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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으면 누가 보는데?

입력
2015.12.0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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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휘경유치원에서 진행된 신입생 추첨을 학부모들이 숨죽여 바라보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지난 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휘경유치원에서 진행된 신입생 추첨을 학부모들이 숨죽여 바라보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일본 정부가 2020년까지 사회 각 분야의 지도층에 여성 비율을 30%로 하겠다는 그 동안의 계획을 포기했다는 기사가 마이니치신문 4일 조간에 실렸다. 지금 일본의 사회구조로는 이 같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는 달성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10년 넘게 유지해온 정책 목표를 접었다는 것이다. 대신 중앙 부처의 과장급에서 차지하는 여성 비율을 7%로 늘리겠다는 ‘현실적’인 목표를 잡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지금 유치원 신입생 모집과 추첨이 한창이다. 이중에서도 “비용이 저렴하면서 시설도 좋아 꼭 보내고 싶다”는 국ㆍ공립 유치원에 지원자가 몰려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경쟁률이 20대 1을 기록한 곳도 있다고 한다. 입학의 행운을 안은 학부모는 로또 당첨된 기분이라는 비유가 별스런 과정도 아니다. “몇 달간 유치원 수십 곳을 알아봤는데 국공립 유치원은 한 달 비용이 3,000원에 불과한 곳도 있지만 사립 유치원은 최소 40만~50만원이 든다는 걸 알았다. 국공립 유치원을 더 늘려야 한다”(한국일보 12월 4일자 ‘로또 추첨’…긴장 속에 국ㆍ공립 유치원 원아 추첨▶전문 보기)는 아우성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한일 두 나라 모두 저출산ㆍ고령화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해결의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닮았다. 두 나라 젊은이들은 왜 결혼을 늦추거나 포기할까? 결혼을 하더라도 왜 아이를 늦게 낳거나 아예 낳지 않을까? 학교 졸업을 빨리 하면 결혼ㆍ출산연령을 낮출 수 있다고 학제를 단축하는 정책을 검토하겠다는 건 거의 헛발질에 가깝다. 정책 담당자들이 저잣거리의 고민을 듣는 건 고사하고 언론들이 이구동성으로 반복해 온 이야기도 경청하지 않았다는 의심마저 든다. 과연 이 나라에 어떤 미래가 닥칠지 걱정스럽다.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유치원 입학 경쟁은 내년에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부담을 둘러싼 갈등이 풀리지 않고 있어서다. 국회는 2일 내년 누리과정 사업에 목적예비비 3000억원을 우회 지원하는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근본 대책이 아닌 땜질식 처방이다. 내년 누리과정 예산은 4조원이 넘는다. 지방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는 부담할 능력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경기도의회와 서울시의회는 누리과정 유치원 예산도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ㆍ여당이 대통령의 공약인 누리과정 어린이집 보육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경우 ‘맞불’을 놓겠다는 뜻이다.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겠다는 거창한 슬로건만 내걸었지 아직 재원 조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예산이 없어 어린이집이 문을 닫게 되면 유치원의 ‘좁은 문’은 아예 ‘바늘구멍’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잖아도 한국의 유치원은 부족한 상태다. 한국의 공립유치원 수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한국의 아이들은 불쌍하다. 한국 아동의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중 꼴찌다. 부모들도 덩달아 불행하다. 유치원부터 끝이 안 보이는 무한경쟁의 궤도에 올라 타야만 한다. 어쩌면 ‘헬 조선’의 시작은 유치원일는지 모른다. 엄마들의 육아카페에는 유치원 추첨을 놓고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분노의 글이 넘치고 있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회성 짙은 가사로 주목을 받은 중식이 밴드는 ‘아기를 낳고 싶다니’란 노래에서 이렇게 절규한다. “맞벌이 부부 되면 집에서 누가 애를 봐/ 우리는 언제 얼굴 봐/ 주말에 만나거나 달 말에 만나거나/ 뭐 다들 그리 살더라/ 아기를 낳고 나면 그 애가 밥만 먹냐.”’(중앙일보 12월 4일자 정철근의 시시각각 ‘‘헬 조선’의 시작, 유치원 로또 추첨’▶전문 보기)

“정부서울청사 복도엔 근무시간 중간에 몰래 통화를 하는 여성 공무원이 많다. 대역죄라도 저지르는 양 고개를 수그린 채 휴지통 옆에서 “이모님, 오늘 야근을 하게 됐는데, 아이 1시간만 더 봐주시면 안 될까요” “선생님, 급식 당번 바꿔 주실 수 없을까요”라고 읍소한다. 통화 후엔 깊은 한숨을 쉬고 종종걸음으로 사무실로 들어간다. 바늘구멍을 뚫고 대한민국 관료사회로 진입한 유능한 공무원들의 비루한 일상을 엿보며 드는 생각은 하나다. ‘아이, 낳기 싫다’…참 이상한 건, 복잡할 게 하나 없는 저출산 문제의 핵심을 정부가 못 짚는다는 거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아이를 낳아도 지금처럼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면 된다. 출산율 1.18이라는 숫자를 들이밀며 “이 매국노들아 왜 안 낳는 거냐” 닦달해봤자 우린 안 낳는다. 어느 순간부터 “힘들어도 애는 낳아야지”라고 하는 이들은 남자들뿐이다. 이모님과 선생님에게 읍소 전화를 하느라 지친 여자들은 “아이 낳고 말고는 자기 자유야”라는 말로 “낳으면 고생이야”라는 속마음을 눙친다.…일하는 여성들은 안다. 지금 이 판이 얼마나 불평등한지. 직장마다 야간 탁아소를 의무적으로 짓고, 부모가 육아 책임을 균등히 나눌 것을 법으로 적시하며, 5000만 국민 모두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라는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는 이상 출산율은 0으로 수렴할 뿐이다. 과감한 대책을 세워야 대한민국이 산다.”(중앙일보 9월 26일자 분수대 ‘참 나쁜 대한민국 저출산 대책’▶전문 보기)

“아이를 낳고 기를만한 세상에 요구되는 삶의 기본들은 우리사회의 지금 모습과 너무도 먼 것이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위해서는 일단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소득 보장과 고용 안정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또 아이를 돌보는 게 전쟁이 되지 않을 만큼 노동시간이 너무 길지 않아야 할 것이며, 등굣길 아이의 안전 걱정 없는 동네에서 끝없는 이사를 걱정하지 않고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주거공간도 필요할 것이다. 그 뿐이랴. 다 길러놓은 자식을 하루아침에 어처구니 없이 잃는 사고가 거듭되는 사회, 학교에 보내고 나면 공부 걱정뿐 아니라 폭력과 왕따 걱정인 사회, 겨우 학교를 마친들 청년들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사회, 그렇게 해서 노년의 부모와 장성한 자녀가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사회에서 출산율이 올라갈 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현재 한국사회에서 저출산을 가져오는 사회의 구조적 요인들 가운데서 가족에게 맡겨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거꾸로 아이에게는 당연히 돈 벌어오는 아버지와 보살필 어머니가 있다는 생각, 노인은 손자를 돌보면서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는 게 가능하며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복지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러니 가족을 들고 나오는 저출산 대책은 안 하느니만 못하고 말도 꺼내지 않는 게 차라리 낫다. 사실 최고의 저출산 대책은 출산율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조금 더 살만하게 만드는 정치인 것이다.”(한국일보 7월 20일자 아침을 열며 ‘가족은 저출산의 해결책이 아니다’▶전문 보기)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연결’해서 풀어야 하는 세대 문제다. 한국처럼 압축적 경제 성장과 가족주의가 강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인사들처럼 부동산투기와 탈세로 축재한 부모를 두거나, 부모가 집을 마련해주고 손주의 과외비를 줄 정도가 아니라면 ‘버젓하게’ 아이를 키워내기 힘겹다. 나름 축재에 능하던 부모가 졸지에 ‘하우스푸어’가 된 현실도 자녀의 결혼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승자독식의 지속불가능한 체제, 특히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들을 도태시켜온 시스템을 바꾸어낼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북유럽 국민들이 1ㆍ2차 대전의 위기를 겪으며 소득세를 높이는 데 전격 합의하여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냈듯 심각한 인구위기를 겪는 우리는 지금 증세를 통한 체제 변화를 꾀할 ‘골든 타임’을 맞은 것이다. 소득 격차를 줄이고 합리적 증세로 시민수당 제도를 마련하면 고액 과외와 입시지옥, 세대갈등도 사라지고 출산율은 당연히 높아질 것이다.”(한겨레신문 2월 11일자 조한혜정 칼럼 ‘저출산ㆍ고령화 대책의 ‘골든 타임’’▶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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