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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호 로비 리스트’ 태풍일까 허풍일까

입력
2016.05.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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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브로커 이씨 관련 녹취록엔

靑 관계자ㆍ국회의원 등 실명 나와

롯데면세점 입점 등 관여한 한씨

동창 방사청장에 금품 로비 의혹

구설오른 경찰 고위직, 친분 부인

“인맥 과시 위해 과장” 가능성도

정운호(51ㆍ수감 중)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방위 로비 의혹이 확산되는 가운데, 그의 브로커로 활동했던 인물들이 정ㆍ관계 유력 인사들을 접촉했던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해당 인사들이 실제로 정 대표 측의 금품 로비를 받았는지, 아니면 이들 브로커가 단순히 거물들의 이름을 팔고 다닌 것인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 방향과 범위를 좌우할 결정적 요인이라는 점에서, 이른바 ‘정운호 리스트’의 진위 여부가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6일 검찰과 정 대표 지인 등에 따르면 정 대표 측 핵심 브로커였던 이모(56ㆍ수배 중)씨는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고 한다. 건설업자 출신으로 유명호텔 부회장, 유흥주점 업주 등을 지냈던 그는 2010년 한국전력에 전력선통신(PLC) 모듈을 납품하는 P사 대표로 영입돼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면서 주변 지인들에게 투자를 권유하고 다녔다. 투자사기를 당했다며 이씨를 고발한 지인이 경찰에 제출한 녹취록(2014년 10월19일 기록)에는 당시 청와대 관계자 Y씨, 전직 국회의원 P씨, 전직 차관 B씨 등의 실명을 거론하며 위세를 부리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고교 동문인 검사장 출신 H 변호사와의 친분도 주변에 강조하면서 다녔다. H 변호사는 정 대표가 원정도박 사건으로 경찰과 검찰 수사를 받았을 때 변호를 맡았다.

정 대표가 사업 확장 및 구명 로비 등을 이씨에게 맡긴 데에는 이 같은 이씨의 ‘인맥 과시’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는 주로 브로커들을 동원해 로비를 벌였을 뿐, 자신이 직접 로비에 나서진 않았다. 정 대표의 전방위 로비 의혹 수사가 그 동안 진행되지 않았던 이유도 이런 정황 때문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지난해 10월 원정도박 혐의로 구속된 정 대표가 검찰에 이씨의 존재를 털어놓은 것도 1심 선고(징역 1년) 무렵인 같은 해 12월쯤이라고 한다. 이씨가 정 대표로부터 받은 로비 자금은 최소 9억원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브로커 한모(59ㆍ구속)씨의 인맥도 만만치 않다. 그는 네이처리퍼블릭 화장품의 군부대 PX 납품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을 받은 뒤, 중학교 동창인 이모 전 방위사업청장에게 부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씨는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과정에서 정 대표로부터 10억원 이상을 챙기고,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측에도 거액을 전달하려 했다는 의혹에도 휩싸여 있다.

문제는 이씨나 한씨가 유력 인사들과 실제로 어떤 관계였는지, 그리고 부정한 금품을 전달했는지 여부다. 이들이 주변에 실제 친분보다 과장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씨와 함께 찍은 사진 때문에 구설에 오른 김재원 전북경찰청장은 “지난해 9월 인도네시아 경찰의 한국 진압장비 견학 당시, 관련장비 납품사 고문이었던 이씨와 처음 만나 악수했고 이후 집무실로 인사를 와 사진을 찍은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청장도 이날 해명자료를 내고 “한씨와 중학교 동창인 것은 맞지만, 납품 주선이나 금품수수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정 대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원석)는 이씨 관련 녹취록을 확보해 금품 로비 여부를 분석하고 있다. 검찰은 한씨와 이 전 청장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도 “한씨가 본인의 금품수수 자체를 부인하고 있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 상황”이라며 신중한 입장이다. 이씨와 한씨의 진술에 따라 ‘정운호 리스트’는 정ㆍ관계에 파장을 불러올 ‘태풍의 눈’이 될 수 있지만, 인맥 과시를 위한 브로커들의 허풍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도 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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