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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막판 뒤집기의 주인공은 '관외 사전투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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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13총선 선거일 자정을 넘긴 새벽 1시, 충북 청주 서원구의 오제세 더불어민주당 후보 선거 사무소는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습니다. 개표는 끝나가는데 상대 최현호 새누리당 후보에게 286표 뒤졌기 때문입니다. 사무소에 나와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100여명의 지지자들 입에선 장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당선 뒤 인터뷰를 위해 설치됐던 언론사 카메라도 하나 둘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아직 포기하긴 이릅니다. 관외 사전투표 개표가 남았습니다.” 개표소에서 현장 중계 식으로 상황을 전달해오던 선거 사무소장의 ‘긴급 속보’에, 사무소는 순간 희망의 불씨가 타올랐습니다. 결과는 막판 뒤집기. 오제세 후보가 1,318표 차이로 역전승을 거두며 4선에 성공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 이겼다 생각하고 기쁨의 세리머니까지 했던 후보는 탈락의 쓴 잔을 마셔야 했고, 졌다고 낙담하던 후보는 뜻밖의 승리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선거를 들었다 놨다 하며 손에 땀을 쥐게 만든 주인공은 바로 ‘관외 사전투표함’ 입니다.
전국 단위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전투표가 실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4월 8~9일 실시된 사전투표는 12.2%라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사전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가운데 40.3%가 2030세대(만19세 포함)입니다. 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젊은 층의 사전투표율이 높아서인지 관외 사전투표함 개표로 막판 뒤집기 된 곳은 대부분 야당후보가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전부 저희 계산에 있었습니다.” 강원 원주을 선거구의 송기헌(더민주) 당선자는 사전투표의 특징을 이미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상대후보에게 2%포인트 가량 뒤지는 것으로 나왔고, 일반 투표 개표가 마감된 시점에서도 700표 가량 뒤지고 있었지만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개표가 먼저 마감된 다른 선거구를 지켜보니 관외 사전투표함에서 야당 표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당선자 측 설명입니다. “사전투표는 젊은 유권자들이 많이 할 것이라 여겨 전략적으로 사전투표를 독려했고, 투표율이 높게 나오면서 승산이 있다고 봤다”고 덧붙였습니다. 계산은 적중했습니다. 송 당선자는 마지막 관외 사전투표함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결국 350표차(0.5%포인트)로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경기 남양주갑의 조응천(더민주) 당선자, 인천 연수갑 박찬대 당선자(더민주), 경기 안산 상록을 김철민 당선자(더민주) 등이 사전투표로 짜릿한 역전승을 일궈냈습니다.
막판 짜릿한 역전을 만들어낸 사전투표 개표는 왜 맨 마지막에 이뤄지는 것일까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개표 순서에 정해진 규칙은 없다”고 설명합니다. “개표의 순서나 방법은 각 시군구 선관위에서 결정하지만, 자연스럽게 관외 사전투표가 마지막으로 개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투표 마감시각은 오후 6시입니다. 마감 이전에 투표장에 도착하는 유권자까지는 모두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투표가 종료되고 투표함이 개표소로 이동되는 시각은 대략 7시 30분 정도라고 합니다.
반면 미리 봉인된 채 대기하고 있던 관내 사전투표함은 일반 투표 마감과 동시에 개표소로 이동됩니다. 자연스럽게 ‘관내 사전투표’의 개표가 가장 먼저 시작되는 순서입니다. 한편 ‘관외 사전투표’는 별도의 봉투에 밀봉된 후 우편 등기로 각 선거구 개표소로 전달됩니다. 봉투를 별도의 기계에 넣고 개봉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관외 사전투표’는 마지막에 개표됩니다. 개표 순서에 정해진 규칙은 없다지만 ‘관내 사전투표’ → ‘일반 투표’ → ‘관외 사전투표’ 순서로 흘러간다는 것이 선관위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어쩌다 보니 야당 표가 몰린 사전투표함이 마지막에 열렸고, 의도되지 않은 짜릿한 역전 드라마가 나온 것입니다.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유권자에겐 또 하나의 볼거리였습니다.
흔히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2030세대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가 한몫 했다’고 말합니다. 정확한 분석은 세대별 투표율 결과가 나와야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청년층이 많이 참여한 사전투표로 짜릿한 승리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이번 선거에서 차지하는 청년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관외 사전투표함’은 누군가에겐 보물 상자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힘들게 얻은 값진 승리인 만큼, 당선자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주어진 4년을 소중하게 사용하길 기원합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박진만 인턴기자(서강대 신문방송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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