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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남북문제 '북 치고 장구 치고' 독주… 통일부가 안 보인다

입력
2015.08.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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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 조치·당국간 회담 등

靑 속도조절론에 통일부 눈치보기

장관 방송 출연 취소… 함구령도

MB정부 이후 통일부 찬밥 신세

"靑 주도 협상은 정치적 고려 휘둘려, 전문성 있는 부처에 재량권 줘야"

북한 여성들이 26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북한대사관에서 중국인들로부터 받은 음료수를 실어 나르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UPI
북한 여성들이 26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북한대사관에서 중국인들로부터 받은 음료수를 실어 나르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UPI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합니다.”

22일부터 ‘무박4일’ 간 이어진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당시 통일부 당국자들의 한결같은 멘트였다. 청와대의 함구령 탓이었다. 판문점 현장취재마저 원천봉쇄한 채 ‘깜깜이 남북 회담’을 이어갔던 청와대는 합의 직후 ‘원칙의 승리’를 강조하며 대통령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공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상황이 일단락되자마자 느닷없이 통일부 군기잡기에 나섰다. 2008년 이후 처음으로 기지개를 펴려던 남북관계 주무부처 통일부는 다시 위축되는 분위기다.

靑, 속도조절론으로 통일부 군기잡기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27일 브리핑에서 “남북간 협상은 앞으로도 계속되니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내부 기류가 있다”며 “협상은 끝난 게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원론적인 언급이지만 남북 대화의 속도를 조절하고 통일부의 대화 기조를 다잡겠다는 뜻이 내포됐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통일부 당국자는 “우리가 우물가에 있는데 바로 숭늉을 내오라는 건 조급하다”면서 “(당국회담 등 후속 조치는) 지금 검토 중”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합의 당일인 25일 “남북 간 당국회담을 정례화하고 체계화해 나갈 것”이라던 적극적인 모습은 사라졌다. 청와대의 속도조절 지침에 통일부가 주춤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5ㆍ24 대북 제재 조치를 둘러싼 26일의 소동도 마찬가지다. 통일부는 대변인 브리핑에서 남북 당국회담시 5ㆍ24 조치 논의 여부에 “(북한이 제기하면) 그 때 가서 충분히 대화로 다뤄질 수는 있는 문제”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전제조건임을 재차 공지하고 언론의 보도 동향을 일일이 확인하는 등 온종일 전전긍긍했다.

여기에다 홍용표 장관이 예정됐던 라디오방송 출연을 급히 취소하고 당국자들도 일제히 ‘함구 모드’에 들어가면서 통일부 스스로 청와대 눈치 보기라는 해석을 자초했다.

靑ㆍ통일부 역할 분담으로 대화 틀 갖춰야

속도 조절 자체는 당연한 방향이라는 평가가 많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한반도 문제는 남북문제이면서 국제적 성격을 띠는데 남북 합의를 너무 부각시키면 국민들이 들뜰 수 있고 미국 일본 등이 속도 조절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 협상 전략 차원에서도 우리 측의 카드를 미리 보여줄 필요는 없다.

문제는 박근혜정부 들어 대북 강경책을 주도하던 청와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이중적인 태도다. 지난 2년 반 동안 청와대는 남북관계에서 유연한 전략을 경원시한 채 원칙론에 치중하면서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악화를 사실상 방치했다. 한 북한전문가는 “안보부처 당국자들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은 것을 넘어 김정은의 공포통치를 부각시키고 대북전단 살포를 방기하는 등 북한 체제 흔들기에 치우쳤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이명박정부와 마찬가지로 통일부를 찬밥 신세로 몰아가고 회담 인력을 축소시키는 등 남북대화에 제대로 대비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대화 국면으로 반전되자 북한의 도발 방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에는 귀를 닫은 채 합의 성과를 홍보하는 데에만 주력했다.

장용석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 같은 기류를 청와대의 당국회담 주도 의지로 분석한 뒤 “청와대가 나서면 정치적 고려에 의해 휘둘릴 수밖에 없다”면서 “컨트롤 타워인 사령관이 현장에 나가 소대장처럼 싸울 수는 없는 만큼 회담을 원 포인트로 끝낼 생각이 아니라면 통일부에 재량권을 줘 대화의 틀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상원기자 ornot@hankookilbo.com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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