 있다.

황영성 경기도 남북교류협력팀장은 "대회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한 느낌은 있었으나 정치적 긴장 상황 때문에 신변에 위협이 생길 수 있겠다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라면서 "북한 사람들은 대회 관계자들에게 (포격전 뒤에도) 변함없이 친절하게 대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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