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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 뺨친 인맥남 “힘이 나요, 슈퍼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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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SNS)사람 인터뷰] (19) 개그맨 김영철
‘눈(SNS)사람’은 디지털 스토리텔링 형식의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페이스북ㆍ트위터ㆍ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기 있는 ‘소셜 스타’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합니다.
불혹을 지난 사내가 자꾸 자길 “애”라고 불렀다. 어휘 늘리기에 한창인 모범생처럼 습관적으로 같은 뜻, 다른 단어 세 개를 연방 늘어놓곤 했다. 지금 그는 “기도, 기대, 기다림으로 버텨온 시간” 동안 날을 벼린 “제2의 무기이자 장기이자 특기” 영어를 휘둘러보는 참이다. 개그맨 김영철(41)은 머나먼 과녁을 향해 방금 시위를 떠난 화살마냥 설레 보였다.
긴 시간 동안 김영철은 경쟁에서 이기고 높아지기 위해 싸워왔을 것이다. 상대와 겨뤄왔고 대상을 따라잡으려 했다. 방식은 흉내였다. 재담가가 되고 싶었지만 묘사가 서사를 압도했다. 배역을 바꾸며 연기(演技)하듯 이야기했고 범람한 스펙터클이 내러티브를 감싸 숨겼다. 하지만 이제 추종은 끝났다. 전무후무 달라지고 고군분투 개척하기로 했다. 그는 선도자다.
새 목표는 ‘인터내셔널 코미디언’이다. 뻔뻔을 ‘펀펀(fun-fun)’의 발판으로 삼고 모방에서 창조를 길어 올려볼 셈이다. 5월 이적한 새 회사 대표가 간파한 것처럼 그의 꿈은 넓고 특별하다. “미드(미국 드라마)를 찍고 금의환향해 ‘힐링캠프’(SBS 토크쇼)에서 해외 진출 국위선양을 자랑하는 꿈을 꿉니다. 좋은 선례를 남긴 개그맨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새벽 라디오 방송ㆍ녹음을 마치고 15일 오전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본보와 만난 그의 얼굴엔 병색이 짙었다. 충혈된 눈은 빨갛고 음성도 거칠었다. 요즘 일복이 터져 자주 아프다. “많이 나은 게 이 정도예요.” 예전이었으면 예술로 오해된 고된 노동이 안쓰러웠을 테다. 그러나 자기가 부재한 곳을 향한 그래서 결코 마르잖을 동경이 해방한 그는 행복해 보였다.
“힘을 내요, 슈퍼 파월.” 올해 그가 터뜨린 저 유행어는 어쩌면 자기에게 거는 주문이다.
“네네, 안녕하십니까”
올 들어 김영철이 붙박이로 출연 중인 방송 프로그램은 MBC ‘일밤-진짜 사나이 2’다. 봄부터 매달 4박 5일씩 병영에서 숙식하고 있다. 육ㆍ해군을 거쳐 지난달엔 해병대를 겪었다.
Q 마흔 넘어 대체 무슨 고생인가.
A 이번에 다녀온 곳은 훈련소다. 다시 들어가기 두렵다. 너무 힘들었다. 자ㆍ타칭 가장 센 부대인 데다 단기간 엑기스(진액) 위주로 훈련하다 보니 유난히 빡셌던 듯하다. 극기 주간까지 겹쳐 역대 최고 아니었나 싶다. 부대 안에서 걸어 다니는 일이 거의 없다. 삼보(三步) 이상은 뛴다. 숙제 검사 같은 순검(巡檢)도 종일 이어진다. 정신ㆍ육체적으로 다 힘겨웠다.
Q 의외의 모습을 봤단 반응과 ‘군대 가서도 열심’이란 평가로 갈리지만 어쨌든 칭찬이다.
A 내가 리얼 버라이어티에 맞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원래 대학 때 남들과 잘 어울리고 나눠 먹고 장난도 잘 치는 애였는데 그 모습이 (프로그램에서) 고스란히 나왔다. 좋은 것 위주로 편집해준 제작진한테도 감사한다. (개그맨) 김숙씨와 전화로 그 얘기를 나눈 적 있다. “오빠, 괜찮은 사람으로 나오더라.” “진짜 괜찮은 애니까.” “정신 못 차렸네.”(웃음)
Q 고정 참여 프로그램이 4개나 된다. MBC ‘나 혼자 산다’ 등 면면도 화려하고. 바쁘겠다.
A ‘진짜 사나이’ 탓에 못하는 것도 많다. 한 달에 한 번 (닷새를) 통째 빼야 하니까. 개인적인 삶의 질은 작년이 더 나았던 게 사실이지만 지금이 좋다. 내가 꿈꿔왔던 삶 아닌가. 바쁜 게 이런 거구나 싶다. 다만 몸이 아프다. 내년엔 정리가 좀 되면 좋겠단 생각도 든다. 궤도에 오른 셀러브리티는 스케줄이 정돈돼 덜 바쁘단 게 호주인 친구 말인데 두고 보려고.
Q 11월이면 아침 6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한 지 4년째다. 펑크커녕 지각도 없었다고 들었다.
A ‘성실 DNA(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 연예인이 평범한 외모로 경쟁력을 가지려면 부지런한 아침형 인간이 돼야 할 걸로 판단했다. 일찍 일어나는 비결이 뭐냔 질문에 전날 일찍 들어가라는 둥 우유를 마시라는 둥 뻔한 대답만 하다 어느 날 곰곰 생각해봤더니 돈이었다. 돈 주면 일어난다(웃음). 17년차에 지각하기도 애매하다. 시간이 새벽이라 차도 안 막히고.
“미안합니다…”
김영철은 일찍 떴다. 1999년 KBS 개그맨 공채 14기로 데뷔하자마자 “미안합니다, 몸이 아파서”란 전 장관 부인 말을 흉내내면서다. 옷로비 의혹 청문회가 나라를 뒤흔들던 때였다.
Q 화려한 등장이었다.
A 데뷔한 지 반년 만에 유행어를 만들면서 이듬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떴단 느낌은 오는데 실감이 안 났다. 너무 빨리 유명해졌다. 당시 스포츠지가 매주 발표하는 순위에서 만날 2등을 할 정도였다. 1등은 심현섭씨 독차지였지만 이휘재, 김국진, 남희석씨 등 선배들 위였다. 미안한 마음에 동기 (김)대희, (김)지혜한테 밥을 좀 더 샀던 기억이 난다.
Q 그때부터 주특기가 성대모사다. 비법이 있나.
A 순간 집중력이 뛰어난 것 같다. 특징을 잘 캐치한다.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 흉내 잘 냈다. 아무나 하진 않는다. 좀 독특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연습은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완벽한 연습이 필요한 피겨 스케이팅과 달리 성대모사는 연습을 많이 할수록 변질된다. 질리고 닳고 원본의 어떤 맛을 잃는다. 상황마다 창의적이어야 한다. 임기응변이 중요하다.
Q 빼어난 재능이 독이 된 듯하다. 김영철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게 개인기 말곤 딱히 없다.
A 김희애씨 노래 패러디 한 걸 보고 배국남 기자가 전화했다. “패러디는 당신이 갑이다.” 기분 좋았다. 더불어 (강)호동 형이 일깨워줬듯 난 토커(talker)다. 대화 상황을 재미있게 전달하는 게 주 목적이다. 화자를 흉내 내는 것도 그걸 위해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개인기만 주목하기 일쑤다. 아쉬워도 어쩌겠나. 패러디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 스스로 믿는다.
Q 지금껏 늘 중심에 서기보단 조역으로 주변부를 서성인 느낌이다.
A 강호동ㆍ유재석이 되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모니터 하고 그 형들 애드리브 적고 외우고 따라 해봤는데 잘 안 됐다. 그러다 미국 여행을 떠났고 책을 한 권 샀는데 울림을 주는 구절이 있었다. ‘난 항상 누군가가 되고 싶었지만 항상 실패했다. 그래서 내가 되기로 했다.’ 날 두고 하는 얘기 같았다. 2008년쯤으로 기억한다. 그때 내가 되는 연습을 시작했다. 약방의 감초든 2인자든 그게 나라 생각한다. 전무후무한 사람이 되고 싶다.
“놓치지 않을 거예요”
김영철의 화양연화는 길지 않았다. 30대를 그는 와신상담하며 보냈다.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 것 같긴 했다. 하지만 포기하고 울산(고향) 내려가야겠단 생각은 해본 적 없다.” 돌아보면 그를 구원한 건 성실 유전자였다. “계속 그냥 뭘 했던 것 같다.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저녁 약속을 잡았고 에피소드 만들려고 싸돌아 다녔다.” 영어 공부도 그 중 하나였다.
Q 일감 줄고 슬럼프에 빠진 연예인들 중 상당수가 일탈로 나락에 빠진다. 김영철은 달랐다.
A 2003년 9월 1일이 나한텐 두 번째 생일이다. 이날 학원에 등록한 뒤 13년째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그 해 7월 캐나다 몬트리올 코미디 페스티벌에 다녀온 게 계기였다. 영어로 서양인들을 웃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당시 처음 했다. 날 바꿔놓은 건 KBS ‘개그콘서트’ 서수민 PD가 툭 던진 말 한 마디였다. “유재석ㆍ강호동ㆍ신동엽이 되는 것도 좋지만 넓게 생각하고 몬트리올 페스티벌 같은 데도 어떤 덴지 알아보고 나가보렴.” 그 나가보렴이 나한텐 울림이 있었다. 몬트리올에서 숙소 가는 길에 달을 보고 독백했다. “나 영어로 웃겨보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니?” 권대웅 산문집 ‘그리운 것은 모두 달에 있다’(올해 출간)에 자긴 비밀을 달에게 털어놓는다고 고백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처럼. 그때 다짐했다. 10년 뒤 인터내셔널 코미디언이 되겠다고. 2013년 12월 난 미국에 있었다. (MBC) ‘무한도전’ 촬영을 위해서였고 영화를 찍는 설정이었다. 약속은 못 지켰지만 뭔가를 하곤 있었던 거다.
Q 듣고 보니 김영철 개그가 아메리칸 스타일 토크 코미디 같기도 하다. 국내엔 잘 안 맞는.
A 2012년 겨울 신동엽이 연예대상을 받자 경향신문(주간경향) 편집장이 글을 썼다. “그가 트렌드를 쫓아간 게 아니다. 트렌드가 그를 따라온 거다.”트렌드가 따라오게끔 하는 것도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만큼 중요하단 생각을 했다. “원래 너 비호감 아니었어. 시청자들이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린 것뿐이야.” (MBC) ‘라디오스타’ 황선영 작가가 해준 말이다.
Q 자기 스타일에 익숙해질 때까지 꾸준히 스타일을 유지하며 기다렸더니 맘이 열렸단 건가.
A 많은 PD가 그랬다. “왜 영어 공부만 해?” 한데 결국 날 따라오지 않았나. 서 있었더니.
Q 김영철한테 영어는 어떤 의미인가.
A 하춘화나 흉내 내는 사람이 과거 개그맨 김영철의 연관 검색어였다면 지금은 영어, 영어 공부법이다. 제2의 무기이자 장기이자 특기가 된 거다. 26살 이미 직장을 구한 저에게 제2의 꿈을 준 것도 영어다. 영어 잘하는 웃기는 놈이 되는 게 지금 내 꿈인데 상상을 해본다. 에미상이나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 후보가 되는 장면 말이다. 벌어질 수도 있는 일 아닌가.
Q 영어 공부를 어떻게 하면 김영철처럼 될 수 있나.
A 뉴욕이든 시카고든 미국 한 도시를 정한 뒤 거기 사는 윌리엄이나 제임스라 생각하며 하는 것도 방법이다. 부지런하고 호기심이 많아야 한다. 어휘는 궁금해하는 애들이 승리한다.
Q SNS를 둘러보니 더러 도서관에도 가는 모양이다. 주로 무슨 책 읽나. 즐기려는 목적인가.
A 인문학서와 소설을 많이 본다. 자기계발서엔 질렸다. 너무 뻔해서다. 요즘 읽는 책은 청담 도서관에서 빌린 2권(‘읽는 인간’, ‘당신의 말’)이다. 라디오 진행을 맡게 됐을 때 정선희 누나가 책을 사줬다. “영철아, 어휘를 증강시켜야 돼” 하면서. 일주일 하다 보니 쓰던 말만 반복하는 날 발견했다. 말하는 사람이 어휘력 부족을 들키면 창피하겠다 싶었다.
“특급 칭찬이야”
Q 반전 계기가 ‘무한도전’이다. 2월 방송에서 국민 유행어도 터뜨렸고. 인연이 각별하다.
A 대여섯 번 ‘무도’ 특집에 나갔는데 매번 존재감을 보였다. 주어진 역할을 잘 소화했던 것 같다. 김태호 PD한테는 늘 감사한다. ‘무도큰잔치’ 녹화 들어가기 전 김 PD가 그랬다. “주눅 들지 말고 막 하세요.” 막 한 결과가 “슈퍼 파월”이다. ‘슈퍼 파워’란 단어의 기운 덕인지 올해는 대본을 써놔도 그렇게 되기 힘들 정도로 쭉쭉 가고 탁탁 맞아떨어진다.
‘무한도전’에서 물꼬가 터졌지만 대중이 김영철을 재발견한 건 ‘진짜 사나이 2’에서다. 당초 그가 섭외된 이유는 누가 봐도 잘 못할 것 같지만 다물어지지 않는 입으로 웃기지 않겠냔 거였다. 그러나 예상이 뒤집혔다. 그는 뛰어난 병사였다. 지휘관 질문에 꼬박꼬박 정답을 내놓는 이는 그였다. “내가 순간집중력이 좋아 소대장 말을 다 듣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놀랐다. 윤종신 형이 그랬다. 내가 아직도 머리 쓰며 영어 공부 해서 그런 듯하다고.”
Q ‘인간 복사기’ 김영철보다 ‘인간’ 김영철이 대중한테 더 매력적이란 뜻도 되지 않나.
A 칼럼니스트 정덕현씨가 4월 쓴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그는 개인기 보이려는 모습이 여전했다. 하지만 달리 느껴진 건 우리가 그의 진면목을 봐 버렸기 때문이다.” 이젠 (리얼 버라이어티든 스튜디오 토크쇼든) 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캐릭터에 깊이가 생겼다. 진짜 모습뿐 아니라 정제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연예인 몫이다.
Q ‘나 혼자 산다’에서 도드라지는 건 인맥 관리를 참 잘 하는 면모다. 기술을 좀 나누자.
A 먼저 남부터 나눠주는 거다. 어머니 유전자다. 다 나눠주고 남는 걸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부터 그런 걸 봐 왔다. 사람 관리는 바쁠 때 하는 거다. 바쁜 애들이 일도 잘 하고 늘 바쁜 법이다. 만나는 빈도로 부류를 나눠 달리 챙기는 것도 내가 쓰는 방법이다. 뭘 얻으려 하면 안 된다. 그대로 존중해주고 돌려받으려는 맘으로 문자(메시지)도 해선 안 된다.
요즘 김영철이 친하게 지내는 연예인은 ‘진짜 사나이’에 동반 출연했던 배우 이규한, 정겨운이다. ‘이규좌(左)’, ‘정겨우(右)’라 부를 정도다. 한데 두 사람 성격이 판이하다. 이규한이 섬세하고 눈치가 빠른 반면 정겨운은 무디고 둔하단 게 김영철 전언이다. 주고받는 일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며 돌아오는 게 적다며 그가 서운해할 때 상대방은 정겨운이다.
“힘을 내요, 슈퍼 파월”
Q MBC ‘연예대상’을 노린단 말이 농담만은 아닌 것 같다.
A 개그맨들 은어로 ‘시바이’다. 설정을 한 거다. 예능국장님도 “어련히 알아서 안 줄까” 하는데 받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연예대상보다 더 원대한 꿈은 인터내셔널 코미디언이고.
Q 미국 코미디언 중 역할모델이 있을까.
A 토크쇼과 시트콤을 병행하는 제리 사인필드를 줄곧 바라봤는데 시야가 협소했다. 어디서도 안 나온 그림의 연예인이 될 거다. 거점을 한국에 두고 한미 양국 왕복하는 게 최고 그림이다. 아시아 시장이 커져 중화권도 왔다 갔다 하면 좋겠다. 애초 롤모델로 삼았었던 김윤진씨의 남편과 어쩌다 친해졌는데 내년에 부인이 오디션 보러 갈 때 나도 하나 넣어달라 부탁해놨다. 모든 인맥을 총동원하겠다. 정 안되면 스필버그한테 미역이라도 주겠다(웃음).
오프라인에서 실현되지 않은 김영철의 활동 반경 확대가 온라인에선 이미 이뤄진 상황이다. 지난달부터 유통되는 모바일 콘텐츠 ‘영철쇼’를 통해서다. 바야흐로 인터넷 1인 방송 시대라곤 하지만 전통 매체 ‘대세’ 스타가 비주류 플랫폼에 올라타는 건 아직 드문 일이다.
Q 개인 방송 사이트인 아프리카TV의 BJ(진행자)로도 활약했다. 해외 진출에 보탬이 돼선가.
A 파이어니어(개척자)가 되고 싶어서다. 아프리카 첫 방송에서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인용하며 거창하게 말했다. “전 안 가본 길을 가보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개그맨 김대범씨가 벌써 했다”는 댓글이 달렸다. 한 방 먹은 거다. 당시 아프리카TV의 미국 진출 계획도 들은 터였다. 안 해본 장르를 하고 싶어 도전한 것도 사실이다.
Q SNS 상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트위터 팔로어는 12만명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A 자기애 강한 내 일거수일투족을 재미있게 보여주는 포스팅 위주다. 나도 죽겠는데 상대방 죽겠단 얘기 듣고 싶겠나. 댓글들을 통해 우울한 이들이 날 보고 힐링(치유)한단 걸 알게 된다. 자연스레 의무감과 책임감이 생긴다. SNS 무겁게 하는 이들 있잖나. 혼나야 된다.
Q 결혼 안 하나.
A 눈이 높아져 어떡하나 싶다. ‘개그콘서트’ 보면서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올해 ‘무한도전’ 운수 맞혔던 분이 44살에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년엔 막 살려고(웃음).
만든 사람들
기획 및 글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사진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조영현 인턴기자(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3)
디자인
백종호 jongho@hankookilbo.com
프로그래밍
김태식 ddasik99@hankookilbo.com
퍼블리싱
이태수 dlxotniocu@naver.com
속기 및 보조
정진호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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