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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허위 사실 썼지만 비방 목적 있다고 단정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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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
허위 기사라도 공익성 폭넓게 인정
“대통령을 조롱하고 희화화했는데
팩트 확인 않고 써 적절치 않다”
‘개인 박근혜’ 명예훼손은 인정
17일 1심 법원이 내린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加藤達也ㆍ49) 전 서울지국장에 대한 무죄 선고는 기사 내용이 허위라 해도, 비방이란 범의가 인정되지 않으면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취지다. 허위 기사라도 언론의 공익성을 폭 넓게 인정하고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민사소송 방식을 취하지 않고, 형사처벌로 언론인을 억누르려 한 청와대와 검찰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기도 했다.
검찰이 가토 전 지국장을 법정에 세운 법적 근거는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70조 2항) 조항이다. 이 규정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문제가 된 칼럼은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재판부는 먼저 칼럼이 허위인지, 그로 인해 박 대통령의 명예가 훼손됐는지, 비방 목적이 있었는지 순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우선 가토 전 지국장이 ‘허위 사실’을 썼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가토 전 지국장이 주로 조선일보 ‘대통령의 풍문’ 칼럼을 인용했지만 거기 나온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관한 소문에 더해 ▦박 대통령이 정윤회씨와 만났고, ▦둘이 긴밀한 관계임을 암시하는 ‘사실’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를 ‘허위’라 본 근거는 정씨와 그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만난 지인 이모씨의 일관된 진술, 정씨가 의혹을 부인하며 스스로 낸 휴대폰 통화기록과 기지국에 잡힌 세월호 당일 그의 위치 등을 들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가토 전 지국장이 미필적 고의로나마 허위임을 알았다고도 여겼다. 재판부는 “증권 관계자를 통해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지만, 언제 어떻게 확인했는지 제대로 진술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외신기자라서 국내 기자처럼 주의 의무를 기울일 수는 없지만 사실확인 의무가 면제되는 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가 한글로 된 글을 80% 가량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언급됐다.
이런 전제에서 재판부는 ‘사인(私人) 박근혜’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은 공적 사안이자 관심사임을 분명히 하면서 “업무 수행의 측면에서 대통령이 그때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지적은 소문 내용이 허위라 타당하진 않지만, 곧바로 공직자 박근혜의 명예 훼손이 성립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남녀 관계’라 언급하며 긴급한 사고에도 사적 만남을 가졌다는 취지로 쓴 부분은 개인(여성) 박근혜에 대한 명예훼손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더라도 개인 박근혜에 대한 비방 목적이 없어 형법상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일본어로 쓴 칼럼은 자국민에게 세월호 참사 당시 한국의 정치ㆍ사회 상황을 전하기 위함이었으며 ▦소문 내용을 사실로 단정하지 않고 ▦박 대통령의 지지율 추이를 알려주면서 마지막에 ‘레임덕’(권력 누수현상)이 진행 중이라고 적시해 ‘개인 박근혜’가 아닌 ‘대통령 박근혜’에 관해 쓴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 있을 뿐, 기사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며 가토 전 지국장을 강하게 질타했다. 또 “대한민국 국가 원수인 대통령이 사고 수습에 주력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내용을 쓰면서 대통령을 조롱하고 희화화했는데 사실 관계 확인도 안하고 쓴 것은 적절했다 보기 어렵다”고 꾸짖었다. 재판장은 가토 전 지국장이 한국 정치 상황에 관해 쓴 칼럼 8건을 일일이 읽은 뒤 “한국 국민으로서 피고인의 시각에 동의하기 어렵지만 일본인에게 한국 정치 상황을 알리는 공익 목적을 쓴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며 “민주주의 제도로 운영되는 대한민국 언론의 자유는 중요하며, 헌법이 이를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토 전 지국장을 처벌하는 것보다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와 헌법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하다는 것이다.
이날 오후 2시에 시작된 선고 공판은 일본 등 주요 외신 기자들이 방청하는 가운데 178분간 진행됐다. 공판 내내 서 있어야 했던 가토 전 지국장은 변호인을 통해 “다리가 아프다”며 앉아서 선고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재판장은 “나이가 많거나 병에 걸린 상황이 아니면 서서 선고를 받는 게 맞다”며 거부했다. 재판장이 50페이지에 이르는 판결문을 읽으면서, 몇 문장씩 일본어로 통역됐다.
가토 전 지국장은 선고 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일본기자 20여명을 포함, 내외신 기자 50여명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 검찰이 일본의 산케이신문 기자인 저에 대해 악의를 품고 저격을 하는 것은 아닌지 계속 의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기자는 20여명은 그가 등장하자 박수를 치기도 했다.
가토 전 지국장은 지난해 8월 3일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 대통령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윤회씨와 함께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해 기소됐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김현빈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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