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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위안부 문제 외교적 타협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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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따지러 갔다는 외교부 당국자는 빈 손으로 돌아왔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일본은 50년 전 맺은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했을 터이고, 한국은 더 책임을 명확히 하라고 맞섰을 것이다. 일본이 국제법을 들먹이면 우리측이 ‘성의’ 표시를 요구하는 이 같은 줄다리기에는 어딘가 기시감이 든다. 50년 전에도 대충 그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50년 전과 같이 정치적 담합으로 봉합한 뒤 국내적으로 윽박질러 사태를 무마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식민 지배에 대한 최소한의 부채 의식과 앞선 경제력으로 한국에 대해 나름의 여유를 부렸던 50년 전 일본도 이제 없다. 지금 일본은 미안하다는 생각은커녕 적반하장 격으로 스스로 과거사를 고쳐 쓰겠다고 나선 상태이다. 이런 일본에 대해 한국의 민심 또한 매우 거칠다. 과거처럼 얼렁뚱땅 눈속임 외교로는 안 되는 것이다. 냉전 때처럼 북한 위협론이나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들먹이는 것도 그다지 약발이 안 먹힌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세월 한일 관계를 지탱해온 ‘1965년 체제’는 확실히 막을 내렸다.
당연히 종래와 같은 방식으로는 ‘뉴 노멀’ 한일 관계를 헤쳐나가기 어렵다. 점점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일본에 대해서도, 어느 때보다도 투명성과 선명성 있는 대일 외교를 요구하는 국내 여론에 대해서도 좀 더 당당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맞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갈 길이 멀더라도 더 근본적인 해결을 도모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일본으로부터 제대로 사과를 받아내는 것만이 아니다. 이 문제의 관건은 1965년 청구권 협정을 재해석하는 것과 직결된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2011년 헌법재판소 판결과 징용자 문제를 재해석한 2012년 대법원 판결은 동떨어진 명령이 아니다. 둘은 공히 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일본이 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끝났는데 무슨 딴소리냐고 발끈함으로써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국내 최고법원들의 판결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모호했다. 징용자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을 채 여론이 주목한 위안부 문제만 특화해 일본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모양새였다. 그 결과, 그럴 리도 없지만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이 어느 정도 ‘성의’만 보이면 한일관계에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환상이 생겼다.
이래서는 스텝이 엉킨다. 위안부 문제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계기로 청구권 협정 문제로 되돌아왔다. 따라서 당연히 징용 문제와 더불어 과거 박정희 정권이 봉인한 청구권 문제를 재해석한다는 입장에서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협정 제3조 2항에 따라 중재위원회 회부를 요청하는 강수를 둘 수도 있다. 이는 법원 판결을 적극 이행하는 것이고,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기존 입장과도 부합된다. 피해자와 국내 여론도 박수를 보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징용자 문제에 대해서는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할 듯하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집행이 실시된다면 한일관계 자체가 파탄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원 판결을 존중하면서도 청구권 협정으로 이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원죄’를 감수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국내 여론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청구권 협정의 근본 틀을 와해시키려 하지 않는 한 솔직하게 털어놓고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일본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발언권도 높일 수 있다.
‘뉴 노멀’ 한일 관계는 더 이상 특수 관계가 아니다. 갈등이 상존하고 명암이 혼재하는 보통의 이웃 관계이다. 과거처럼 외교적 타협을 통해 우회적으로 해법을 모색한다고 해서 문제가 덮어지지 않는다. 일본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들에 대해서도 더 솔직하고 당당한 우리 정부의 모습을 기대한다.
이동준 일본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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