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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응답하라, ‘사이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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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말과 글의 뜻, 세상 이치를 하나씩 깨우쳐 가게 되면서 기분 좋은 일이 많아졌다. 신문 스포츠면을 뒤적거리기 시작하는 아이, TV 뉴스 날씨 예보를 따라 하는 아이를 보면서 뿌듯해지기도 했다. 가끔 세상사 현안에 궁금증을 보이면 알아 듣든 못하든 성의껏 설명도 해줬다.
하지만 함께 뉴스 보기가 두려워지는 때도 많았다. 2015년을 돌아 보면 아이들 볼까 신문을 저리 치우고, 틀었던 TV 뉴스를꺼버리곤 했던 순간들이 숱했던 것 같다. 내 가족과 온 사회를 불안에 떨게 했던 국정 운영자들의 실정과 실책,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부끄러운 결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버린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에게 그지없이 미안했던 한 해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지난 5월 발생해 7개월을 끌었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는 초연하기 힘든 시간이었다. 내 힘든 정도가 38명의 희생자, 186명의 감염자, 1만6,000여명의 격리대상자, 그리고 온 힘을 쏟았던 의료진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짐짓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손만 잘 씻으면 돼”라고 아이들을 다독여 학교로, 어린이집으로 보내면서도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불안에 떨었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렸는데도 평소 가던 소아과 의원을 데려가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내수부진으로 인한 경제성장률 하락과 수많은 자영업자들의 피눈물, 그리고 명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이라면서 기초적인 방역망조차 작동하지 않는 국가적 위신 추락 등 사회에 떠안긴 부담은 또 얼마나 컸던가. (▶ 관련기사)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 메르스 사태는 피할 수 없는 전염병이 아니라 명백한 인재였다. “제대로 된 정부의 전염병 예방 체계가 작동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자복하는 고위 공무원들도 여럿 만났다. 그런데 호미로 막았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다시는 재연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하자는 다짐은 이미 잊힌 지 오래다. 메르스 사태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방역책임 장관이 반년도 못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시 무슨 이사장 자리를 차고 앉았다니 할 말 다했다.
지난해 8월 군사분계선에서 벌어진 남북 포격전도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기억이다. 그동안 북한의 핵실험이니, 연평도 포격이니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던 순간에도 마음은 차분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비상사태가 선포됐던 주말 잠깐 대형마트에 들러 물과 깡통 제품을 사고, 차에 가스를 가득 채워놓은 뒤 출근하면서 ‘너무 호들갑을 떠나’ 하는 멋쩍음도 느꼈던 것 같다. 그래도 어른이 아닌 아이들을 위해, 만의 하나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전쟁을 불사하겠다던 청와대와 군 당국의 호전적 분위기, 마주 달려가는 남북 지도자들의 무모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8ㆍ25 합의를 통해 다행히 상황은 정리됐지만 다음 번 충돌 위기는 그냥 끝나지만은 않을 위태로운 남북 구조가 더 문제다. 이산가족이니 통일이니 떠들어도 서로에 대한 적개심과 응징 의지가 더 큰 지도자들이 남북에 자리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리고 세밑을 강타한 한일 위안부 졸속 합의는 도대체 아이들에게 뭐라 말해줘야 할지 모를 일대 사건이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이 무엇인지 보여줄 중요한 기회를 잃었다는 게 뼈아프다. 돈 자체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 역사 인권의 가치와 중요성을 되풀이해 알려주는 길밖에 없겠지 싶다. (▶ 관련칼럼)
우리 힘으로 아이들 보기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조급함만 가득해진 사이에 병신년 새해가 왔다. 하지만 비판은 들은 체 만 체 하고, 막무가내 밀어붙이는 대통령의 행태는 새해라고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갑갑한 마음으로 맞은 2016년 새해, ‘사이다’처럼 아이들 마음 뻥 뚫리게 할 반가운 일들은 응답해올까. 최소한 지난해와 같은 불안과 잘못은 반복되지 않도록 눈 부릅뜨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새해 다짐이 필요해 보인다.
정상원 정치부기자 orn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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