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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연예인에 관대... 공영방송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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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댄스’를 추고, 밑도 끝도 없이 장구를 치더니 노래까지.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여준 주인공은 바로 탁재훈(49)입니다. 2013년 불법 도박 혐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던 그는 지난 3년 동안 자숙했다며 20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 스타’로 지상파 방송에 복귀했습니다.
탁재훈은 케이블채널 Mnet ‘음악의 신 2’로 방송계에 돌아왔습니다. ‘음악의 신2’가 방송 복귀의 발판이 됐다면 ‘라디오 스타’는 탁재훈에게 날개를 달아준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라디오 스타’ 속 탁재훈을 보고 있노라면 걱정이 앞섰습니다. 불법 도박이나 음주운전, 성매매 등의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들이 “죄송합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사과 드립니다” 는 발언만 하면 언제든 누구나 쉽게 방송을 통해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라디오 스타’는 ‘토크쇼’는 오래 가기 힘들다는 징크스를 깨고 장수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까칠한’ MC 군단의 공이 큽니다. 특히 김구라는 날 선 질문과 멘트들로 불편한 시선을 받는 동시에 속 시원하다는 엇갈린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라디오 스타’는 논란의 중심에 선 연예인들이 해명과 사과를 하며 대중에게 다가가는 자리로 곧잘 활용됩니다. 잇따른 열애설이나 황당한 루머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연예인들이 ‘라디오 스타’를 하소연의 장 또는 복귀의 장으로 여기며 출연하고 싶다는 뜻도 전달한다고 합니다.
‘라디오 스타’는 시청자들도 인식하지 못한 사이 논란 연예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자리가 됐습니다. 마치 자신의 잘못이나 속칭 ‘찌라시’ 속 황당한 사연에 대한 해명 등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는 ‘씻김굿’이라도 한 듯 새 사람으로 태어나 연예활동을 이어가도록 합니다.
탁재훈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물의를 빚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자숙이 끝나서 방송에 나온 게 아니라 늘 후회하고 자숙하고 있었습니다” “팬들의 응원에 감사합니다.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등 MC들의 사과 요구에 기계적으로 사죄의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무얼 잘못하고 어떤 반성을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는 ‘속죄댄스’를 추라는 김구라의 제안에 못 이기는 척 응합니다. 호루라기를 불면서 춤을 추는 중간마다 “미안합니다”며 동작을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는 등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건지,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해 예능의 끼를 발산하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을 따름입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시청자들 앞에 탁재훈은 민망할 정도로 뻔뻔하게 춤도 추고, 장구도 치고, 장난기 어린 노래도 합니다. 김구라는 연이어 결정타를 날립니다. 자숙 기간 중 이혼까지 한 그에게 “합칠 계획이 있느냐”며 사석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툭 내뱉습니다. 종합편성 채널의 시사 토크쇼를 보듯 질서도 없고 들을 필요도 없는 말들이 난무합니다.
지상파 방송 그것도 공영방송이 전파 권력을 남용하며 물의 연예인들의 씻김굿 자리를 제공했다는 게 씁쓸할 따름입니다.
물의 연예인들의 출연 기준도 모호합니다. 탁재훈은 MBC가 자체적으로 정한 출연정지 연예인 중의 한 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스타’에 섭외돼 녹화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뒤늦게 사내 심의위원회가 열려 그에게 방송 출연의 기회를 열어주었다고 합니다. 손바닥 뒤집듯 원리 원칙을 하찮게 여기는 공영방송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단 MBC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최근 KBS도 예능프로그램 ‘나를 돌아봐’를 결국 폐지하기로 결정하면서 호된 홍역을 치렀습니다. 지난해 7월 정규방송으로 편성된 뒤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출연자인 김수미와 조영남이 말다툼을 벌이며 ‘나를 돌아봐’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나를 돌아봐’ 제작진은 그 싸움의 현장을 고스란히 방송에 내보냈고 시청자의 항의까지 들었습니다. 당시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에서 여성비하발언 등을 쏟아내 비판 받던 장동민의 출연까지 밀어붙이려고 했습니다.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나를 돌아봐’는 장동민을 하차시켰습니다.
하지만 ‘나를 돌아봐’는 계속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출연자였던 최민수가 외주제작사의 PD에게 폭행을 가하면서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최민수의 하차는 불가피했지만 제작진은 방송을 통해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나를 돌아봐’는 “윤고운(PD)이 나와봐. 너는 PD고 우린 출연자야. 왜 세게 나가지 못하느냐”며 김수미가 담당 PD 던지는 막말 등을 고스란히 방송에 내보냈습니다.
급기야 여성비하발언으로 하차했던 장동민을 연인인 나비와 함께 어물쩍 합류시키면서 논란을 자초했습니다. 말실수로 인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그가 또 다시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한부모 가정의 아이를 조롱하는 개그를 선보인 겁니다. 사회적 논란의 주체가 됐는데도 ‘나를 돌아봐’는 장동민 출연 장면을 편집 없이 그대로 내보냈습니다. 말실수로 이미 신뢰를 잃은 그에게 연이어 기회를 주려고 한 것인데 결국 무리수는 부메랑이 되어 프로그램에 돌아왔습니다. 뒤늦게 장동민 하차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KBS는 프로그램 폐지를 결정하게 됐습니다.
‘나를 돌아봐’가 일으킨 여러 소동을 통해 KBS가 값진 교훈을 얻었을까요. 그 반대인 듯합니다. KBS는 ‘나를 돌아봐’의 후속 예능프로그램 ‘어서옵show’에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었던 노홍철을 출연시키기로 했습니다.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이 자숙만 하며 생계를 이어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공영방송을 자임하며 여러 정책적 혜택을 받고 있는 방송국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수익이 최우선인 케이블채널이나 종편과는 다른 편성과 프로그램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공영방송이 그저 웃고 떠들며 물의 연예인들의 활동 재개 발판이 될 이유는 없습니다. 물의 연예인 대신 꿈을 펼치고 싶은 신인과 빛을 보지 못하는 무명 연예인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게 더 공영방송다운 모습입니다. 케이블채널이나 종편과 차별화된 공영방송을 고대해봅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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