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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케이블카 못 탄 韓안내견, 로키산맥 오른 加장애견

입력
2016.01.25 14:11

신문 기사를 읽다가 욕지기가 올라왔다. 안내견과 함께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려던 장애인 가족이 탑승을 거부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직원은 개를 싫어하는 사람과 알레르기 문제를 핑계로 탑승을 거부했다. 장애인 도우미견은 법에 의해서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끝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 과정에서 설악산 국립공원조차 케이블카는 개인 소유라며 나 몰라라 했다.

이후 가족은 안내견 학교를 통해 공식 사과를 요청했으나 케이블카 업체는 도우미견이라도 케이블카에는 탈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여론이 들썩이고 나서야 뒤늦게 사과했다.

안내견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모든 시설에 출입할 수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안내견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모든 시설에 출입할 수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기랄, 여전히 이 모양이다. 왜 이토록 세상은 바뀌지 않는지. 나는 한 동안 연재 기사 때문에 도우미견과 함께 하는 장애인들을 만났고, 지금도 그들이 직접 쓰는 책을 준비 중이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과 동물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도우면서 편견과 싸워나가는지, 그들 사이의 믿음과 관계가 얼마나 특별한지 알리고 싶다.

그들이 별일도 아니라는 듯 음식점, 숙박시설, 교통수단 등의 이용을 거부당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내가 더 분노해서 팔팔 뛰었다. 그러다가 국회 출입을 거절당한 이야기에는 할 말마저 잃었다. 약자를 대하는 이 나라의 수준을 확인했다.

장애인에게 도우미견은 동반자 이상의 의미이다. 매년 스무 명 정도의 장애인에게 도우미견을 분양하는 영국의 자선단체인 도우미견협회는 도우미견은 장애인의 삶을 살 만하게 만드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많은 장애인이 갑자기 찾아온 장애에 자존감을 잃는 경우가 많은데 ‘고작 개 한 마리’가 기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캐롤라인은 스물다섯 살에 교통사고로 신체와 언어 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생겼다. 전화기를 떨어뜨려도 누군가 집어줄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수치심과 비참함을 느꼈다. 그런데 도우미견 브리디는 말하지 않아도 떨어진 전화기를 집어주었고 사라진 자존감도 되찾아 주었다.

브리디 덕분에 캐롤라인은 외출을 다시 시작했고, 공원에서 브리디와 공놀이도 즐긴다. 공놀이를 즐긴다고? 물론 캐롤라인은 공을 던질 수가 없기 때문에 공원에 도착하면 브리디는 먼저 주변을 잘 살핀다. 그런 다음 적당한 사람을 찾아가 발치에 공을 떨어뜨린다. 그러면 그 사람은 캐롤라인을 본 후 상황을 감지하고 대신 브리디와 공놀이를 해준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이번 사건이 더욱 우려스러운 건 장애인과 도우미견이 출입을 거부당할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뭘 했을까 하는 점이다. 브리디의 공을 대신 던져주는 사람들처럼 장애인 편에서 옹호하는 사람이 많았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도우미견에 대한 출입 거부는 장애인에게는 스스로에 대한 거부의 의미로 다가온다. 케이블카 앞에서 모멸감을 안고 돌아간 사람들이 그 동안 얼마나 됐을까. 우리는 약자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는 연습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이 기사를 읽으며 몇 년 전 캐나다 로키 산맥에 있는 휘슬러 산에 갔던 기억이 났다. 설악산 케이블카와 마찬가지로 정상 부근까지 올려다 줄 케이블카를 타는 곳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사람 가족과 산을 즐기러 온 반려견도 많았다. 그 중 리트리버 한 마리가 유독 사람들의 예쁨을 받고 있었다. 물어보니 이름은 그레이스, 6살, 오른쪽 뒷다리가 없는 장애견이었다.

오른쪽 뒷다리가 없는 장애를 가진 그레이스가 주인과 함께 로키산맥을 오르고 있다. 사진 : 김보경 제공
오른쪽 뒷다리가 없는 장애를 가진 그레이스가 주인과 함께 로키산맥을 오르고 있다. 사진 : 김보경 제공

그레이스는 케이블카에서 내려 정상을 향해 씩씩하게 올라갔고 반려견과 함께 온 사람은 물론 많은 사람이 따뜻한 미소로 그레이스를 응원했다. 저질 체력인 나는 금세 그레이스를 놓쳤고 잠시 후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그레이스와 다시 만나 애틋한 작별 인사를 나눴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가족과 함께 살라고 속삭여 주었다.

그레이스를 이곳까지 데려온 가족과 함께라면, 그레이스를 따뜻하게 응원해주는 이웃이 많은 사회라면 장애를 가졌어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장애인과 도우미견에게도 그날의 그레이스처럼 든든한 옹호자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로키 산맥에 함께 오른 반려인과 반려견이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 김보경 제공
로키 산맥에 함께 오른 반려인과 반려견이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 김보경 제공

책공장더불어 김보경 대표

참고한 책: 인생의 동반자들, 제인 바더, 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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