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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농장 벗어나 새 삶… 이젠 사람 안 무서워요”

입력
2016.04.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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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전 인천화물청사에서 HSI롤라 웨버 아시아지부 캠페인 매니저가 다비를 끌어안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전 인천화물청사에서 HSI롤라 웨버 아시아지부 캠페인 매니저가 다비를 끌어안고 있다.

믹스견 다비 이야기

나는 지난 해 10월 강원도 원주의 한 개농장에서 태어났습니다. 260마리의 개들이 바닥에서 띄워 설치한 철창 속에서 태어나 생활하는 곳이지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아지들은 뜬장 밑으로 다리가 쑥쑥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몸집이 큰 도사견들도 많았지만 백구, 황구뿐 아니라 말라뮤트, 리트리버, 세인트버나드까지 있었습니다. 구조견, 반려견으로도 인기가 많은 개들인데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이곳에선 식용으로 판매되다 보니 대형견의 몸무게만 중요할 뿐입니다. 나는 대형견도 아니고 5㎏도 안 나가는 혼종견인데 왜 이곳까지 오게 됐을까요.

주변에 살던 사람들이 이사 간다고, 더는 못 키우겠다고 개농장 앞에 개들을 버리고 가기도 했다는데요, 나도 그 버려진 개들 중 하나였어요.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철창 밖을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봐온 건 옆에서 짖어대는 친구들과 잔반이 전부였습니다. 사실 식용개에게 철창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단 한 순간은 바로 보신탕이 되기 위해 죽을 때 입니다. 이곳 개들은 올 여름을 넘기기 어려운 개들이었죠.

다비가 개농장 뜬장 속에서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한국일보 동영상 캡처
다비가 개농장 뜬장 속에서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한국일보 동영상 캡처

지난 25일 월요일 새벽부터 갑자기 개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가 났습니다. 평소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한 마리씩 철창 밖으로 개들을 데리고 나간 건데요. 내가 있던 철창 문이 열리고 처음 본 사람이 뜬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더니 나를 살포시 안고 작은 케이지 안으로 옮겨주었죠.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사람들은 케이지 속 나와 눈을 맞추고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비(Darby)’ 라는 이름도 생겼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제인, 지타, 휴와 같은 미국 이름이 생겼어요.

260마리 가운데 2월과 3월에 88마리가 이미 미국으로 갔고요, 25일부터 다음주 금요일까지 2주간 172마리가 순차적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저지 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그곳에선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하고, 또 필요한 경우 사회화 훈련도 받고 새로운 가족을 찾게 되지요. 그곳에선 나 같은 소형견뿐 아니라 친구들 같은 대형견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요. 특히 식용으로 생명을 잃을 뻔 하다 구조된 우리들을 더욱 안타깝게 여기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다비가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 케이지 속에서 대기하고 있다.
다비가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 케이지 속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날 비행기를 타게 된 개들은 나를 포함해 16마리였습니다. 인천공항 화물청사에 도착해서 밥그릇, 물그릇은 제대로 있는지 케이지는 안전한지 등의 검사를 받았고요.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나를 케이지에서 꺼내어 꼭 안아주고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사랑 받는 듯한 느낌이었죠.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웃고 말았답니다. 처음에는 사람의 손길이 무서웠는데, 사람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꼬리를 흔들게 되더군요.

드.디.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이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게 너무나 많네요. 10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을 했습니다. 나는 이곳 임시보호 가정에서, 다른 15마리는 뉴저지의 보호소에서 지내게 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나를 임시로 돌봐줄 가족들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습니다. 따뜻하고 폭신한 이불 속에 안기니 너무 편안했어요. 이제 나는 이곳에서 머물면서 평생을 함께 할 새로운 가족을 찾게 된다고 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다비를 임시 보호해 줄 가족이 다비와 함께 웃고 있다. HSI제공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다비를 임시 보호해 줄 가족이 다비와 함께 웃고 있다. HSI제공

HSI의 다섯 번째 농장 폐지 캠페인

이번 개 입양은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이 주도한 다섯 번째‘농장 폐지 캠페인’입니다. 이곳 개농장 주인은 20년간 흔히 말하는 강아지 공장 번식업을 하다 사업이 잘 되지 않아 7년 전에 개식용 농장으로 전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수익이 크지 않았고, 팔린 개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을 보고 사업을 접을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한국에서 개농장을 사서 전업을 지원하고 개들은 미국으로 보내는 HSI의 활동 소식을 듣고 단체에 연락을 해왔다고 해요.

HSI는 유럽, 아시아 등 10여개국에서 동물보호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5년 전 중국 베트남 필리핀에서 개식용을 막는 캠페인을 벌인데 이어 2013년부터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지난 해 1월 경기 고양시 농장을 시작으로 충남 홍성(3월), 충남 서산(10월), 충남 홍성(12월) 등 4개의 농장 폐업을 이끌어 냈고요, 미국으로 보낸 개들은 220마리에 달한다고 합니다.

HSI는 앞으로 한국에서 개식용을 중단시키기 위해 농장 문을 닫게 하는 것은 물론 개식용 사업이 일으키는 동물학대와 문제점을 알려나갈 예정입니다. 또 국내에선 현재 개를 도축, 유통하는 것에 대한 관리, 감독이 전무한데요, 한국 정부가 개식용을 막고, 전업 하려는 개농장주 돕기에 나서도록 정부, 지역자치단체와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해요.

휴가를 내고 이번 농장 폐지 캠페인에 참가한 아비 허바드 알렉산드리아 동물복지보호소 직원의 참가 소감을 끝으로 전합니다. 허바드는 지난 해 1월 고양 개농장에서 구조한 ‘미노’를 입양하기도 했어요.

“고통 받고 있는 개들을 구조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두 나라 사람들이 함께 개들을 잔인한 곳에서 구해내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어요.”

글·사진=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영상= 원하나 PD dahliahy@hankookilbo.com

▶ ‘나는 식용개 다비입니다’ 영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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