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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칼럼] 유승민 살려야 당이 산다

입력
2016.04.25 20:00

유승민 매장하려다 부메랑 맞은 여당

당 색깔 안 바꾸면 내년 대선도 필패

인간의 얼굴 한 개혁보수로 변신해야

지난 20일 오후 대구유통단지 호텔인터불고엑스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20대 국회의원 당선자와 함께하는 대구·경북 발전 결의대회'에 참석한 무소속 유승민, 새누리당 조원진 당선인이 어색한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오후 대구유통단지 호텔인터불고엑스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20대 국회의원 당선자와 함께하는 대구·경북 발전 결의대회'에 참석한 무소속 유승민, 새누리당 조원진 당선인이 어색한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은 고통 받는 국민의 편에 서겠습니다.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 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고통 받는 서민 중산층의 편에 서겠습니다.” 1년 전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다시 봐도 신선하고 파격적이다. 이런 보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전율이 느껴지고 나라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게도 된다.

진영의 창조적 파괴를 통해 합의의 정치를 펴나가자는 유승민의 메시지는 보수ㆍ진보 모두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보수 혁신은 유승민의 생각이었을 뿐 박근혜 대통령이 추구하는 바는 아니었다. 유승민은 하루아침에 ‘배신자’로 낙인 찍혔고, 원내대표에서 하차했으며, 선거를 코 앞에 두고 사실상 당에서 쫓겨나야 했다.

4ㆍ13 총선은 유승민으로 시작해 유승민으로 끝났다. 대구에서의 ‘진박 마케팅’도, 이한구의 칼춤도, 김무성의 옥새 파동도 유승민 낙천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참패했다. 만일 유승민 연설대로 새누리당이 변신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세월호 유족과 실종자 가족의 눈물을 닦아줬다면, 사회 양극화 해소에 앞장섰다면, 증세와 복지 구조조정을 실현했다면,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따뜻한 공동체 만들기에 힘썼다면. 아마도 선거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과반수는 물론 200석도 거뜬히 확보하지 않았을까. 보수층이 안철수 당으로 옮겨 갔을 리도 없고 중도층과, 야당에 염증을 느낀 일부 진보 세력까지 흡수할 수 있었으리라. 야권이 분열된 상황에서 개혁과 혁신으로 무장한 집권 여당을 당해낼 재간은 없다.

변신에 실패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지금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당내에서는 공개 일정도, 당정 협의도, 대변인 논평도 사라졌다. 당 운영이 사실상 정지된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기업 구조조정 등 주요 현안에서 두 야당의 눈치를 볼 뿐 쟁점 주도는 언감생심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도 벽에 부닥쳤다.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로 떨어졌고 경제 살리기와 노동법의 중단 없는 추진 발언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

당내에는 구심점이 될 만한 변변한 인물조차 없다. 김무성은 전의를 상실했고, 오세훈은 낙마했다. 남경필, 원희룡이 주목 받고 있지만 도지사 신분이어서 전면에 나설 처지가 아니다. 이대로라면 내년 대선 패배는 불을 보듯 뻔한, 당연한 수순이다. 어디선가 돌파구를 찾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이제라도 당의 색깔을 바꿔야 한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로 탈바꿈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를 통해 보수세력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능하고, 탐욕적인 보수 정치를 더 이상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지난 13일 당선을 확정한 유승민 의원이 선거사무소에서 지지자들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대구=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지난 13일 당선을 확정한 유승민 의원이 선거사무소에서 지지자들에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대구=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2011년 한나라당은 박근혜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한 뒤 김종인과 이상돈 등 개혁적 인사를 영입하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꿔 위기를 넘겼다. ‘개혁 코스프레’로 드러나긴 했지만 2012년 대선에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진보 의제를 선점해 승리를 이끌어냈다. 현재는 얼굴에 회칠, 분칠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다.

새누리당의 낡은 이미지를 씻어내고 판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을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은 현재로서는 유승민밖에 없다. 친박계는 유승민의 복당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지만 그럴 처지가 아니다. 이한구는 “당의 정체성에 배치된다”고 했지만 그런 논리대로라면 새누리당의 정체성은 ‘골통 보수’란 말밖에 안 된다.

영국 보수당이 200년 가까이 성공적으로 존속한 것은 실용성과 적응력 때문이다. 보수당은 늘 변화를 수용하면서 시대적 흐름에 유연하게 적응해 왔다. 총리를 지낸 앤서니 이든 당수는 전당대회에서 “우리는 난폭하고 잔인한 자본주의 정당이 아니다”고 선언한 바 있다. 보수 혁신은 시대적 당위다. 유승민이 말했듯이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가 진짜 보수다. 유승민의 복당은 새누리당의 변화 의지를 가늠할 시금석이다.

/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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